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의 볼레로

                                                                                                     유혜자

 뇌졸중으로 입원한 친지의 병실을 찾았다. 마침 친지는 재활 치료 차 나가고 침대 맡에서 라디오만 울리고 있다. 보조기구에 의지하여 하루에 백 걸음씩 반복 연습하는 중이라고 같은 병실의 환자가 산책 나가면서 들려준다.

혼자 남겨진 병실에 앉아 라디오를 듣는데 조용한 실내악이 끝나고 라벨의 ‘볼레로’가 시작된다. 라벨의 무용곡 볼레로는 작곡자 자신이 습작 정도의 가벼운 기분으로 썼다고 밝혔듯이, 멜로디도 쉽고 리듬도 반복의 연속이다. 원래 스페인에 빠르고 격정적인 볼레로 춤이 있지만, 음악 볼레로는 그 리듬과도 관계없고 또 춤곡으로서가 아닌 음악만의 독자적인 연주로 사랑받는다. 저음 현악기인 비올라, 첼로의 피치카토 3박자에 실려 볼레로 리듬의 작은북 연주가 시작된다. 아주 여린 소리로 시작해서 조금씩 커져가면서 마지막에 더욱 높아지는 크레센도 방식이다. 처음 전축으로 혼자서 들을 때는 전축이 고장났는가 하고 볼륨을 높여놓고 듣다가 갈수록 높아지는 소리를 서너 번 조정해서 들어야 했다.

북 소리의 리듬은 어느 축제에 점점 가까이 가는 것 같은 기분을 끝날 때까지 갖게 한다. 기분 좋을 때는 이 음악을 들으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어떤 신비한 힘이 작용하여 발전하고 역사를 이어가게 하는 것 같다고 느껴본 일도 있었다.

어떤 호사가가 세어 보니 볼레로는 서두의 리듬이 전 곡에서 169회나 똑같은 형태로 되풀이되고, 그 리듬에서 풀려나는 건 마지막 2소절뿐이라고 했다.

볼레로가 절반이 훨씬 지났는데도 아직 환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한 걸음 떼어놓기가 얼마나 힘들기에 이렇게 오래 걸릴까 생각하니 안쓰럽기 그지없다. 평소에 이 음악을 들으면 반복되는 리듬이 무미한 듯했는데 병실에서 들으니 생각이 달라진다. 나이에 비해 능력 있게 승승장구하던 친지였기에 쓰러지는 급격한 변화는 아무도 예상 못하던 일이다. 변조 없는 볼레로처럼 변화 없는 일상을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지루하게 여기며 살아온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일까.

친지가, 이제 바라는 것은 부축하지 않고 걸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 의욕과 재능을 생각하며 볼레로의 반복되는 리듬을 듣노라니 불가항력인 인간의 한계도 느끼며 또 궁극적으로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어리석은 질문도 하게 된다.

라벨은 스페인 국경에 가까운 소도시 시브로에서 태어나 출생 3개월 후에 파리로 이사하여 정착을 했다. 아버지가 라벨의 음악 교육을 위해 이사한 것이다. 라벨은 어릴 적 즐겨 피아노를 연주하고 쉬운 곡을 아버지와 함께 쳤다. 그때 아버지와 피아노를 치며 화답한 것처럼 주제 선율과 그를 받는 응답 선율이 처음부터 끝까지 전개로 되지 않고 변주도 되지 않으면서 아홉 번씩이나 반복되는 구성이다.

라벨은 관현악의 마술사라고 불리울 만큼 세부적인 면에까지 세련되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한 인상파 계열의 음악가이다.

재활 치료중인 친지는 영영 걷지 못할까봐 모두 염려했는데 피나는 연습으로 더딘 속도나마 몇 걸음을 기구에 의존하지 않고 걷는다고 한다. 붙들지 않고 걸을 수 있기까지의 한계. 그것까지 뛰어 넘을 수는 없는 건가.

예술은 기존 인간의 한계를 깨려는 노력에서 비롯되고 발전시켜 왔다고 본다. 볼레로도 그 시도의 일부가 아닌가. 아주 작게 작은북, 비올라,첼로의 볼레로 리듬으로 시작되다가 플루트가 약한 소리로 밝은 주제를 끌어낸다. 어둠 끝에 밝음이 온다는 것을 시사하기도 하는 것 같아 마음도 희망적이 된다. 이에 응답하는 부차적인 주제는 앞의 주제에 비하면 약간 어두운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볼레로의 볼륨이 점점 커가는 것이, 인생이 시간이 가면서 발전해 가는 긍정적인 것으로 보고 싶다.

라벨도 같은 일을 반복하여 발전을 꾀해 본 일도 있다. 당시에 음악계의 등용문이었던 로마 대상에 네 번이나 도전을 했다. 1901년에 2등을 수상한 후, 1902년과 1903년에도 출품, 1904년에 네 번째 도전을 했는데, 예선에서 30세가 된 학생은 응모 자격이 없다는 구실로 거절을 당했다.

1904년 이전에 이미 음악계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물의 장난’, ‘현악 4중주곡 F장조’로 라벨이 로마 대상의 수준에 이르렀음이 알려진 처지였는데도 기어이 도전을 반복했던 것이다.

여건에 예속되지 않고 삶의 고독마저 혼자 감싸안고 많은 작품을 반복해서 쓰는 예술가는 언젠가는 걸작이 나오리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나 단지 걷는다는 것이 예술가의 걸작보다도 가망 없는 친지에게 뭐라고 위로해야 할까. 보이지 않는 바람에 의하여 움직이는 만물처럼 음악은 듣는 이에게 생기를 주고, 때로는 마음을 흔들기도 한다. 친지에게 볼레로 같은 리듬의 음악을 배경음악으로 틀어놓고 연습하게 하면 덜 힘들까. 음악은 언제나 사람 곁에 있어서 인생의 지혜로운 궁리가 무궁무진하게 들어 있는 바람 같은 것이다. 변화 없는 듯한 볼레로의 리듬 속엔 바람의 깊이를 잴 수 없듯이 그 영역 또한 넓다는 생각을 해 본다.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라벨은 육군에 지원했는데 키가 작아서 채용이 안 되어 항공대를 찾았다. 그러나 거기서도 체중 미달로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은 그는 자동차 수송대에 지원하여 화물차 기사로 싸움터에 나갈 수 있었다. 그의 집념을 친지도 닮았으면 좋겠다.

토인비는 ‘인간의 역사를 움직이는 힘에는 모두가 반복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해마다 피는 꽃나무는 반복의 되풀이가 아니라 어떤 박자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고 『역사의 연구』에서 말했다.

라벨이 자동차 사고로 머리를 다쳐 스페인에서 요양하면서 “나는 한 조각씩 사라져간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그의 죽음은 한 조각의 상실에 불과하고, 역사는 계속 같은 박자로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