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봉의 보름달

                                                                                                 金時憲

 가파른 산길을 두 시간쯤 올라갔을 때, 오직 한 채뿐인 작은 사찰이 나왔다. 더 가면 집이 없다기에 그곳에서 숙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스님이 나오더니 “방이 작아서 툇마루에서 자야 합니다” 했다. 벽이 한면 뿐이고 삼면이 트인 툇마루였다.

저녁밥을 먹고 시원한 여름밤, 바람을 쏘이고 있는데 스님이 또 나와서 “여긴 늑대가 나옵니다. 옛날 어린아이가 자다가 물려 간 일이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호들갑스러운 여학생들은 기겁을 하면서 서로 끌어안고 “아이 무서워!” 외치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40년 전 일이다. 여고 학생 20여 명과 교사 세 사람이 경북 안동에 있는 청량산에 등반을 했다.

잠잘 때가 되었을 때, 자리 다툼이 벌어졌다. 하나뿐인 벽면 쪽에 서로 붙어 자려는 싸움이었다. 그들을 모두 툇마루 가운데에 모아 눕히고 교사 세 사람은 트인 세 면의 방파제가 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여기저기에서 짐승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학생뿐 아니라 나도 으스스했다. 화장실을 어떻게 가나도 걱정이 되었다. 그곳에서 10미터쯤 내려간 산 언덕에 함정으로 된 원두막 같은 화장실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청량산의 상상봉에 올랐다. 사방이 트인 높은 산이었다.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하는 시조 생각이 났다. 이퇴계 선생이 지은 시조의 첫 구절이다. 한때 육육봉을 두고 국문학자 사이에서 논의가 벌어진 일이 있다. 육육봉은 6×6으로 36봉이라 하는 사람이 있고, 6+6으로 12봉이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청량산의 봉우리를 다 세어 보기로 했다. 제각기 하나 둘 셋… 하면서 손꼽아 나갔다. 한두 봉씩 차이가 났다. 작은 것을 넣기도 하고 빼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다 넣는다 해도 36봉은 말이 안 되었다.

 

나는 서울에서 10년을 살다가 작년 8월에 이곳 안양시로 이사를 왔다. 와보니 삼면이 산이고 한쪽만 포장길이 트인 골짜기이다. 맑은 공기를 찾아가는 세상인데 골짜기인 점에서는 불만이 없다. 골 이름도 ‘창박골’이다. 왜 창박골이냐가 궁금했지만 아직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창 밖으로 보이는 골짜기’ 정도로 스스로 풀이해 볼 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이층 거실에 서서 눈에 들어오는 산봉우리를 모두 셈해 보았다. 하나 둘 셋… 헤어 나가니까 열일곱 아니면, 열여덟이 되었다. 또한 작은 봉우리를 넣느냐, 안 넣느냐의 차이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퇴계 선생이 지었다는 시조 생각이 떠 왔다. 이것은 88봉으로 하자. 그리하여 나는 ‘수리산 88봉을…’ 하고 흉내를 내 보았다. 88봉의 정점을 수리산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서기 2000년이 지나가고 다시 여름이 오고 있다. 나이는 되도록 잊어버리라고 하지만 때때로 나이가 세월의 앞을 내다보게 한다. 이사를 또 해야 할 이유도 없고, 영원히 이곳에 살아야 할 이유도 없다. 나는 옛날 ‘인간도처유청산人間到處有靑山’이라는 말을 좋아했다. 사람은 식물도 아닌데 한 곳에 붙박이로 살아야 할 까닭이 있느냐의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선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면서 70여 년을 보냈다.

함경북도 청진에서 3, 4년을 보내기도 하고, 그보다 더 북쪽으로 들어간 회령에서도 2년을 살기도 했다. 국경 지대인 회령과 도문 사이의 두만강에 가서 여름 목욕을 하기도 했다. 경북 안동, 대구, 서울, 안양 등 여러 곳을 옮아 다니는 사이 어느덧 인생의 황혼을 맞이했다.

‘창박골’에는 바람이 세다.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이 6월인데도 한기를 느끼게 한다. 아침 저녁으로 가까운 산에 오른다. 되도록 경사가 급한 산을 선택한다. 한 발 한 발 급경사의 바위와 흙을 차근차근 밟고 있으면 몸이 기우뚱 넘어지려 한다. 그때마다 몸과 마음에 긴장이 온다. 그 긴장을 주기 위해서 급경사의 산길을 선택한다.

언제부턴지 육체가 허물허물해져가는 것을 느낀다. 그 이완에 긴장을 주어서 제자리에 앉히려는 노력이다. 육체뿐인가 마음에도 해체 현상이 오고 있다. 세월이 만들어가는 자연의 변화인데 무슨 힘으로 그것을 막으랴. 하지만 조금이나마 진행을 늦추려는 인간의 노력일 뿐이다.

해질 무렵에 산에 오르기를 나는 좋아한다. 서산에 걸려 있는 저녁 해를 만나기 위해서다. 저녁 해는 눈부시지 않아서 좋다. 보름달처럼 덩그렇게 떠서 멍청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주위에 몇 가닥의 구름을 거느릴 때도 있지만, 대개는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88봉의 바로 위에 몸을 드러낸다. 산과 하늘과 구름과 허공이, 해와 더불어 자연의 대작품을 전개한다. 그 속에 나도 또한 들어간다는 착각을 일으킨다. 그때 나는 시공을 초월한 예술품의 일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