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료작-

토끼섬

                                                                                               강인희

 시장 모퉁이에서 토끼 파는 할아버지가 꾸뻑꾸뻑 졸고 있다.

니코틴액이 누렇게 배인 할아버지 투박한 손마디에 끈으로 다리를 묶인 흰토끼가 애처롭게 나를 쳐다본다. 이곳은 답답하니 제발 숲속으로 데려다 달라는 애원의 눈빛이다.

나는 그 토끼를 보면서 내 기억 속에 숨어 있는 토끼섬을 떠올렸다.

제주 특유의 검은 돌담 옆에 가로수처럼 즐비하게 문주란이 심어져, 마치 이국적인 느낌을 주는 나의 외가는 천연기념물 19호로 지정된 토끼섬이 있는 구좌읍 하도리다.

토끼섬은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자생하는 문주란 군락지로 남쪽 섬 성산 일출봉 가까운 곳에 있다. 흰 포말 사이로 시리게 푸른빛을 띤 바다에 한폭의 그림 같은 토끼섬은 물이 썰면 육지로 이어진다.

토끼섬 뒷바다에서 물고기처럼 자맥질하는 수십 명의 해녀들 모습은 6~8월경 섬 전체를 덮은 백색 문주란 꽃과 함께 토끼섬의 절정을 이룬다. 마치 바다 한가운데서 하얀 정원과 해녀들이 파도타기를 즐기는 것 같다.

나는 물질하는 어머니를 따라 여름방학 내내 토끼섬에서 뒹굴었다. 바닷물이 빠져 나간 모래밭을 10여 분 깡충깡충 또래들과 경주하며 토끼섬으로 가서 놀다보면 본래 까무잡잡한 얼굴이 바닷바람에 그을려 인도소녀란 별명이 붙을 만큼 더 까매졌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문주란 꽃을 헤치며 종일 토끼를 잡느라 해 저무는 줄 몰랐고, 물 속에 꿈틀대며 기어가는 문어를 쫓아 날뛰다 여덟 개의 문어 다리가 몸에 딱 달라붙어 기겁하기 일쑤였다. 내 또래들이 해녀옷 입고 자맥질하는 모습을 보며 어머니에게 해녀가 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라대기도 했다. 잔잔히 일렁이는 바다 속을 한참 들여다보면 바위 틈 사이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전복, 소라, 성게, 오분자기의 도란거림에 심장이 멎는 것 같은 희열에 속옷이 홀딱 젖는 줄도 모르고 해녀 흉내를 냈다.

초경을 치르면서, 밋밋한 가슴에 봉긋이 젖살이 오르면서, 토끼섬의 토끼가 말라가면서 이런 일들이 시들해져 갔다.

그러나 내 영혼의 한쪽에서 쉬지 않고 유혹하는 토끼섬이 나를 괴롭혔다.

“토끼섬에 얼씬도 말아라. 밀물 때라 바다에 사람 씨가 없으니.”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마음이 당신 탓인 양, 당신 닮은 삶을 살까 노심초사하는 어머니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해안가로 뛰쳐나갔다. 바닷물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었다. 토끼섬이 나를 향해 손짓하였다. 나는 밀려오는 파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토끼섬으로 헤엄쳐갔다. 물살을 거슬러 100m쯤 가고 나니 온몸에 힘이 쫙 빠졌다. 바다는 문주란 백색꽃을 삼키려고 작정했나 보다. 섬이 잠겨가고 있었다.

숨을 헉헉거리며 토끼섬 할미당 앞에 섰다.(할미당 : 신령을 모시는 제단. 오곡밥을 지어 고시래한 후에 ‘샛바람아 불어라’ 큰 소리로 외치면 바람이 분다는 전설이 있다.)

“샛바람아, 불어라.”

두둥두둥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바람을 부르는 나의 외침과 바람이 오는 두려운 소리와 제주 비바리의 오기가 저물어가는 바다와 함께 물결쳤다.

“선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딸이라더니, 이 에미 간에 물 잔뜩 고이게 하는구나.”

내 몸을 꼭꼭 주무르는 어머니의 넋두리에 눈을 떴다.

해녀 탈의장에서 톳 작업을 하던 해녀들이 나를 에워싸고 타닥타닥 보리짚 타들어가는 불꽃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뭍에 시집가 아들, 딸 쑥쑥 낳으라고 귀한 전복, 소라 잔뜩 먹여놨더니 어째 뚝심이 고것밖에 안 되누?”

이모의 털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녀 탈의장에서 놀던 내게 해산물을 캐다 갈고리에 찍힌 전복, 소라 등을 상품 가치가 없다며 불에 구워 주시던 이모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큰일 치른 후의 안도의 숨을 쉬는 어머니와 토끼섬의 해녀 아주머니들을 보자 울음이 터져나왔다.

바랜 광목 윗저고리와 흰 허벅지를 덮는 검정 광목바지의 백과 흑의 대조, 두렁박과 갈고리, 얼굴을 덮는 큰 수중 안경과 갈라진 발바닥, 검버섯 핀 구릿빛 얼굴, 물에 들 때마다 늘어나는 사리돈 세 알, 그리고 바다 속 해녀들의 고달픈 삶이 내 시야에 다가온다.

여자는 뭍에서 살아야 행복하다는, 그래서 바다를 멀리 하게 애쓰던 어머니의 아픔과 사랑이 내 마음에 전해져 왔다.

그 뒤, 토끼섬의 토끼는 해녀들이 자맥질하며 내뱉는 고달픈 한숨과 바다에 토해 내는 제주 아낙네의 삶을 먹고 산다는 생각이 들 때쯤 외면하고만 토끼섬의 토끼가 지금 내 눈앞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다.

토끼 살 거냐는 할아버지 말에 대꾸도 없이

“토끼 풀어주세요.”

총총 돌아서는 귓가에 토끼 파는 할아버지의 혀차는 소리가 들린다.

“쯧쯧, 겉은 멀쩡해 보이는데…….”

 

천료 소감

 

늦둥이 막내놈이 저녁 식탐을 마구 하더니 일을 내고 있다.

막 이불을 편 안방에 사정없이 구토를 해 댄다. 이성의 한계가 무너지는 순간 전화 벨이 울렸다. 천료 소식이었다.

‘그래, 명색이 수필가인데.’

평소와 달리 우아하게 아이를 씻기고, 이불 홑청을 뜯어 빨았다.

아마 제주에 있었다면 토끼섬으로 달려가 밤바다와 등단의 기쁨을 함께 했을 텐데…….

차 한 잔의 은은함과 여유로움처럼 좋은 글을 쓰리라 다짐해 본다.

<계간 수필>의 가족이 되어 기쁘고, 편집위원회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강인희

제주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분 당선.

현재 인천 부평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