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방황

                                                                                                  윤수영

 버스가 백담사 어귀에 닿은 것은 정오가 가까운 무렵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백담사로 올라가는 길을 거의 뛰다시피 걸었다. 낮이 짧은 가을인데다가 이슬비가 내려서 날은 흐리고, 산에서는 해가 빨리 진다는 생각이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던 것이다.

우리는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고 백담사를 지나 수렴동 계곡을 통과했다. 더구나 비에 젖은 돌들은 미끄러워서 경치를 감상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아 단풍과 계곡의 물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풍경도 언뜻 보며 지나갔다.

이슬비가 그쳤는데도 선발대 친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만 향한다. 수렴동 대피소에서 쉴 겸 오늘의 일정을 의논했으면 했지만 빠르게 가는 친구를 붙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봉정암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접어들자 그곳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봉정암까지는 3시간 더 가야 하는데… 서두르십시오.”

시계는 오후 3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비에 젖은 나무들이 나뭇가지를 축 늘어뜨리고 있는 밑으로 우리는 걸음을 더욱 빨리 하여 걸어갔다. 쌍폭포에 이르렀을 때, 이정표는 봉정암까지 2.6킬로미터 남았다는 것을 표시하고 있었다. 먼저 도착한 친구들은 쌍폭포를 보며 감탄을 연발하고 있었지만, 내가 간신히 그곳에 이르자 친구들은 곧 길을 떠났다. 나는 폭포를 감상할 여유도 없이 또다시 그들을 쫓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숨은 가쁘기만 한데, 길은 지금까지보다 더 가파르고 험난하기만 했다. 대여섯 개의 계단으로 된 낡은 나무 사다리를 밟고 기어오르기도 하고, 때로는 안간힘을 다해서 높은 바위를 올라가기도 했다. 이젠 길조차 잘 보이지를 않아 우리는 덮어놓고 위쪽으로만 올라갔다. 아무리 올라가도 목표 지점은 나오지 않고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마음은 초조해지고 몸은 피로에 지쳐서 한 걸음도 더는 나아갈 수가 없었다. 새벽에 집을 떠나 잠시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온 몸은 한 발자국도 더 이상 옮기지 못할 만큼 무거웠다. 있는 힘을 다해 걸음을 한 발 한 발 내어 디디려는데 이제는 종아리에서 쥐까지 났다. 급한 마음에 다리를 손으로 두드리며 발을 옮겼으나 내 다리가 아닌 듯 감각이 없고 힘이 없었다.

친구들은 뒤쳐진 나를 큰 소리로 부르면서 앞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날은 컴컴해지는데 다리까지 말을 안 들으니, 먼저 올라간 친구들이 나를 구하러 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산 속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길은 보이지 않고, 발은 움직여지지 않는 아득한 고지에서 나는 눈을 감았다. 아, 이것이 바로 링반데룽이라는 것이구나.

오래 전에 읽은 황순원의 소설 왆돌訃Ⅷ?이 떠올랐다. 작가는 등산에서 짙은 안개나 세찬 눈보라로 인해 또는 밤중에 방향감각을 잃고 같은 지점을 맴도는 일, 즉 자신은 목표한 곳을 향하여 오르고 있다고 믿지만, 실은 자신도 모르게 어떤 중심을 둘레로 빙빙 돌고 있는 것을 링반데룽이라고 말하면서, 주인공의 삶이야말로 그 같은 환상 방황이라고 했던 대목이 기억났다.

나는 이 순간 링반데룽에 빠진다 해도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마음을 포기했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내 생각하지 말고 먼저 가라고 소리를 치는 순간, 이상하게도 다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두 손과 발을 다 동원하여 기어오르다가 위를 보니 먼 곳에 불빛이 보였다. 어두컴컴한 산 속에서 언뜻 보이는 불빛은 구원의 빛이었다. 마음이 다소 평안해지면서 나는 그 빛을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있는 힘을 다해 발걸음을 옮겼다. 불빛을 따라 올라간 곳은 봉정암이었다. 거기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저녁 식사를 받기 위해 서 있는 것이었다. 미역국에 주먹밥 하나를 받아들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왔다. 국물만 겨우 마시고 쓰러지듯 누웠다. 다른 사람들은 신나게 떠드는데 나는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보았던 경치를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올라가는 데만 정신을 쏟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생활에서도 철로를 따라 달리는 기차처럼 목표를 향해 그저 달려오기만 했다. 직장과 가정이라는 철길을 따라 늘 긴장하면서 그 두 길만을 충실히 오갔을 뿐이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산에 오르면서부터는 이제 친구들의 뒷모습만을 쫓는 사람이 되었다. 우리 등산팀의 리더는 계절에 따라 산행의 방향을 바꾼다. 언제쯤이면 어디에 진달래가 무리지어 피고, 며칠 후면 어느 곳에 철쭉이 터널을 이룬다고 안내한다. 이럴 때마다 우리는 무조건 그를 따라가면서 어린애처럼 웃고 떠들며 산길을 걷는다. 그리고 이처럼 여러 갈래의 길로 안내하는 친구를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는 많은 길을 아는 만큼 삶에서도 다양한 방향을 알지 않을까.

오로지 한 길을 달려왔다는 것만으로 그 삶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외길을 달려 성공한 사람들이 많음을 안다. 그러나 나는 봉정암으로 오르던 산행에서처럼 길섶의 들풀도 기이한 바위도 여러 가지 단풍도 보지 못하고 목표 지점을 향해 오르기만 한다면 삶은 허무할 것 같았다. 나는 그 동안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 보려는 용기조차 가져본 적이 없지 않은가.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길을 가 보고 싶다. 비록 낯설어 당황할지라도 지금까지 체험하지 못했던 고통과 기쁨을 맛보고 싶다. 길을 헤매지 않고 목표가 뚜렷한 길만을 간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선택하려는 용기가 없음이요, 언제나 온실에 안주하려는 게으름이며, 편안한 생활에만 익숙하려는 부끄러움이다. 어떠한 상황도 두려워하지 않고 헤쳐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늦게야 길들여진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쳐 보지만 나는 또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나 자신을 느끼게 된다. 환상 방황으로 삶을 마감하는 소설의 주인공에 연민을 느끼지만, 나 자신 링반데룽에 이른다면 희망과 용기로 새로운 삶을 시도할 수 없는 나이에 와 있다는 사실이 또한 나를 쓸쓸하게 한다. 오늘도 나는 친구들의 뒷모습만을 바라보며 산에 오르는 영원한 현실주의자로 남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의지를 고민한다.

 

 

 

윤수영

<문학시대>에 천료(2001년).

이화여자대학교 국문과 강사 역임.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