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최순희

 하객들 사이에서 경비원 박씨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여기 어떻게? 유니폼 대신 말쑥한 감색 양복을 차려 입은 그는 평소보다도 더욱 잘생겨 보였다. 방금 도착했는지 상기된 얼굴로 그가 설명했다. 딸과 광화문 사옥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알고 보니 충정로 사옥이더라는 것. 딸이 일껏 꽃다발을 준비했는데 장소가 어긋나는 바람에 부랴부랴 혼자 오게 되었다는 것. 그리곤 꽃다발을 못 주게 되어 애석하지만 얼굴은 봤으니까 됐다, 정말 축하한다, 하고는 무얼 좀 권할 사이도 없이 총총 자리를 떴다. 오늘 오후, 남몰래 끙끙거리며 써낸 소설이 당선되어 상패를 받는 시상식장에서였다.

결혼식에라도 가는 길인가 했으나, 아니었다. 신문에서 나의 당선과 시상식 기사를 읽고는 휴무인 오늘 특별히 시간을 낸 것이었다. 딸까지 동원하여 먼 길을 축하해 주러 오기까지의 각별한 마음씀을 헤아리자니, 단순히 고맙다거나 기쁘다거나로만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 가슴이 그득해졌다. 여러 하객들 중에서도 내겐 가장 놀랍고 귀한 손님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아파트 경비원 박씨는 단아한 용모에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오십대 중반이다. 단아한? 그렇다. 그에게선 아담하고 단정한 기품이 느껴졌다. 저런 이가 웬일로 저기 앉아 있을까 하고 한번쯤 돌아보게 되는 그런 기품. 그가 새로 오면서 맨 처음 한 것은 좁은 경비실 안팎을 반짝반짝 쓸고 닦는 일이었다. 유리창까지 다 닦고 난 다음 그는 뚝딱뚝딱 못을 박고 선반을 만들었다. 어느 날 외출에서 돌아오다 보니, 왞?속에 저 바람 속에?또는 왏微?가는 저 구름아?등속의 낡은 문학서들이 주욱 꽂혀 있고 그는 무슨 시집인가를 읽고 있었다.

경비실 앞을 지나갈 때면 아이들은 아빠 등 뒤로 속살거렸다. 경비 아저씨가 저희 아빠보다 훨씬 더 교수 같다는 것이다. 우리는 기쁘게 동의했다. 사철 햇볕에 탄 듯한 검붉은 낯색에서부터 소탈하다 못해 때론 딸들을 당황스럽게 만드는 거친 매너에 이르기까지, 남편은 머리에 밀짚모자만 하나 얹으면 영락없는 농사꾼으로 통할 사람이다. 반면 맑은 외모에 절도 있고 품위 있는 태도의 박씨야말로, 저들 아빠가 교수가 되기 전까지 아이들이 교수란 이들에 대해 품었음 직한 모든 이미지의 구현이었다. 강남의 아파트 경비원들 중에는 전직 고급 공무원이나 기업체 간부들도 드물지 않다고 들었다. 전직이야 무엇이었든지간에, 경비원 박씨는 높직한 의자로 인해 빛나 보인 사람이기보다는 그의 사람됨이 오히려 그가 앉았던`─`아마도 나지막했을`─`자리를 빛낸 쪽이 아니었을까 싶어 더욱 호감이 갔다.

해가 가고, 아이들도 커 갔다. 열쇠를 맡기거나 어쩌다 간식거리를 나눠 먹거나 할 때 말고는 그저 눈인사를 나눌 뿐이었지만, 우리 가족은 제가끔 그를 좋아했다. 어쩌면 그도 그런 것 같았다. 조용하고 수줍음 타는 우리집 아이들이 발랄한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오히려 남달라 보였을 수도 있고, 분리 수거와 폐지 수집에 열심인 남편이 그의 마음에 꼭 드는 주민이었을 수도 있다. 혹은 자주 배달되는 서적류를 보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친근함을 느꼈거나.

