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자야 잠깐만

                                                                                            안인찬

 어떤 사람이 경주에 가보고 싶고,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정작 가지는 않고 미적거리고 있노라는 말을 전해 들은 적이 있다. 이유인즉, 경주에 갔다가 그 동안 자기가 간직해 온 경주에 대한 환상이 깨어지는 것을 저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환상은 가능한 한 빨리 깨어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별난 사람을 다 보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을 것이다.

나로 말하자면 가고 싶었고, 갈 수 있다면 망설일 리가 없다. 우연히라도 기회가 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이다. 하다못해 작은 돌부처나 허술한 정자라 하더라도 누가 곁에서 입줄에 올리면 기어이 확인을 해야 시원해지는 것이다. 그럴 때의 명분은 복잡할 것이 없다.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가면 훗날 후회할 것이라는 것이다.

새 천년 첫 해 여름, 통일전망대를 가게 된 것이 바로 그런 연유에서였다. 강원도 대진항에 머물다가 바로 코앞에 있다기에 들른 것이었다. 대진항에 가면서 통일전망대를 볼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러므로 환상 같은 것은 처음부터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일단 가보기로 마음을 먹고 나니 마치 초등학생 때 숙제를 받았을 때처럼 조바심이 났다. 얼른 다녀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통일전망대에 가는 것이 동네 뒷동산을 오르듯이 나서기만 하면 되는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 천리 밖에서 오는 사람이건 바로 아랫마을에서 오는 사람이건 일단 신고소 앞에 차를 세우고 정해진 절차를 밟아야 했다. 우선 전망대에 오를 사람의 이름과 주소, 주민등록번호까지 신고서에 적고, 이천 원을 내면 입장권이 나왔다. 입장권을 받은 다음에는 교육용 영화를 보고 신고할 때 지정받은 시각이 되어야 비로소 차를 움직일 수 있었다. 입장권은 돈을 냈다는 표일 뿐 얼마를 가다 보니 이번에는 군인들이 차를 세우고 증명서를 내라 하였다. 증명서와 바꾸어 받은 것은 차량 출입증.

그것을 받아들고 철조망 곁을 따라 북쪽으로 달리기 시작하니 기분이 야릇하였다. 전방에서 군대생활을 하였으면서도 오래된 탓일까 길 옆에서 불쑥 무장공비라도 뛰어나올 듯 조마조마하였다. 모르는 것이 약인지 군대생활을 해보지 않은 아내와 딸은 덤덤한 표정이었다. 이런저런 군사 시설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철조망에 갇히어 사람 땟국이 섞이지 않은 맑은 바닷물을 지나치는 것만 아쉬운 모양이었다. “저것 좀 봐!”를 연발하면서 바다에만 관심을 보였다.

그런 저런 동행들이 숨을 고르고 함께 열을 짓는 곳, 마침내 전망대 주차장에 이르니 그곳은 그늘을 만들 만한 나무 한 그루도 없었다. 그것이 환영하는 방식인지 7월의 따가운 햇볕을 곱빼기로 부풀려 견디기 힘든 열기로 토해 낼 뿐이었다. 관광객들은 그 열기에 밀려 몰아세우는 이 없어도 가파른 언덕을 쫓기듯 부지런히 올라갔다. 아마 전망대 언덕에 올라서면 바닷바람이 시원하겠지 싶어서였을 것이다.

전망대를 돌아보고 내려오는 이들의 걸음걸이는 오르는 사람들의 그것보다 한결 동동거렸다. 일백쉰 개가 넘는 층계 길에 그늘 한 점 없고, 환상이건 기대건 모두 깨지고 뒤집어진 끝, 이제 돌아갈 천리길이 급해진 탓이었으리라. 오르고 내리는 이들이 엇갈리며 허둥대는 모습이 흡사 이름난 성지의 순례 행렬 같았다.

그 행렬 속의 한 점이 되어 전망대에 오르니 멀리 바닷가에 희미하게 떠 있는 바위 무더기들이 해금강이라나. 그렇다니 그런가 보다 싶을 뿐 놀랍거나 감탄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철조망 따라 군데군데 멀리 보이는 초소들이 다소나마 궁금증을 자극하였다. 그것들을 가리키며 어떤 이는 아군 초소라고 우기고, 다른 이는 적군 초소라고 장담하는 목소리가 시끌시끌하여 그런대로 심심파적이 되었다. 안내판도 안내원도 없는 언덕바지를 행렬 따라 한 바퀴 돌아오면서 환상이나 기대가 없던 마음이면서도 싱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누가 물으면 통일전망대에 가보았다는 대답은 자신 있게 하게 되었으니 숙제 하나를 마친 셈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일인가를 생각하면 허전할 뿐이었다. 통일전망대에 다녀왔다는 경험으로 말하자면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다녀온 사람이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일전망대에 다녀온 횟수는 결코 자랑할 일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비록 한 번이지만 통일전망대에 다녀오면서 얻은 것이 남다르기 때문에 그것을 자랑할 만하냐 하면 그런 것도 없었다.

통일전망대를 다녀온 소감이 이처럼 싱거운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문제가 있는 탓일 것이다. 군 검문소를 지나 전망대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띄엄띄엄 옛날에 있었던 마을들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논밭에는 여늬 들판처럼 곡식이 자라고, 오솔길이 휘돌아간 고개 너머에 그 논 밭 주인들이 살고 있을 것 같은 풍경이었다. 그 마을에 살다가 실향민이 된 사람이라면 그 표지판만 보고서도 눈물이 나오고 감회가 깊었을 것이다.

전망대 가장자리에는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그들 가까이에 성모 마리아님과 부처님도 북녘 바다를 향하여 묵묵히 서서 하나의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누구 하고건 시원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군인들에게는 접근이 어렵고, 성모님이나 부처님과 대화를 하기에는 주변 분위기가 적합하지 않았다. 상인들이 열심히 외치고 있었지만 기껏해야 “동전 바꾸슈”, “비디오 보고 가세요” 하는 소리로 귀만 따가웠다. 서둘러 돌아서는 마음이 그래서 답답하기만 하였다. 애시당초 무엇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가까이 있다니 가보자고 나선 길이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였다.

어찌 통일전망대를 돌아내려오는 소감만 그러하랴? 석굴암의 부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말이다. 들은 말이 있는지라 본존 불상의 아름다움을 감상해 보려고 애를 쓴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리 아프고 목마른 생각뿐이어서 서둘러 내려오고만 경험을 두 번이나 하였다. 안목의 수준에 문제가 있어서일 것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 앞에서도 느낄 것이 없는 주제에 무엇을 보고 나서 시시하게 여겨지면 허전함을 느끼는 지각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 우스운 일이다.

그래도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말만 들으면 이도령 모시는 방자 촐랑이듯 참아 내지를 못하고 찾아 나선다. 환상이나 기대는 갖지 않더라도 우선 안목을 높여 가지고 길을 나서야 될 것이라고 자신을 타일러 본다. 그 전에야 하루에 열두 번씩 통일전망대나 석굴암 앞에 세워놓은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싶어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