연적에 비친 바다

                                                                                             구자인혜

 송도 청량산 얕은 산기슭에는 인천 시립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국립박물관처럼 고풍스럽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촐하고 소담스런 모습이 더 정겹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나는 이곳에서 자원봉사자로 유물을 관람객에게 설명해 주는 활동을 하며 전시 유물을 골고루 살펴볼 기회를 자주 갖는다. 유물을 처음 볼 때는 그저 옛사람들이 쓰던 물건이어서 희소가치로 박물관에 있는 것이려니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지켜보는 동안 그 생김새나 문양이 예사롭지 않게 보여진다. 또한, 백자나 청자에서는 조상의 숨결이 담긴 것 같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하나의 생명체로까지 여겨지게 된다.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많지는 않다. 이 가운데서도 나의 발걸음을 가장 많이 머물게 하는 곳은 제2전시실의 연적 앞이다. 진열대에는 질박하고 둥근 모양의 백자 연적도 있고, 끝이 동글동글 말리며 가늘고 통통한 가지를 섬세하게 표현한 고사리 무늬의 연적, 작은 상자 모양에 굵게, 약하게 힘의 강약을 주어가며 산수화를 그려 놓은 청자 연적 등이 오밀조밀하게 놓여 있다.

이곳에 서서 연적들의 생김새와 문양을 보다 보면 나의 뒤에 있는 인천 앞바다가 연적을 싸고 있는 보안 유리에 되비치는 그림자를 보게 된다. 그러면 그 고풍스런 연적은 바다의 그림자와 어우러져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듯이 역사를 벗고 살아 숨쉬는 환상적인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다.  

진열장 안에는 어느 새 바다가 들어와 출렁인다. 때론 바람에 파도가 일렁이기도 하고, 푸른 바다에서 하얀 선을 그으며 어디론가 떠나고 있는 작은 배의 모습도 눈에 들어온다. 그 뒤로 아스라이 있는 듯, 없는 듯이 작은 섬도 보인다. 또한 유리창 바로 앞에 있는 푸른 전나무의 가지들도 연적을 어루만지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이런 모습들이 불러일으키는 분위기가 신기해 뒤돌아서 바다를 보면 그 이미지는 유리에 비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툭 터진 시야 속으로 가까이서 휘청거리는 전나무와 먼 바다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의 폭이 넓어지며 기분까지도 상쾌해지는 전경이다.

그러나 이때의 확실하고 뚜렷한 실체보다는, 앞의 유리가 거울 역할을 하면서 진열장 속에 쏟아붓는 바다의 풍경은 고풍스런 연적만큼이나 값진 그림이다. 바다에 떠 있는 연적들을 통하여 보게 되는 빛과 그림자들의 어우러짐. 그리고 그것이 주는 평온하고 아늑한 분위기. 이들은 내게  신비롭고 아련한 꿈길을 거니는 듯한 설레임을 주는 것이다.

연적들 가운데 유난히 얽힌 자국이 많고 아무런 장식이 없는 백자 연적이 있다. 조그맣고 깔끔한 푸른색의 다른 연적들보다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떨어져 보인다. 다른 연적들이 몸 안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을 보기 좋은 모습으로 감추고 있는 것에 비하여 백자 연적은 얼굴의 한가운데와 몸의 정면에 작은 구멍을 드러낸 채로 볼품없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질박하면서도 거칠고, 두툼하면서도 메마른, 촌부의 상처난 손바닥을 연상시키기까지 한다.

새벽에 들일을 나가 거친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는 시골 아낙네는 씨앗을 뿌리는 철과 거두어들이는 철 등 계절의 변화에 몸을 맡기고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힘들여 노력한 만큼 수확을 거둘 때 기쁨의 미소를 짓는다. 그때의 순박한 미소는 푸른 대자연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그 삶을 더욱 빛나게 할 것 같다. 마치 백자 연적의 소박함이 바다의 그림자 속에서 맑고 그윽한 미소로 되살아나듯이.  

조선 시대 함허 스님의 ‘天君泰然百體從令’이란 시가 있다.

 

胡僧眼豈從藍碧

仙客顔非假酒紅

玉本無暇光亦好

心田苟淨貌相同

호승의 푸른 눈이 쪽에서 나왔던가

신선의 붉은 얼굴 술 취함이 아니다

옥은 본래 티가 없어 그 빛 또한 좋거니

마음밭이 깨끗하면 외모도 그 같으리

 

‘마음이 태연하면 온몸이 그 명령을 따르고, 마음밭이 깨끗하면 외모도 그 같으리’라는 시구처럼 백자 연적의 마음 또한 바다가 아닐까. 단순히 작은 몸 한쪽으로 물을 받아들이고, 또 한쪽으로 그것을 조금씩 내어놓기보다는 자신의 고달픈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순백의 마음으로 포용하는 것이다. 연적은 푸르고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 아닌, 온몸으로 빨아들여 바다를 마시고 바다를 토해 내고 있는 듯하다.

자연스럽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얽고 못난 것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본연을 내비추고 있는 백자 연적의 마음이 내게 깊은 울림을 준다. 연적은 푸른 바다의 물결 속에서 잔잔한 무늬가 되어 그 앞에 서 있는 내 삶의 그림자까지도 비추는 것 같다.

 

 

 

구자인혜

<한국수필>로 등단. 굴포문학회 회장.

인천 연수구청 글쓰기 강사. 인천 소양초등학교 특기·적성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