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8

                                                                                                       허창옥

 2월의 해안, 햇살이 따습다. 수면은 금빛으로 반짝이고 파도는 나직하다. 바람도 어디론가 가 버렸다. 참으로 조용하다. 오랜만에 아이들과 바다에 왔다. 더러 함께 오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주말에도 학원이다, 시험이다 해서 좀처럼 느슨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오늘은 어찌어찌 시간을 만들어서 아이들 어렸을 때처럼 함께 바다로 올 수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소풍의 즐거움이 더 크다.

해안은 고운 모래톱이 아니다. 자갈밭이다. 지난해 늦가을 한나절을 쉬었다 간 바로 그곳에 다시 왔다. 그 날, 이 해안에 앉아서 파도가 자갈 쓸어가는 소리를 하염없이 들었었다. 촤르르 촤르르 소리와 함께 굴러가는 젖은 자갈들을 보는 것이 여간 즐겁지가 않았다.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더구나 두 아이와 함께 오게 되어서 기쁘다.

둘째가 돌을 주워서 자세를 잡더니 바닷물에 수평으로 던진다. 이른바 물수제비 뜨는 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돌은 퐁, 퐁, 퐁 세 군데를 찍으며 제법 멀리 간다. 그 모습을 보면서 제 누나가 따라 해 보지만 동생처럼 되지가 않는다. 아이들의 즐거운 한때를 바라보면서 남편과 나는 보온병 뚜껑에다 뜨거운 커피를 나눠 마신다.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소풍 나온 사람들이 많다. 몇 발짝 옆에 예닐곱 명의 청년들이 물수제비 놀이를 하면서 왁자하게 떠든다. 놀이의 신명은 금방 전이되는가 보다. 둘째의 팔에 힘이 더 들어가는 것 같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힌 두 아이가 곁에 와서 앉는다. 실컷 놀았나 보다. 며칠 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아이를 위한 나들이인데 보람이 있다. 그 동안의 수고를 다 잊은 듯 아이의 얼굴은 맑다. 그저 모든 게 고맙다. 바다도 햇살도 미풍도 물에 젖은 예쁜 자갈들도. 예쁜 자갈들, 정말이지 보석 같다. 물에 젖고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돌들이 모두 보석 같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 이상이다. 세상의 어떤 값비싼 보석이 이처럼 아름다우랴. 그 이름이 갖는 고정관념 때문에 사람들은 보석을 미리 아름답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천년의 비바람에 씻기고 닳은 여기 이 돌들의 꾸밈없는 어여쁨, 단단함이 보석보다 조금도 못하지 않다.

눈을 가늘게 뜨고 수평선을 바라본다. 그리고 아주 낮게 엎드려 발치까지 왔다가 돌아가곤 하는 파도의 하얀 포말을 본다. 오늘은 이토록 잔잔하지만 격랑이 되고 해일이 되는 날도 있겠지. 문득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예쁜 돌 줍기 하자.”

제각기 흩어져서 눈에 띄는 돌들을 줍는다. 갈색, 짙은 청색, 새까만 것, 하얀 것, 매끈한 것, 두툴두툴한 것, 동글동글한 것, 납작한 것,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모양이 그렇듯 그 내력 또한 얼마나 서로 다를까.

“돌탑 만들까?”

느닷없는 나의 제안에 모두 좋다고 한다. 맨 아래는 크고 평평한 것으로 둥글게 깔고 그 위에 차곡차곡 돌쌓기를 한다. 천천히, 미끄러지지 않게, 각도를 잘 맞춰서, 나는 기분 좋은 잔소리를 섞는다. 말은 안 했지만 예쁜 돌을 줍기 시작할 때부터 나는 소망을 가졌다. 그래서 돌탑 쌓을 생각을 한 것이다.

돌탑은 신앙도 미신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그저 소망을 쌓은 것일 뿐이다. 한 개 한 개의 돌에 간절함을 담아서 얹고 또 얹어서 탑이 되는 것이다.

평온한 바다, 언제 노도가 될지 모른다.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겠거니,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때때로 격랑이 될지라도 끝까지 몰아치지는 말고 곧 잠잠해지기를. 되도록 많은 날들이 오늘 같아서 작은 돛배도 그 넉넉한 품에서 평화롭게 항해할 수 있기를. 아주 작은 돛배 두 척을 세상이라는 바다에 띄우고 나는 돌탑을 쌓는다. 탑도 배처럼 작다. 지름과 높이가 오십 센티미터 정도나 될까.

햇빛이 설핏해서 일어선다. 바다에 오기를 참 잘했다. 언제라도 한아름 생기를 안겨주는 바다, 오늘은 네 식구를 힘껏 껴안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