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론 천료작 -

 기운(氣韻)과 성령(性靈)의 통일

김용준 수필론 ─

                                                                                                     박장원

 1

 

뜨락의 토종 감나무를 사랑한 김용준(金瑢俊 : 1904~1967)의 수필은 현대 에세이에서 적지않은 찬사를 받고 있다. 사물의 명암과 실재를 미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던 화가의 산문 이력은 문단에서 하나의 실험적인 성공으로 인정되고 있다.

경북 선산(善山)에서 태어난 그는 염소수염으로 노시산방의 주인이라서 노시산인(老枾山人) 그리고 청말(淸末) 김근원(金近園)의 근(近)을 두고두고 못잊어 근원(近園)을 아호로 하였으며, 개호(改號)는 즉흥적이고 한두 번 쓰고 버린 호도 적지 않다.

근원의 짤막하고 멋있는 염소수염은 일종의 신비적인 선모심까지 자아내게 하였던 까무잡잡하고 우스꽝스런 오원 장승업의 수염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커다란 자부심이었지만 결국 그 우스운 수염이 빌미가 되어 월북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월전 장우성의 『내가 마지막 본 근원』에서의 이야기도 있다.

근원은 이성적이라기보다는 감상적이며 차분하다기보다는 우발적이고 호방하다기보다는 분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특히 서양화를 숭상하고 동양화에 모멸감까지 가졌던 근원에게 일자무식 오원의 10곡 기명절지도(器皿折枝圖)는 유화에서 문인화로 돌아서는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그의 이런 변화는 수필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기에 간과할 수 없다. 그가 수필을 활발하게 쓰던 시기가 바로 문인화로 전환되던 때이다. 만약 근원이 시종 서양화풍의 유화만을 가까이 하였다면 한국화의 필법이 물씬한 근원수필은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술계에서는 그를 모더니즘, 현실인식과 비판의 선비정신 소유자로 규정한다. 양화 도입기의 2세대에 속하여 동서양을 두루 섭렵한 그의 미술활동은 1920년대 중반에서 1930년대 초반의 유화 시대, 1930년대 중반의 유화와 문인화 복합 시대 그리고 1930년대 후반의 본격적인 문인화 시대로 나눈다. 한 마디로 본격적인 문인화 시대는 수필 창작시기와 맞물린다.

 

마차(馬車)가 앞을 서고 우차(牛車)가 뒤미처 따라간다. 말이란 놈은 허울 좋은 털을 푸르르 날리면서 그 길지막한 다리를 보기 좋게 성큼성큼 떼어놓는 양이 돈 관이나 좋이 없앤다는 오입쟁이다.

뒤에 따르는 소란 놈은 어떠냐.

이놈은 갈 데 없는 촌놈이다. 촌놈에도 상복 입은 촌놈이다.

그 험상궂은 상판에 무지스런 뿌다구니하며, 여북하면 얼음에 자빠진 쇠눈깔이란 소리까지 듣는 번들번들한 눈깔딱지하며 게다가 걸음걸이조차 느레고자처럼, 느릿느릿 걷는 양이 저러고서야 “그놈 소 같은 놈”이란 욕설이 아니 생길 수 없으리 만큼 그놈은 미련해 보인다.

─ 「말과 소」 중에서

 

양화에 대한 동경으로 동경 미대 서양화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였지만, 오원의 대담한 패기와 치밀한 사실력을 추앙한 내면에는 어쩌지 못하는 향토적 정서에 입각한 사의(寫意)가 깔려 있다. 무지스런 뿌다구니와 번들번들한 눈깔딱지로 느레고자처럼 느릿느릿 걷는 미련한 소의 화품(畵品)은 부드럽고 구수하면서 구심점을 확보한 기운생동(氣韻生動)·응물사형(應物寫形)의 필세가 경쾌하다. 언뜻 산문의 필법인데 눈감으면 영락 없는 문인화의 화법이다.

근원은 분방한 성격처럼 변신도 대담했다. 수염을 기르고 깎는 동기, 유화에서 문인화로 돌아서는 계기 그리고 돌연한 월북까지도 거리낌없다.

주변인물 파악도 근원의 인생관 이해의 지름길이다. 중학 시절부터 혼자서 흠모한 「빈처」의 현진건과 동경 유학 시절에 만난 이태준은 문학 입문의 단초가 되었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겠다며 자신의 한쪽 눈을 찌른 기벽의 화가 호생관(毫生舍官) 최북(崔北)과 거속의 강개한 기절과 삼각 수염의 끼끗한 선비화가 임희지(林熙之)를 솔직한 표현의 예술가로 추앙하였고, 무학의 천재 화가 오원을 마음 속으로 사사하였다. 특히 그는 청나라의 가난한 선비이며 기개 있던 정판교(鄭板橋)를 흠모하였다.

