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과 아내 ─ 그 편안함의 매력

                                                                                                      南基樹

 함께 사는 데에는 때때로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편리함을 높이 치는 때가 많아 보인다. 우리 주위에서 멀지 않은 예를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하나씩은 들어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사람들을 이어놓는 감정들 중의 이런 요소는, 반드시 사랑으로 분류되지는 않더라도, 사는 데는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몇 쌍의 부부들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제각기 늘어놓은 중에 결국 사람이 만나서 사는 이야기로 귀착되었었다. 그때 한 부부가 자기들은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지금처럼 맺어지기를 바란다”고 단언했는데, 피차가 이미 서로에 익숙해져 있어서 다시 만난다면 적응 기간이 없어도 아주 편리할 것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이것은 두 사람 사이의 삶에서 일상의 실제적인 면이 좀더 부각된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부부간에 단조로운 분위기가 계속되는 것을 자기 탓으로 돌리는 쪽이라 때때로 아내의 마음을 풍선처럼 부풀려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함께 해야 하는 삶이라는 늪에서 막연하기는 하지만 편리함 같은 어떤 것을 그도 의중에 나름으로는 두어왔을 것이다. 어떤 연유에서건 그는 종종 말을 걸어서 ‘여인의 매력’이 있다고 하여 아내의 마음을 북돋으려 한다. 그의 아내는 그가 하는 말을 아무렴 그렇겠느냐는 듯 웃음으로 흘려 듣는 편이다. 대체로 싫지는 않으나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도 않는 표정이다. 그런데 실은 그가 자기 아내를 대하는 때면, 그 자신의 생각으로도, 아내를 느끼는 남편이면 잠겨드는 그런 편안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자기 마음을 이처럼 교묘하게 포장해서 아내와 자신을 이중으로 굳게 둘러싸 놓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내적인 조응은 본능에 가깝도록 근본적인 것이라서 차라리 무의식의 단계로까지 내려가서 사람들을 이처럼 결속시켜 놓는 것도 같다.

오늘도 그는 집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서 같은 말을 던지고 말았다. 며칠 전의 언쟁과 그 이후의 조용해진 그를 의식한 듯 그의 아내는 대답이 반은 비양조였다.

“나는 언제나 같아요. 변화가 이는 것은 당신 쪽이지……. 오늘은 또 무슨 생각이 들기에 이러시는 것일까?”

별다른 의미 없이 무료하니까 그것을 깨기 위해 짐짓 지어보는 표정 같은 게 그에게는 고작이었을 것이라 해도, 그리고 그의 속셈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그의 아내라 해도 남편이 짓는 관심에 무심할 아내가 없다는 것은 진리와 진배 없는 결론이리라. 아내에게 너스레를 떨어보는 그의 마음은 그래서 여유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조금은 대담해지기도 해보는 것이다.

“여보, 잠깐만 이쪽으로 얼굴을 돌려봐요. 아니, 이렇게. 그래 그래 됐소. 아, 무척 아름답구려. 넉넉해 보이는 당신의 표정이…….”

요즈음의 그의 아내는 사람의 몸에 관해서 부쩍 무심해져 가고 있다. 가슴 수술 이후로 조심해 오던 것이 그대로 습관으로 굳어버린 것일까? 혹은 몸으로 인해 오는 위축감을 스스로 외면하기 어려워 역으로 취해보는 심리에서 그러는 것일까? 그 동기야 어디에 있던 간에 성서에 몰두하면서 의도적으로 지어보는 듯한 아내의 태도가 그에게는 슬픔도 같고 아픔 같기도 하게 마음 한쪽을 채워놓고 있다. 그래서 아내가 그런 류의 체념 같은 것에서 벗어나 있도록 하려고도 했을 것이다.

“물론 내가 많이 변하는 편이지… 상상의 폭도 넓고 다양하니까. 항상 변화가 일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겠소? 그렇지만 당신에게 여인의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오. 무심한 듯 짓는 담담한 표정이나 몸놀림, 당신의 편안한 그 자세가 사람들에게 당신의 곁을 찾게 하는 것이지. 나는 그렇게 느끼고는 하오. 언제나 자족해 보이는 당신의 편안한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소.”

그는 자신의 관심도 내비치고 아내의 기를 살려내고 싶기도 해서 길게 말을 이어나간다. 그러면서 부엌에서 움직이고 있는 아내의 뒤를 바짝 따라붙는다. 그의 아내가 핀잔으로 그를 밀어낸다.

“비켜요. 음식 준비하는데 불편하게 하지 말고. 곧 저녁 준비가 되니까 상 쪽으로 가 있어요.”

근래의 그에게는 사람들이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따라다닌다. 지금까지 속해 왔던 모든 것들에서 우리 자신이 떠나야 할 때가 갑자기 올 수도 있는 일이고, 이에 대비해 두어야 할 일이 없지도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종말을 대면하는 우리 자신의 감정을 훈련시켜야 할 일도 그 하나가 될 것이다. 혹은 임종을 맞고 있는 우리 자신의 침상을 둘러선 사람들의 얼굴도 견뎌내야 할지도 모른다. 둘 가운데 한쪽이 먼저 가면 홀로 뒤에 남게 될 그 사람의 모습이 가슴에 밀려와 맺혀 있을 수도 있다.

주변에서도 헤어짐의 느낌은 여러 경로로 우리에게 와 닿고 있다. 예를 들면 아이들의 독립이나 결혼을 통해서도 헤어짐의 느낌은 문득 와서 무언중에 자리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활로 달라져가는 친지와 친구들을 대하게 될 때마다 은연중 약해져가는 유대감 같은 데서도 헤어짐의 경우를 조금씩 확인하게 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인 것이다.

이런 것들은 이제는 현실적인 의미로 그의 머릿속에 들어앉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런 탓인지 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때면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해 측은한 느낌에 젖어드는데, 그는 의외로 이런 측은한 느낌 안에서 나른한 편안함 같은 것을 맛보는 때가 종종 있다. 그럴 적이면 물렁물렁한 흰물질처럼 익숙해진 구체성을 띄고 조금씩 그 터를 넓혀오고 있는 헤어짐의 잠 같은 이러한 느낌 속에서 그는 편안해지는 자신의 내면을 약간은 놀란 응시로, 그러나 조용히 바라보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