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환난기(胃患難記)

                                                                                                  심규호

 뱃속이 묵직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내내 요지부동인데, 가끔씩 제멋대로 꿈틀거린다. 그럴 적마다 나는 방바닥에 배를 대고 헤매든지 그저 아픈 배를 움켜잡고 끙끙대고 있든지 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통증이 멎기를 기다리다 지친 나는 아내를 대동하고 문 밖으로 나섰다. 몸이 아프니 양방, 한방, 민간요법 등 가릴 것이 없었다. 약도 먹고 침도 맞고 주사도 맞고, 일명 체 내리는 곳에 가서 헛구역질을 강제 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병원 응급실로 들어가 길게 드러누워 포도당 주사를 맞는 신세가 되었는데, 그 모습이 처량하여 절로 한탄이 나왔다.

배를 쳐다본다. 자, 이쯤에서 끝내자! 이 정도면 나도 알겠어. 앞으로 조심할게!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명치 주변이 파르르 떨린다. 또다시 속절없이 전해져 오는 통증.

일단 내시경 검사를 하기로 했다. 공복에 시린 배를 움켜잡고 병원으로 나왔다. 입에서 식도를 거쳐 위까지 가는 길은 정확하게 숨쉬는 길과 먹는 길, 즉 기도와 식도만으로 제공된 것이다. 다른 것이 들어갈 경우 얼마나 불편한가를 내시경 검사는 아주 분명하고, 전혀 의심할 여지없이 알려준다. 입이 막혀 있으니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그저 물린 재갈을 꽉 깨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의사의 말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사진을 더 찍어야겠어요. 좀더 참을 수 있지요?”

사진을 찍는다는 말에 며칠 전에 찍은 증명 사진이 생각난다. 공교롭게도 여권 만기가 다 되어 연기를 시켜야 하는데, 여권에 있는 사진과 다른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새롭게 증명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평상시에는 잘 입지 않는 양복에 머리 단장도 하고 말끔하게 면도를 한 다음 가뿐한 마음으로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사가 요구하는 대로 몇 번 자세 교정을 하고 ‘번쩍’ 하는 소리와 함께 사진에 박혔다. 그리고 얼마 후 나온 사진을 보며 나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나이 사십 넘어 이 정도면 준수하지 않겠어…….

그런데 의사의 소리가 영 심상치 않다.

“여기도 그렇고 저기도 그렇고 영, 문제네!”

도대체 내 뱃속을 들여다보면서 문제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 검사가 끝나면 따져야지. 도대체 어떠하기에 문제 운운하느냐고. 다음 날, 의사 앞에 앉은 나는 다소곳이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어제의 기백은 간 데 없고 사로잡힌 포로의 형세 그대로였다.

“혈압도 높고, 위궤양에 십이지장궤양도 심하네요.”

“담배 피우시나요? 피우시면 당장 끊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술은?”

“술도 물론 안 드시는 것이 좋지요. 한 6주 정도 약을 드시면서 경과를 보도록 하지요. 고혈압 약은 앞으로 계속 드셔야 됩니다.”

“예? 평생 먹으라는 말씀입니까? 나는 평소에 혈압이 높지 않은데. 아무래도 그렇지 평생 약을 먹으라는 것이 좀 우습잖아요. 내가 지금 몇 살인데!”

차트를 보고 있던 의사가 나를 빠끔히 쳐다본다. 분명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보라고 권한다. 조금 전에 보았던 바로 그 사진들이다. 얼룩진 내 위장의 진면목! 어느 뒷골목에서 얻어 터졌는지 온통 상처투성이인데다 오랜 피곤과 악습에 절어 역한 냄새가 나고 있음이 분명했다.

이것이 나인가? 창피하다. 부끄럽다. 민망하다.

생각해 보면, 군데군데 파헤쳐지고 곯은 상처를 그대로 내보이고 있는 이 사진의 주인공은 분명 나다. 위胃는 비록 보이지 않아서 그럴 뿐이지,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볼 수 있는 나의 또 다른 면모들과 동일한 나의 부분이자 또한 나의 전체이다.

슬슬 ‘보이지 않았던 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보이는 나’를 위해 얼마나 때빼고 광내느라 열심이었던가! 하루 두세 번의 양치질과 서너 번의 세수, 이틀에 한두 번씩의 세발洗髮과 매주 한두 번의 목욕, 그것도 모자라 화장품에 마사지까지. 그러나 ‘보이지 않는 나’는 재료 불문, 장소 불문, 다과多寡 불문, 품질 불문, 종류 불문하고 오로지 나의 식욕에 복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 덕에 나는 호기豪氣를 부리며 내 멋대로 세상을 활보할 수 있었겠지.

그러나 이건 미안하다거나 앞으로 잘하겠다는 정도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했다. 어쩌면 지금 ‘보이지 않는 나’는 진지하게 나에게 삶의 방식을, 생각을, 습관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가? 그가 반기를 든 것은 바로 이 때문인가? 그렇다면 대충 타협하고 절충하고 넘어갈 것이 아니다. 또다시 부끄러움과 쑥스러움에 몸둘 바를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생활한 거야?

마치 남에게 이야기하듯 홀로 중얼거린다. 그리고 심각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단 담배부터? 고즈넉한 시간에 피우는 담배의 맛과 향내가 금세 느껴진다. 내가 끊지 못했던 이유는 분명 이런 분위기의 느낌 때문일 것이다.

과감해지기로 했다.

어쩌면 이번 위의 환난은 세월의 흐름을, 그 자연스러운 변화를 편안하게 받아들이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보이지 않는 나’의 경고와 권유에 나는 복종하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위의 환난은 끝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보이지 않는 나’를 통해 나 또한 정말로 모습이 바뀔지도 모른다.

 

 

 

심규호

<계간 수필>로 등단(99년).

제주산업정보대학교 중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