 

50이 넘은 판교(板橋)는 마음에 맞지 않은 관직을 버리고 거리낌없는 자유로운 심경에서 여생을 보냈다. (중략) 퐁당 물결이 여울처럼 흔들리고 나면 거울 같은 수면에 찌만이 외롭게 곧추서 있다. 한 점 찌는 객이 되고 나는 주인이 되어 알력과 모략과 시기와 저주로 꽉 찬 이 풍진 세상을 등 뒤로 두고 서로 무언의 우정을 교환한다. (중략) 아아! 잉어가 보고 싶다. 그 희멀건 눈을 번뜩거리며 끼끗한 신사의 체격을 가진 잉어가 연잎과 연잎 사이로 자유스럽게 유유히 왕래하는 현명한 신사 잉어가 보고 싶다.

─ 「조어삼매(釣魚三昧)」 중에서

 

이 산문은 근원수필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다. 매끄러운 노방에 한 폭의 이어도(鯉魚圖)가 생생하고, 연잎과 연잎 사이를 유유자적 노닐다가 불쑥 수면 위로 솟구치는 미끈한 잉어를 놓치지 않고 포착한 것은 근원의 내면을 그대로 기탁한 것이고, 화폭에는 진실과 활력 그리고 새로움이 배어 있고, 거울 같은 수면에는 깐깐한 선비정신이 퍼렇고, 그 물결에는 다름아닌 판교가 버티고 있다.

괴이한 화가들로 독창적인 화풍을 보인 양주팔괴(揚州八怪)의 일원이며 시인이었던 판교는 그림을 그리고 화제를 써서 시서화(詩書畵)의 회화 기법적 완결성을 보여 주는데, 좌절과 울분을 삭이며 내면을 강렬하게 표출하였던 명대(明代) 서위(徐渭)와 명황실의 후예로 삭발하고 전도승이 되어 떠돌며 옛 그림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개성을 발휘하였던 팔대산인(八大山人)의 화보(畵譜)에 속한다. 특히 대담하고 거친 필치, 빠른 속도로 그린 간결한 구성으로 야성을 보인 한국의 최북이 바로 양주팔괴에 비견되고 있으니, 결국 근원의 미술세계는 거속·기벽의 천재 화가와 신화 지향의 낭만적인 접근이다.

월북 후 평양 미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미술사학자로 활동하는 근원의 이력은 미술에 국한된다. 다시 말해 수필은 월북하기 전까지만 썼다는 것이며, 만약 그가 평양에 가지 않았다면 보다 무르익은 또 다른 근원수필이 가능하였을 것이다.

 

 

2

 

농사와 간단한 의료활동을 하던 평범한 가정의 막내였던 근원은 1947년 서울대 회화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미술대요(朝鮮美術大要)』를 출간하고, 1950년 월북과 함께 수면 아래로 잦아들면서, 유작이 되어 버린 『근원수필』을 통해 신비적 색채의 수필가·미학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은둔의 인물이다.

1948년 발간된 『근원수필』에 발(跋)을 포함 31편, 해금과 함께 1988년 재출간된 『풍진 세월 예술에 살며』에 추가된 14편, 여기에서도 빠져 버린 9편이 산재하여 있으니 그의 수필은 대략 54편이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말을 듣든지 내 경험으로 보아서든지 아무튼 수필이란 글 중에서도 제일 까다로운 글인 성싶다. (중략)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맛 단맛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는 글이고서야 수필다운 수필이 될 텐데……. 그러나 불행인지 행인지는 모르나, 마음 속에 부글부글 괴고만 있는 울분을 어디에다 호소할 길이 없어 가다 오다 등잔 밑에서 혹은 친구들과 떠들고 이야기하던 끝에 공연히 붓대에 맡겨 한두 장씩 끄적거리다 보니, 그것이 소위 내 수필이란 것이 된 셈이다. (중략) 이 중에는 묵은 글도 있고 새 글도 있고 수필 비슷한 것도 있고 화인전(畵人傳) 비슷한 것도 있고 군소리 비슷한 것도 있어 잡채 무치듯 뒤죽박죽으로 버무려 놓았다.

─ 「발(跋)」 중에서

 

감상적이고 넋두리같이 헤성한 듯한 이 글에는 수필의 주요한 요소들이 망라되어 있다. 격정과 불행과 불만과 관대가 발효된 발분저서(發憤著書) 정신이 뚜렷하고, 생각이나 느낌이 떠오를 때마다 바로 적는다는 자연유로(自然流露)에 근거하고 있으며, 수필의 쉬운 듯하면서도 난해한 성격까지 예사로운 수필론이 아니다.

