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길에서

                                                                                                     이정호

 마음까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 달 여 일째 아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선 아침에 허둥지둥 출근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다. 가까운 수목림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 남들 출근할 때쯤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한가, 오히려 감당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그러나 이렇게 된 게 잘된 일이 아니다. 직장에서 잘못되어 한직으로 밀려난 때문이다, 사람 하나 잘못 만난 탓이지만, 이게 다 언젠가 내가 저지른 업보에 대한 대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다.

내 평생에 이렇게 마음 고생해 본 적이 없다. 근 한 달 보름 동안 참으로 힘들었다. 범인을 고발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만, 어쨌든 생전 처음 검찰이라는 곳을 가 보았다. 법이 필요한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꼈다. 아무리 선하게 살려고 해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귀찮은 일에 말려드는 세상, 고요히 티없이 살고 싶어도 거센 비바람을 피할 수 없는 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다. 선한 양심에 상처를 입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는 참으로 복받은 사람이다.

내 직업에 전적으로 만족하지는 않지만 감사하고 있다.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얼마간은 할 수 있는 것도 직장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 직장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경제적으로든 인생으로든 지금의 나보다 더 나아졌거나 그렇지 못했거나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런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도 직장이 있음으로써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이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이번의 일을 당하고 나서 왜 좀더 골치 썩이지 않고 맑게 살 수 있는 다른 직업을 택하지 않았나 후회했다. 남들이 좋아하고 시비를 가리지 않아도 되는 일, 예를 들면 학문이나 예술의 길로 들어섰더라면 어땠을까. 배가 고팠을까. 재능이 없는 나로서 불가능했을까. 물론 이런 분야라고 좋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분야보다는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믿고 이해해 주는 사람들끼리 사는 세상이 있다면 그게 바로 천당이고 극락일 것이다. 무슨 일이고 법으로 해결하려는 게 얼마나 피곤한 줄 새삼 깨달았다. 오직 인간들만이 법을 내세워 피곤하게 살아가고 있다. 자기가 쳐놓은 올가미에 걸려 넘어지는 격이다. 마치 해충을 잡으려고 농약을 치면 칠수록 벌레들이 더 농도 짙은 농약에 저항 능력을 지니게 됨으로써 더욱 강한 약을 써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결과 농민과 벌레 모두가 힘들어지게 된 것이다. 아예 법이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지금과는 달리 아주 단순했더라면 오히려 지금보다 범죄가 훨씬 덜 할는지 모른다. 머리를 써서 어떻게든 법망을 피하면 된다는 저급한 생각이 양심에 호소하는 윤리도덕을 아예 팽개쳐 버리게 한 것이다. 나는 요 한 달여 동안에 반법치주의론자가 되었다.

어려운 지경을 당해 봐야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복된 삶인가를 알 수 있다. 입맛이 없을 때 쓰디 쓴 익모초 즙을 먹으면 잃었던 입맛이 되살아 나는 것처럼, 아이러니컬 하게도 나는 이번 일로 해서 무덤덤히 흘려 보내던 아침 한때, 숲을 산책하는 즐거움을 그 어느 때보다도 한껏 누리고 있다. 숲에서는 그저 평화롭다. 나무, 풀, 새와 벌레, 온갖 짐승들이 서로 먹고 먹히는 처절한 생존 싸움을 보고 사람들은 ‘정글의 법칙’ 운운하지만, 자연은 인간보다는 야비하지 않다. 적어도 그들은 상대를 속여 사기치는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잡아 먹으려면 눈빛에 살기를 품고 좋아할 때는 그 눈빛이 사랑스럽다.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냉큼 잡아 먹는 몰염치한 놈은 없다. 악을 감춘 선한 얼굴, 그런 겉몸짓이 자연세상에는 없다.

이른 새벽, 사람 없는 숲속에서 나는 지극히 느긋하다. 밤꽃 향이 촉촉한 숲안개에 젖어 한층 짙다. 뻐꾸기가 뻐꾹뻐꾹, 비둘기가 구구, 꾀꼬리가 꼬리이오옥 운다. 오늘도 작은 누렁이놈이 줄곧 따라다닌다.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고 다독거려 주니까 내가 주인이 아닌 줄 알면서도 따른다. 맘만 먹으면 나는 얼마든지 놈을 잡아서 개장수에게 넘길 수 있다. 그놈을 잡기 위해서라면 내 양심 따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놈을 사랑스럽게 쓰다듬는 척할 것이다. 그러면 그놈은 정말 저를 귀여워하는 줄 알고 몸과 마음을 내게 내맡길 것이다. 그러는 나를 못미더워할 본성조차도 그놈에게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꼬리를 흔들고 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선하디 선한 것으로 보아 내게 적의를 품고 있지 않은 게 분명하다.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하는 척하다가 별안간 달려들어 물어 뜯지 않을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놈은 사람이 아니고 개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놈을 마음 놓고 쓰다듬어도 된다.

숲을 떠나올 때 그놈은 한참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