짓다 만 까치집

                                                                                                    김수봉

 우수와 경칩 사이의 주말, 겨울의 끝자락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을 간다. 하늘이 뻥 뚫린 것같이 청명한 날씨다. 난방이 잘된 버스 안에서 빠르게 혹은 느리게 바뀌어 가는 창 밖 풍경을 바라본다. 편안히 앉아서 가는 느긋함도 맛본다. 옛날이라면 걸어서 한 달도 더 걸렸을 이 천릿길을 4시간이면 도착한다는 문명시대에 살고 있음이 뿌듯해진다.

가까이 스치는 풍경은 눈이 어지러워 되도록 멀리 시선을 준다. 산등성이의 잎 진 나무들이 말갈기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가는데, 그 위로 솟은 나뭇가지에는 까치집들이 보인다.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까치집들은 마치 한지韓紙 위에 몇 방울 떨어뜨려 놓은 먹물 같다.

까치들은 어째서 도로변 나무 끝을 찾아 집을 짓는 것일까. 지난날은 사람과 친근했던 까치들, 온갖 미담도 남긴 그들인데 이제는 ‘까치와의 전쟁’이라는 말까지 나온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먹물방울 같은 까치집 이웃에는 더러 짓다 만 까치집도 눈에 띈다. 왜 짓다 말았을까.

내가 어려서 눈여겨본 바로 까치는 봄철에 집을 지었다. 한 쌍의 까치는 새 새끼를 낳고 기르기 위해 열심히 나뭇가지를 물어 날라 집을 짓는다. 최고의 건축가라는 소릴 들어온 까치가 아니던가. 그러니 저 반쯤 짓다 만 집은 필시 이 겨울에 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난 봄의 것이리라. 그 근처에 까치들이 날고 있지 않음을 봐도 짐작이 간다.

짓다 만 까치집을 보면서 가자니 머리 속엔 착잡한 생각들이 우수憂愁처럼 밀려든다.

한 쌍의 까치부부는 지난 봄 짝짓기 철에 만나 신혼의 꿈을 안고 집짓기를 시작했으리라. 태풍이 와도 꺾이지 않고 넘어지지 않을 나무를 이곳저곳 살펴서는 마침내 결정했겠지. 여름이면 그늘 좋고 바람엔 알맞게 흔들거릴 나무, 장차 길러낼 아기들의 요람도 되어 줄 나뭇가지를 골랐겠지.

까치부부는 새벽부터 일어나 까작까작 부르고 응하며 마른 나뭇가지를 물어 나른다. 그러던 어느 날, 자재를 구하러 나갔던 남편 까치가 돌아오지를 않는다.

까치는 어디로 갔을까. 사고를 당했을까, 변심한 것일까.

남편 까치는 길바닥에 떨어진 철사 토막을 물고 날아오른다. 쉬어 가기 위해 전깃줄에 앉는다. 그러나 철사가 전깃줄에 닿는 순간 번쩍 하며 불이 난다. 까치가 걸레조각처럼 떨어진다.

또 어떤 까치는 가로지른 고속도로를 넘다가 달리는 버스 앞 유리에 머리가 부딪힌다. 아니면 사람들이 무심히 버린 농약 병 곁에서 풀뿌리를 쪼아먹다가 죽어간다.

수리매 같은 천적을 만나 희생된 것일까. 과수원 나뭇가지에 올라 앉아 모처럼 별식으로 과일을 쪼아먹다가 저희들을 미워하는 농부에게 사살된 것일까.

또 어떤 까치부부는 먹이를 찾아 금실 좋게도 밭두렁에 함께 내렸다가 포획자들이 쳐놓은 덫에 걸렸거나 밀렵꾼의 총에 맞았거나.

어느 쪽이든 혼자 남은 까치는 끝내 돌아오지 않는 짝을 기다리다가 짓던 집도 버려둔 채 어디론가 울며불며 떠난다. 수절守節하기 위해 어느 절터로라도 가 있는 것일까.

까치도 사람처럼 변심하고 배반하는가. 그들 나름의 혼례도 서약도 치렀으련만, 어느 날 수컷이 바람나서 암컷을 버린 건지, 암컷이 수컷의 무능을 탓하다가 갈라섰는지.

집짓는 일에 태만하고 다른 암컷에만 홀려서, 아니 다른 암컷을 홀리기 위해 조강지처가 되기로 작정한 아내 까치를 소박한 것일까. 아니면 허영 많고 잔소리 많은 아내를 만나 까글까글 바가지만 긁어대는 것에 지쳐서 짓던 집을 작파하고 떠나버린 것일까.

 

내가 이런 몹쓸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고속버스는 어느 새 서울길을 반이나 달려왔다. 차가 천천히 움직여 휴게소로 들어간다. 나도 여기서 생각을 멈춘다.

커피 한 잔을 뽑아들고 모퉁이로 가는데 저만큼 휴지통 곁에서 까치 두 마리가 모둠발로 뛰면서 까작까작 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는 것같이.

나는 왜 저 깡충거리는 까치를 두고 몹쓸 연상들만 한 것일까. 내 마음바닥에 닥지닥지 붙은 나쁜 기억들 때문일 것이다.

부정한 일이 발각되어 이혼당한 남편과 보험금을 타내려고 아내를 살해한 이야기, 재산 때문에 친부모를, 돈 때문에 선생이 제자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이야기, 내 이웃과 우리 주변에서 이런 이야기를 숱하게 듣고 보며 살다가 나는 어느 새 눈과 귀가 마비된 것이나 아닌지. 하루가 멀다 하게 신문 방송이 터뜨려주는 나쁜 이야기들에 나는 이미 중독되어 있었다. 그래서 바르게 살지 못하는 모습들만 본 눈으로 새들을 보려 한 것이다.

알뜰하고 단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더 찾아서 많이 보고 듣고 가슴에 담아두었더라면, 짓다 만 까치집을 보면서 아름다운 연상들을 넉넉히 자아올릴 수도 있었을 텐데…….

집을 짓던 까치부부는 어느 날 도란거렸으리라. 더 좋은 집터가 생겼으니 옮겨가서 아주 실한 집을 짓고 살자고. 그곳은 먹이도 풍성하고 사람들의 미운 눈총과 함부로 버려진 물건들도 없는 곳이니 아이들 기르기도 그만일 거라고.

까작까작 까작까작, 부르며 응하며 까치부부는 하늘 높이 솟아, 저 산너머로 날아갔으리라. 그리고 그 집에서 태어난 까치 새끼 형제가 잘 커서 지금 저렇게 통통통 모둠발로 뛰어다니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