이십대 딸이 있다는 얘기에 언젠가 갓 나온 번역서를 한 권 선물한 적이 있다. 그는 내가 번역가인 줄도 몰랐지만, 모처럼 내 마음에 꼭 드는 원작이요 번역이라 주고 싶었다. 그리곤 그가 내 아이들을 칭찬하는 바람에, 내처 방금 배달되어 온, 딸아이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가 실린 수필지까지 주고 말았다. 적이 쑥스럽긴 했지만, 내쪽에선 그때부터 뭔가 우정 비슷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것 같다.

그 무렵, 나는 남편을 따라 집 뒤 수리산을 처음 오르기 시작했다. 별로 높지도 않은 능선을 헐떡거리며 쫓아오는 내게 남편은 나뭇가지를 다듬어 지팡이를 만들어 주었다. 길이와 굵기가 마참하고 무겁지도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산신령의 지팡이처럼 휘우듬한 점은 특히 더 맘에 들었다. 한 손으론 남편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론 장신구처럼 지팡이를 짚고 지나가는 나를 경비원 박씨는 빙긋 웃으며 바라보곤 했다. 우리 둘이 그려내는 그림이 보기 좋다는 듯이.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미끈하게 다듬은 지팡이를 하나 내밀었다. 일자로 쭉 뻗은 게 남편이 만들어 준 것보다 훨씬 잘생긴 데다 더 크고 튼튼했다. 내가 못생긴 지팡이를 짚고 지나다닐 때마다 언제고 제대로 된 나뭇가지를 구해 하나 깎아줘야지 하고 벼른 것 같았다. 그의 고마운 마음에 남편의 지팡이를 두고 대신 그의 지팡이를 짚고 나섰다. 그러나 지팡이는 내 키에 비해 다소 길었고 두께도 두꺼웠으며 또 무거웠다. 무엇보다 심심하게 일자로만 쭉 뻗어 짚는 재미가 적었다. 그러나 소심한 나는 그의 성의를 무시하고 다시 산신령 지팡이를 들고 다닐 용기가 없었고, 젖을 떼듯 그 김에 슬그머니 지팡이를 뗐다.

이른 겨울 아침이었다. 커피를 끓이다가 문득 창 밖을 보니, 경비원 박씨가 막대 빗자루를 들고 우리 차 지붕에 두텁게 쌓인 눈을 쓸어 내리고 있었다. 저건 경비원 임무도 아닌데 싶어 미안쩍게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눈을 다 치우고 돌아서던 그는 다시 몸을 돌려 옆 차의 눈을 쓸어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우리 차 좌우로 꽤 여러 대가 되는 차 지붕의 눈을 다 쓸어 내린 다음에야 비로소 멈췄다. 그는 왜 우리 차의 눈부터 쓸기 시작한 것일까. 경비실에서 가장 가까운 것도 아니었는데. 남편이 일찍 출근한다는 걸 아는 그는 작은 친절을 베풀고 싶었고, 우리 차만 치우고 보니 뭔가 어색해져서 다른 차들도 치워 주게 된 것일까. 이리저리 상상해 보는 내가 우스웠지만, 어쨌든 따스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 날 오후, 나는 눈길을 미끄러지며 걸어나가 프리지어 두 다발을 샀다. 그에게 한 다발을 주고 우리 식탁에 한 다발을 꽂을 생각이었다. 향기로운 답례가 되리란 기쁨에 꽃집에서 돌아오는 내내 행복하였다. 그러나 경비실이 저만큼 보이고, 누구를 기다리는지 아래층 여자가 그 앞에 서 있는 것을 본 순간,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차 지붕에 쌓인 눈이야 뭐, 쓸려면 쓸어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깟 쓰지도 못한 지팡이 하나 만들어 준 게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경비실 앞을 슬그머니 지나쳐 올라와 꽃병에 두 다발을 한꺼번에 푹 꽂아 넣었다. 은은한 노란빛이 갑자기 누리끼리하게 바래면서 향기조차 주눅들어 스러져 버린 것만 같았다.

 

오늘 오후, 꽃다발을 차에 가득 싣고 돌아오는 내내, 나는 받지 못한 한 꽃다발 덕분에 더욱 행복하였다. 지금쯤은 이미 시들어가고 있을, 그러나 내 마음 속에 오래오래 생생히 살아 있을 꽃다발.

때론 받지 못한 선물을 더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