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허증

                                                                                          강호형

 고향 선배인 L씨가 마침내 운전면허를 받았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의 화제에 올랐다. 얼마 전에는 팔순도 넘은 어느 노인이 중풍든 부인의 병원 출입을 위해 면허를 따냈대서 매스컴을 흥분시킨 일도 있는 터에, 아직 칠순도 안 된 L씨의 면허 취득이 화제가 된 데에는 까닭이 있다.

그는 본래 중농中農 정도의 농사꾼인 아버지와 주점酒店을 하는 어머니의 3남매 중 막내여서 뜻만 있으면 그의 형처럼 서울 유학도 무난한 처지였다. 그러나 그는 학교에 가기를 싫어했다. 부모의 성화를 못 이겨 간신히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치고는 코뚜레 없는 황송아지처럼 막무가내로 등교를 거부하며 소달구지를 사 달라고 떼를 썼다.

그때도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었던지, 그는 마침내 달구지꾼이 되었는데, 아직은 코흘리개에 불과한 소년에게 우람한 황소를 맡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여서 암소로 대체한 것이 그나마 그의 부모가 아들과의 타협에서 거둔 소득이었다.

그는 비록 공부하기는 싫어했지만 타고난 장사 골격에 천성이 착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라 약관에 이미 중견 농군이 되었다. 자연 유학간 형이 축내는 재산을 어린 아우가 채우는 형국이 되고 보니 부모로서도 한시름 놓은 셈이었다.

세월이 흘러 달구지가 경운기로, 경운기가 다시 트랙터로 바뀌는 동안 그는 언제나 마을에서 그것을 가장 먼저 사서 다루는 기계화 농업의 선두 주자였다. 그리하여 일찍이 콤바인을 비롯한 온갖 첨단 농기구를 다 갖추기에 이르렀는데, 그것을 다루고 손보는 데 있어서도 근동에서 으뜸으로 꼽힐 뿐 아니라 그에 걸맞는 부농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오는 동안 그는 한 번도 공부 못한 것을 한탄한 적이 없었다. 땅은 언제나 정직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워낙 빨리 변하다 보니 뜻하지 않은 장벽에 부닥치고 말았다. 마을 청년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자가용 자동차를 사서 시골·서울 가릴 것 없이 바람처럼 누비고 다니자 은근히 샘이 나고 부럽기도 했다. 값으로 치자면야 그까짓 승용차 한 대쯤은 가소로운 일이고, 운전 기술에도 자신이 있었지만, 문제는 면허증. ─`고등학교까지 나온 후배도 학과 시험에서 두 번이나 낙방하는 것을 보아 온 터라 영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옛날 부모에게 그랬듯이 떼를 써서 될 일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는 사람이다.

각오를 단단히 하고 응시 원서를 내면서 시작된 ‘낙방’이 열세 번째라는 말을 들은 지도 두 해가 지난 어느 날 마침내 그가 합격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마침 고향에 갔던 길에 그를 만났다. 손을 잡으며 축하 인사를 건넸더니 몹시 멋쩍어 하면서도 굳이 기쁨만은 감추지 않았다.

“열아홉 번만에 간신히 붙었어. 실기 시험이야 까짓 거 누워 떡 먹기지 뭐. 합격하고 나니까 시험장에 있는 순경애들이 할아버지 축하한다고 난리야.”

하긴 그랬다. 반평생을 농기계 운전으로 살아온 사람이 따로 자동차 운전 연습까지 해두었다면 면허 시험이야 한낱 요식 행위에 불과할 터였다. 비슷한 사정으로 삼 년간이나 ‘무면허’로 ‘무사고’ 운전을 하다가 면허증을 딴 사람도 보았기에 하는 말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열아홉 번만에 면허증을 따고서야 자동차를 산 L씨야말로 모범 운전자다.

학문이나 산업이 자꾸 세분화되다 보니 현대를 자격증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수십 가지의 자격증·면허증을 가진 사람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어느 날 지하철 안에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인데, 이왕 자격증 시대라니 그 종류가 아무리 많더라도 한 가지만 보태자는 것이다.

지하철 노약자·장애인석에 아기 엄마가 앉아 있었다. 아니, 엄마는 앉아 있고 아기는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세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모자母子가 차지한 것이다. 아기는 약자이고 엄마는 그의 보호자니까 제자리를 찾아 앉은 셈이기는 했다. 그러나 상식대로라면 아이는 엄마가 안고 나머지 두 자리는 비워두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정거장에서 대여섯이나 되는 노인 일행이 오르자 시비가 벌어졌다. 노인측에서는 아기를 안으라고 하는데, 엄마는 청각장애인처럼 고개를 돌려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측에서만 일방적으로 호통을 치는 시비도 아닌 시비에 승객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쏟아졌지만, 정작 당사자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렇게 몇 정거장을 지나,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 품은 듯한 모자가 자리를 뜨고 나서도 노인들의 메아리 없는 성토는 그칠 줄을 몰랐다.

“사람같지도 않은 게 제 새끼 귀여운 줄은 알아서…….”

“저런 에미가 새끼를 기르면 그 새끼가 자라서 뭐가 되겠나?”

“저렇게 못 배워먹은 것이 새끼 낳는 건 어디서 배웠는지 원!”

“아, 그게 어디 배워서 아는 겐가?”

가뜩이나 치아도 부실한 노인들에게 이렇듯 좋은 입요깃거리를 제공하고 사라진 모자에게서 나는 기막힌(?)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리게 되었다. ─`결혼 면허증! 결혼을 하면 안 배워도 아이는 낳게 마련인데, 어미가 되고 나서도 정작 배워야 할 것을 못 배워 저 지경이라면 면허증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 나라 이혼율이 세계 3위라는 통계가 나왔는데, 부부 갈등·고부 갈등에 양가 갈등도 한 몫을 한 결과라니, 시부모 면허증, 장인·장모 면허증 제도를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3년 무면허 무사고 운전을 한 사람도 있는 걸 보면 무면허라고 다 사고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십구전이십기十九顚二十起 끝에 면허증을 딴 L씨에 믿음이 간다. 하긴 이렇게 말하는 나도 무면허 결혼 경력 30년에 치명상이나 면하고 사는 처지이니 더할 말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