미학가의 시선에서 싹을 틔운 근원수필은 구심점의 확보가 뚜렷하면서 매력과 흡인력이 우러나고, 그대로의 나상을 그대로 보여준 수필의 본령을 고수하고 있으니 수필과 그는 성격상의 또 다른 인연이었다. 서양화를 전공하고 문인화로 장르를 바꾼 미술가의 내력이 아니었다면 수필에서의 꽃피움은 근원적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게란 놈은 첫째 그리기가 수월하다. 긴 양호(羊毫)에 수묵(水墨)을 듬뿍 묻히고 호단(豪端)에 초묵(焦墨)을 약간 찍어 두어 붓 좌우로 휘두르면 앙버티고 엎드린 꼴에 여덟 개의 긴 발과 앙증스런 두 개의 집게발이 즉각에 하얀 화면에 나타난다. 내가 그려 놓고 보아도 붓 장난이란 묘미가 있는 것이로구나 하고 스스로 기뻐할 때가 많다.

그러고는 화제(畵題)를 쓴다.

滿庭寒雨滿汀秋(뜨락 가득 가을 찬비 내리니)

得地縱橫任自由(게란 놈들이 때를 만난 듯하구나)

公子無腸眞可羨(속없는 그들이 부러운 것은)

平生不識斷腸愁(평생 단장의 비애를 모르기 때문이네) ─ 「게(蟹)」 중에서

 

어해(魚蟹)를 즐겨 그렸다던 근원의 자기 비판과 주변의 경계 그리고 사회 분당을 경고한 작품이다. 그런 잠언 성향의 작품에 서경적·서사적 요소들이 균형 있게 갖추어져 읽는 눈길도 신선해지고, 뒷맛도 남는 매력적인 수필이다. 거친 붓놀림 그리고 순간 포착이 발랄한 가운데 그윽한 여백의 확보는 문인화의 미학적 체취이며, 그는 붓장난이라 하였지만 환을 치다가 자연을 빌어 작가의 청고한 심경을 호소하는 예술의 밑바탕임을 슬며시 암시하고 있다.

 

툭 튀어나온 눈깔과 떡 버티고 앉은 사지(四肢)며 아무런 굴곡이 없는 몸뚱어리 ― 그리고 그 입은 바보처럼 ‘헤~’ 하는 표정으로 벌린 데다가 입 속에는 파리도 아니요 벌레도 아닌 무언지 알지 못할 구멍 뚫린 물건을 물렸다. 콧구멍은 금방이라도 벌름벌름할 것처럼 못나게 뚫어졌고, 등허리는 꽁무니에 이르기까지 석 줄로 두드러기가 솟은 듯 쪽 내려 얽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약을 갖은 재주를 다 부려가면서 얼룩얼룩하게 내려 부었는데 그것도 가슴 편에는 다소 희멀끔한 효과를 내게 해서 구석구석이 교(巧)하다느니보다 못난 놈의 재주를 부릴 대로 부린 것이 한층 더 사랑스럽다.

─ 「두꺼비 연적을 산 이야기」 중에서

 

가난한 화가였던 근원은 천변만화의 조화가 숨어 있다는 추사의 글씨나, 희미한 보름달처럼 아름다운 백사기를 본의 아니게 멀리 하고, 못생겨 그냥 준다고 하여도 안 가져갈 희한한 두꺼비 연적을 사랑한 이유는 다름아닌 바로 이 대목이다.

“나는 고독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풍진(風塵) 세월의 고독한 선비였다. 입에 문 것을 뱉어 버릴 줄도 모르고, 준 대로 물린 대로 엉거주춤 앉아서 울 것처럼 웃을 것처럼 도무지 네 심정을 알 길이 없다는 못생긴 두꺼비가 바로 그 자신이었다. 근원에게 현실은 언제나 황갈색으로 검누른 유약을 내려 씌운 멋대로의 세상이었다. 그 풍진을 탈출하지도 않고 회피할 위치도 아닌 근원은 그만의 고독에 빠진 것이다. 두꺼비 연적에는 그의 페이소스가 표출되고 있다. 두꺼비 이야기의 사실적·해학적인 표현과 토속적인 방언 그리고 유연한 시적 운율 속에는 미술가와 문인이라는 두 요소가 함께 자연스레 어우러진다. 특히 이 글에는 ‘시에 그림이 있고, 그림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에 근거한 ‘시와 그림은 하나다(詩畵一如)’의 모더니즘 형상화 흔적이 확연하다.

