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 개미

                                                                                                   崔弘植

 생각해 보면 그것은 아득한 옛날 일이었다. 그 동안 숱한 세월이 흘러갔기에 고향의 동네 모습도 많이 달라졌다. 그리고 반쪽만 남은 옛날 우리 집도 이제 낯설기만 했다. 그러나 사라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 오늘도 나는 고향의 옛날 집 주변을 배회하며 어릴 때의 일을 꿈꾸고 있다.

그때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살구나무 집이 있었다. 살구나무 집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그 집 채소밭 울타리에 지붕보다 더 높게 자란 살구나무 한 그루가 서 있기 때문이었다. 그 나무 주위의 공간에는 늘 아이들이 모여 놀았다. 우선 놀이터로서 그 크기도 적당했지만, 봄에는 살구꽃이 아름다웠고, 여름이면 나무 그늘과 열매가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있어서 살구나무가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은 바로 노랗게 익은 살구 하나를 얻어 먹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놀이터에서 우리는 제기차기, 말타기, 공기놀이, 비석차기, 구슬치기, 땅재먹기, 고무놀이, 자치기, 딱지치기 등 각가지 놀이를 하였다. 특히 우리가 즐겼던 놀이는 구슬치기와 땅재먹기였다. 그런 놀이에도 싫증이 나면 우리는 나무 둥치나 그 등을 따라 오르내리는 개미를 잡기도 하고, 긴 막대로 가지를 치면서 익지도 않은 살구를 따먹기도 하였다.

어느 해였던가. 바로 그 살구나무 집에 새 가족이 먼 도시로부터 이사를 왔다. 어머니와 남자 두 형제, 그래서 가족은 모두 셋이었다. 남자 형제 중 둘째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 정도 많았다. 그가 우리의 놀이 공간에 나타난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사건이었다. 처음부터 그는 마치 폭풍처럼 우리를 몰아붙였다. 그래서 이사온 지 몇 달 되지 않아서 그는 우리 동네 아이들의 큰형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우선 그 친구는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을 하나하나 힘으로 제압하였다. 힘으로서 뿐만 아니라 놀이도 그가 나서면 모두 이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기 집 살구나무도 그는 아주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다. 나무 주위에서 우리가 놀고 있을 때 그의 위세는 더 당당하였다. 여름이 되자, 탐스럽게 익어가는 살구 열매가 그에게 또 다른 방법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때로는 잘 익은 살구가 땅에 떨어지기도 했는데, 누가 그것을 주웠는지 일일이 확인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살구를 주워서 그에게 보이면 미리 준비한 잘 익은 살구를 몇 개 더 얹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 중에 누구든지 몰래 나무에 올라가 살구를 따서 먹거나 긴 막대로 가지를 흔들어서 떨어진 살구를 가졌다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아이에게 고통을 주었다.

그와 가까이 지내면서 내가 발견한 것 중의 하나는 이상할 정도로 그는 살구나무 자체와 그 나무에 살고 있는 작은 생물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무 둥치를 돌로 치거나 나뭇가지를 꺾거나 칼로 나무에 상처를 낸 아이를 보면 결코 가만두지 않았다. 그 정도에 따라 정확히 때리고 보복을 가했다. 하물며 나무 둥치 위로 기어가는 개미까지 잡지 못하게 하였다.

그때 우리는 개미들에게도 적잖은 관심을 가졌었다. 사실 개미 역시 우리들의 놀이 대상이었고 또 그 일부였다. 나무 둥치와 허리를 오르내리는 그들을 보면 검정개미 한 종류뿐인 것 같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더 작은 검붉은 개미와 아주 작은 개미도 있었다.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그 중에서도 숫자도 많고 몸집이 큰 검정개미였다. 손에 쉽게 잡을 수도 있고, 우리 눈으로 분명히 더듬이와 다리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개미를 잡아 개미 경주를 시키거나 곤충 표본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개미에 대한 우리의 행위를 그는 늘 마땅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봄부터 살구나무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름이 되기 전에 작은 살구들도 모두 떨어지고 잎이 시들면서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이 들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뭇가지도 썩어가고 벌레들도 많이 번식하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이 나무를 베어야 한다고 의논을 하고 있었다. 살구나무를 베지 않으면 다른 여러 나무들도 병들 것이라고 하였다. 그때 아직도 소년이었던 그 친구는 어른들께 나무를 베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 와 보니 그 나무는 사라지고 둥치마저도 도끼로 쪼아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무가 있던 자리에는 흙이 파헤쳐지고 다시 다른 흙이 덮여 있었다. 정들었던 살구나무는 그렇게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우리로서는 정말 슬픈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그 후 친구는 우리 놀이터에 꽤 오랫동안 얼굴을 나타내지 않았다. 일이 있어도 그냥 그곳을 지나가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친구의 집에서 그를 만나고 또 놀았다. 집은 늘 친구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방에서 구슬치기를 하거나 딱지치기를 하였다. 그리고 그런 놀이에서 싫증이 나면 그는 자기가 전에 살았던 도시의 일들을 얘기해 주기도 하였다. 어느 날 친구는 옆방으로 나를 안내하고는 이상한 것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두 개의 투명한 유리병이었다. 제법 큰 유리병 안에는 흙이 담겨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속에는 흙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많은 생물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개미들이었다. 그는 아주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유리병 속의 내용을 하나 하나 보여 주었다. 개미가 지은 야릇한 모양의 집도 보였다. 개미 알 같은 것도 있었고, 흙 위에는 보리쌀 같은 부스러진 곡식 낟알도 있었다. 그리고 종이로 된 뚜껑에는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나 있었다.

그는 조용히 나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 개미들은 저 살구나무 둥치에서 살고 있던 것들이야. 집을 잃고 헤매고 다니던 개미들이었지” 하고는 아주 사랑스런 모습으로 개미집을 살펴보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는 살구나무 둥치에서 살고 있던 개미들을 이 유리병에 옮겨 그들을 보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의외의 일이어서 말을 잊고 그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그만큼 가슴 뭉클한 충격을 나에게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에도 나는 꽤 오랫동안 유리병 속의 개미들을 정성을 다해 관리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던 그가 가족들과 함께 다시 도시로 이사를 갔다. 마치 올 때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어느 날 떠나 버렸다. 결국 그는 겨우 몇 년간 우리와 함께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특히 나에겐 아주 진한 모습으로 그의 존재가 마음 속에 남아 있었다.

지금 나는 그때의 일을 생각하며 살구나무가 있었던 이곳을 계속 서성거리고 있다. 이제 그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 나무와 개미에 대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아직도 나는 왜 그가 나무와 개미에 대해 그처럼 집착하고 있었는지 모르고 있다. 나무와 개미를 향한 따스한 생명 사랑 때문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나무와 개미를 통해 그를 더 기억하게 되었고 또 그 친구 때문에 비로소 생명의 소중함을 나는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모두 옛날 일이었다.

 

 

 

최홍식

<수필문학>으로 등단. 현재 부산대학교 교수.

수필집 『사랑을 그리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