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피고 엄마는 지고

                                                                                                 박용화

 초인종의 ‘엘리제를 위하여’가 빠른 템포로 울렸다.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나는 반사적으로 “누구세요?” 외치며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아무런 인기척이 나지 않았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곧바로 두 번째 벨이 울린다. 또다시 “누구세요?”라고 이번엔 좀더 큰 소리로 외쳤다. 어둑어둑 해가 질 무렵이라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응답 없는 씨름이 계속되니 덜컥 겁이 났다. 그와 동시에 작은아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현관 쪽으로 걸어왔다.

정체 모를 벨은 자꾸만 올리는데 아이 앞에서 엄마가 가만히 있는 것도 체면이 서질 않는 것 같아 살금살금 문 앞으로 다가갔다. 어안렌즈에 눈을 바싹대고 숨을 죽이며 밖의 동정을 살폈다. 렌즈로 보이는 밖의 풍경엔 아무 이상이 없었다. 안도의 숨을 내쉬는 순간, 갑자기 렌즈 앞을 휙 지나가는 물체가 보였다. 가슴은 쿵쾅 뛰었지만 그 물체를 파악할 때까지 숨을 죽이며 눈을 고정시키고 있는데, 또다시 나타난 물체는 중학생으로 보이는 두 명의 남자애들이었다. 벨을 누르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급히 사라지는 녀석들 뒤로 현관문을 ‘퍽’ 열었다. 녀석들은 엘리베이터에 탄 채 문이 닫히길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들 도대체 왜 그래?”

나의 성난 목소리가 채 끝나기 전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 버렸다. 분이 안 풀린 나는 창문으로 걸어가 녀석들이 빠져 나올 출입구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녀석들은 출입구를 튀어오르는 탁구공처럼 재빠르게 뛰어나왔다. 나는 그 새를 놓칠세라 “너희들 비겁하게 그럴꺼니?” 하고 소리를 질렀다. 녀석들은 내 목소리의 강도에 자극을 받았는지 가속을 더해 부리나케 도망을 간다. 어둠 속으로 녀석들이 사라지는 것을 눈으로 쫓던 나는 어떤 시선을 느끼고 주변을 살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얼굴을 치켜들고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잠깐 첩보작전을 방불케 했던 긴장이 풀리면서 정신이 든 나는 좀전의 행동에 머쓱해져 얼른 뒷걸음질치며 창문에서 떨어져 나왔다.

한바탕 전쟁을 치른 것 같은 흥분을 뒤로 하고 현관문 손잡이를 돌리려는 순간 문 옆에 놓여있는 꽃과 잘 포장된 상자가 보였다. 그 야단 와중에도 딸아인 제 방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직감적으로 딸아이와 관련된 일임이 느껴졌다. 꽃다발 속에 들어 있는 카드를 펴보니 예상했던 대로 딸아이에게 보내는 것이다. 한창 예민한 나이라 전해 줘야 하나 망설이다 그래도 사실을 알려줘야 할 것 같아 아이를 불렀다.  거실로 나오는 아이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의아한 표정이다.

건네받은 메모지를 다 읽은 아이는 “나 개들인 줄 알았어!” 하며 천연스러웠다. 전해 줄 것이 있으니 방과 후에 잠깐 만나자는 말을 묵살했더니 집으로 찾아왔나 보다 하는 것이다. 막상 집으로 찾아온 녀석들은 용기가 부족했던지 아이가 나올 때까지 애꿎은 벨만 계속 누르다 목적을 달성시키지 못하고 혼만 난 채 달아나 버린 것이다. 잠깐이었지만 우리를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몰고 간 그 날의 사건은 딸아이가 성숙해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 숙녀 티가 나기 시작한 딸을 두고 남편은 “딸은 피고 엄마는 지고”라는 말을 자주 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그런 식으로 했다면 그냥 넘어가지 못했겠지만 그 상대가 딸이고 보니 어느 새 커버린 아이가 대견할 따름이다.

오래 전 내가 사춘기를 겪을 때의 일이다. 책을 읽거나 무엇엔가 몰두하다 어떤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면 저만치의 거리에서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표현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그 얼굴엔 딸이 피고 있는 것을 흐뭇해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가족과 함께 외출을 할 때면 어머니는 연탄불에 달군 고데기로 머리에 웨이브를 넣어주셨다. 머리를 매만지는 어머니의 표정은 마치 의식을 치르는 듯 엄숙하기까지 했다. 나는 한 곳에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어 온몸이 뒤틀려왔지만 차마 자세를 고쳐 앉을 엄두도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 머리 손질이 끝나면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으라고 건네 주셨다.

나는 어릴 적부터 스커트 입는 것을 무척 싫어했다. 남자 형제들 속에 끼어서 자란 탓인지 스커트를 입으면 행동에 많은 제약을 받았다. 오빠와 남동생들과 놀이에 빠져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다리의 틈이 조금이라도 생길라치면 어머니의 잔소리가 항상 따라다녔다. 나름대로 아무리 조심을 한다 하더라도 결국엔 어머니의 레이더에 걸리고 마는 일이 잦다 보니 점점 스커트를 멀리 하게 되었다.

평소엔 딸의 스커트에 대한 거부반응을 제재하지 못하셨던 어머니였다. 하지만 외출 시엔 스커트를 입어야만 데리고 갈 것 같은 무언의 압력을 넣으셨다. 어머니의 강경한 태도에 기가 꺾인 나는 선선히 스커트를 받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취향에 맞춰 곱게 단장한 나는 어머니의 단 하나뿐인 딸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 내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자랑인 딸을 앞세우고 길을 나서면 으레 사람들의 부러움에 찬 감탄사를 듣는다. 그럴 때 어머니의 얼굴은 만개한 꽃과 같았다.

나날이 피고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하는 생각에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거울 앞에 앉아 언제까지나 팽팽할 것 같은 피부가 탄력을 잃어가는 것을 바라본다. 하지만 그에 비례하여 딸아이가 성숙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언젠가 이 아이가 눈이 부시도록 피어날 즈음 나는 또 얼마나 초췌해져 있을지. 딸은 피고 엄마는 시들어 버리는 그런 상황, 그러나 나는 그 옛날 장성하는 딸을 바라보시며 만개한 꽃같이 아름답던 어머니의 모습을 꿈꾼다.

 

 

 

박용화

<계간 수필>로 등단. 시문회 회원.

공저 『시와 수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