 

빙허(憑虛)는 나보다 혹 3,4세 위일는지도 모른다. 빙허가 그의 처녀작 「빈처(貧妻)」를 <개벽>지에 발표했을 때 나는 촌에서 갓 올라온 중학생이었다. 「빈처」를 읽고 감격한 나는 곧 그에게 만나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빙허도 곧 내게 회답을 했고 그 뒤에도 여러 번 같은 자리에 앉아 보기까지 했지만, 나는 종내 그에게 말을 건넬 용기가 없도록 수줍었고 빙허도 나에게 말을 건네기까지는 못하였다. 우리는 서로 짐작만 하면서 십여 년의 세월이 물 흐르듯 흘러갔다. (중략) 돌연히 빙허가 죽었다는 기사가 나타났다. 나는 처음으로 전농동(典農洞) 빙허의 집에 조객으로 찾아갔다. 그러나 빙허는 이미 나와 통성명할 처지는 아니었다. ‘아무도 빙허와 내가 인사 없는 자리인 줄은 몰랐으리라.’

돌아서면서 나는 솟는 눈물을 금할 길이 없었다. 수원과 판교는 20년 후에야 서로 만났다지만 빙허와 나는 2백 년 후이면 혹 만날 날이 있을는지!

─ 「원수원과 정판교와 빙허와 나와」 중에서

 

잔잔한 감동이 있고, 생활 속의 선비정신이 담담히 스며들어 평이하고도 진솔한 언어로 꾸며졌지만, 그 여운에는 깊이가 있어 감치는 정서와 아스라한 유머가 유유하다. 이것이 품격 높은 산문의 정수인 것이다. 병든 몸으로 세상을 버린 빙허도 풍진의 인물이었고, 근원도 거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에 짤막하지만 문향(文香)은 더욱 넓게 퍼진다.

특히 처음 만난 칼라일과 에머슨의 싱겁고도 이상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단편소설의 선구자 현진건이 등장하고, 개성의 해방을 주장하고 전통적 예교를 부정한 중국 공안파(公安派)의 낭만주의 이론을 그대로 계승하여 진실한 감성과 개성의 표현을 추구한 성령설(性靈說)을 편 원매(袁枚)의 시론(詩論)을 바탕으로 창조적 문학 건설에 가담한 정판교, 그들의 만남을 눈물겹다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근원은 동양과 서양 그리고 한국의 문학과 미학의 장점을 연결시켜 넌지시 산문의 전형을 제시한 셈이다.

갑년(甲年)을 겨우 넘기고 스러져 간 그는 막다른 골목에서 근원(近園) 같은 무릉도원을 갈구하였던 감상적 신비주의자·미학적 인상주의자로 자처한 고독한 예술인이었고, 자신만의 정원을 찾으려 예술이 곧 생활인 이상향을 추구한 수필가였다.

 

 

3

 

감상적 신비주의자이며 미학적 인상주의자였던 근원은 오원의 대담한 패기에 의해 양화의 자부심이 꺾이고, 진실한 감성과 개성의 표현을 추구한 원수원과 정판교의 선비정신에 문인화적 지조를 투사시켰으며, 사물의 미학적 분석이 가능하였기에 시서화의 경계를 최대한 좁히면서 동양 화법의 일장일렴(一張一斂)을 수필에 접맥시켰다. 물론 『근원수필』 발문에서 밝힌 것처럼 수필이나 군소리 비슷한 것을 잡채 무치듯 뒤죽박죽으로 버무려 놓았다며 겸손을 빌어 자조하였듯이, 전작에서 단아한 서정수필과 함축적인 미학산문의 모범을 요구한 것이 무리라는 지적도 빼놓을 수는 없다.

산문의 필법이지만 눈감으면 영락없는 한국화의 화법을 수필에다가 구현한 계기는 서양화에서 문인화로의 화풍 전환이며, 꼿꼿한 선비정신을 버리지 않고 분방한 성격의 소유자로 개성이 뚜렷하며, 풍진세상을 엉거주춤 앉아 바라본 고독한 예술인이었지만, 거친 세상에서도 유유자적한 풍모를 제시한 당대의 화가이면서 수필가였다.

노시산방에 가을이 깊어가고 푸른 이끼 감나무에 단풍이 구수하게 들면 주렁주렁 땡감은 바알간 홍시가 될 것이다.

근원은 갔지만 수필은 남았다.

 

천료 소감

 

반갑지만 두터운 문학적 인식의 벽이 성큼 다가선다.

군맹상평(群盲象評)은 내게 늘 화두이다.

엄청난 코끼리를 놓고 서로 다른 각도에서 형상(形象)을 제시하지만 모범답안이 있을 수 없으니, 그것이 바로 문학의 생명력이고, 상상(想像)의 지평을 척량하는 것이 평론이다. 상상은 시공을 넘나드는 문학의 근원이며 그것의 처음과 끝은 우주인데 스스로 또한 군맹의 일원임에야.

수필을 제대로 쓰기 위해 평문을 시작한 마음만은 푸른 이끼처럼 순수하다.

 

                                                                                                              박장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어과 및 동 대학원 중국어과 졸업.

논문 ‘당(唐)대 원결(元結) 산문 연구’

수필집 『양수리』와 평론집 『코끼리 이야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