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同伴者)

                                                                                                     金素耕

 건강 검진을 받은 남편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왔다. 의사는 술과 음식을 절제하며 운동을 하라고 한다. 평소 외식이 잦은 남편이 요즘 들어 부쩍 과음을 하는 편이라 걱정을 하던 중이었다.

남편은 술을 한 다음 날이면, 과음을 하지 않겠다고 먼저 약속을 한다. 과음으로 해서 생길 수 있는 성인병에 관한 내 잔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선수이다. 설마 하며 또 남편의 말을 믿는다. 내가 번번이 그의 말을 믿는 것은 그의 줄담배를 끊은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오래 전 일이지만, 나도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하다가 과음을 한 적이 있다. 다음 날 술병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진저리가 쳐졌다. 그러한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도 과음을 하면 어김없이 힘들어하는데, 과음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을 믿게 되는 또 다른 이유가 된다. 그러나 남편의 결심은 오래 가지 않는다. 매번 회식중, 곧 들어온다는 말을 하지만 자정을 넘기기 일쑤다. 간혹 취중에 먼저 잠자리에 들라는 연락이 올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마음놓고 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외 없이 만취되어 들어온 남편을 위해 오이를 준비한다. 아침이면 칡즙을 만들고 북어를 손질하는데, 밉지만 숙취 해소를 위해서다. 술국을 끓이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회갑을 바라보는 처지의 모습은 아닌 듯하다.

그렇긴 해도 술 한 잔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란 향기 없는 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때에 따라 위안을 주고, 예술을 하는 어떤 이들에게는 벗과 다름없는 것이 술이라지 않은가. 나도 이쯤은 아는 일이나, 적당히 마신다는 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모양이다. 과음을 한 남편은 내가 정성껏 끓인 북어국도 마치 쓴 약을 마시듯 한다.

연전에 조선 왕조의 마지막 화가 오원(吾園) 장승업의 전시회를 보면서, 술과 그의 인생에 대한 남다른 면모를 알게 되었다. 금전이나 권력은 그에게 별다른 의미를 주지 못했고, 가정생활은 하룻밤의 신혼뿐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삶과 예술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술이었다. 재능을 안 고종 임금이 궁에서 그림을 그리게 했으나, 술을 마음대로 마실 수 없어 도망을 친 사람이다. 그림 값으로 받은 돈을 고스란히 주막에 맡겨 놓고 술을 마신 그는, 취한 상태에서 신운(神韻)이 넘치는 작품들을 남겼다고 한다. 그러나 취중에 붓을 든 화가의 모습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경지는 아닐 것이다.

남편의 과음에 대해 내가 걱정하는 것은, 건강도 건강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염려해서이다. 몇 해 전 겨울, 만취가 된 남편은 샤워를 한다고 고집을 부리며 욕실로 들어갔다. 곧 나오려니 했는데 기척이 없다. 욕실 문을 열어 보니 벗은 몸으로 찬물이 흘러 넘치는 욕조 안에서 잠을 자고 있지 않은가. 서둘러 물을 잠그고 마개를 뽑았지만, 내 힘으로는 방으로 옮길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온수로 몸을 데우고 이불을 덮어 주면서 잠시 기다렸다. 나는 그 날 밤, 이런 실수로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남편을 이해하지 못한 자책이 들었다.

부부라는 동반자의 길은 예기치 못한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나 자신의 관리는 배우자에 대한 배려가 되며, 이것이 곧 순탄한 여정을 위한 지혜가 아니겠는가. 이를 모를 리 없는 남편이 과음을 하는 것은 어쩌면 사회 생활에서 엮어지는 인간관계 때문이 아닐까.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품이지만, 자신을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을 모를 사람이 아니다. 건강을 잃는 줄 알면서도 과음을 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입장을 헤아려 본다. 남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침 식탁을 고르게 차리고, 모든 문제를 긍정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끔 나에 관해 물어보는데, 되도록 그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서이다.

검사 결과가 나오고 한 달이 지났다. 그 동안 오이 즙을 내는 일이 줄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조금 내려갔다. 의사의 말은 믿고 따르면서, 나의 의학 상식은 잔소리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휴일 아침에 뒷산으로 가면서, 남편에게 뭘 믿고 그렇게 과음을 했으냐고 물었더니, 노래를 하듯 ‘당신’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