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과 『초대』

                                                                                           한경섭

 피천득의 『인연』과 김태길의 『초대』를 잇달아 읽었습니다. 실은 『인연』을 읽자마자 쉬지 않고 『초대』를 읽었더니만, 김태길의 글은 매우 거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주일쯤 지나고 나서 어쩐지 다시 손길이 간 것은 『초대』였고, 이곳저곳 순서 없이 다시 읽어 보는 그의 글은 처음 읽을 때 느꼈던 거친감은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피천득의 글은 김태길의 글에서도 말한 것처럼 진주 같은 언어들이 꿰어진 구슬이고, 김태길의 글은 그에 비하여 강변의 자갈같이 와글와글 소리도 내며 크고 작은 모양들이 다양하지만, 그래도 흐르는 물에 씻기어 잘 다음어졌다고 비유해 보겠습니다.

피천득의 글에는 본인의 어렸을 적 이야기나 상해에서 보낸 대학생 시절 이야기를 빼고 나면 자신의 이야기는 별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어머니나 딸에 관한 이야기가 그나마 사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많은 글들이 시나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다른 객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 다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사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김태길의 글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글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비교적 젊은 시절인 1960년대에서부터 1990년 후반까지 그의 글에는 연도가 달려 있고 또 순서대로 되어 있어 나이가 먹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여 피천득의 글은 아마도 글을 쓴 연대대로 편집되었는지는 몰라도 세월을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두 분의 글이 모두 다 수필이라고 하지만 피천득의 글은 그대로 한 편의 시라고 느껴졌습니다. 나야 시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름다운 언어로 많은 뜻을 함축한, 그리고 많은 경우에 운율까지 있으면 그것이 시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고, 그런 나의 기준으로는 피천득의 글들은 모두 그대로 시가 됩니다. 김태길의 글은 산문입니다. 거친 것 같아도 아무데도 고칠 만한 곳을 찾을 수 없는 글입니다. 형께서 밑줄을 쳐 놓은 구절이 있습니다. ‘외로움도 느끼지 못하는 삶은 인간의 삶이 아니다’라는 그의 글처럼 그의 글에 인간의 냄새가 매우 짙게 풍겨옵니다.

우리 나라를 대표한다고도 말할 수 있는 두 분의 글을 읽으면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낍니다. 너무 아름다운 언어로만 쓰여져도 글은 훌륭하되 친근감이 없어지고, 진솔한 사람의 가식 없는 글이라도 풍부한 어휘의 창고에서 가장 알맞는 단어들을 골라내어 쓴 글이어야 읽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가 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무리 잘 쓴 글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의 글이어야 가슴에 와닿는 것이지, 읽는 사람과는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사람의 이야기는 감동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두 분 글의 공통점은 두 분 모두 자잘한 인생사들을 범상하게 보아 넘기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그리고 따스한 시각으로 정밀하게 관조한 글입니다. 잘난 체하지도 않고 감정이 격하지도 않습니다. 거기에 오랜 세월 탁마한 철학과 문학의 지식이 곁들여 있어 그의 글들을 더욱 풍요롭게 합니다.

그러나 나 같은 사람이 좋은 글을 쓰려고 함은 부질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세밀하지 못하고, 마음가짐도 정리되지 않았고,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할 어휘의 밑천도 턱없이 부족하고, 게다가 글을 넉넉하게 만들어 줄 지식의 거름밭을 가지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런 건 내게 걱정거리는 아닙니다. 나는 글을 써서 다른 사람을 감동시켜야 되고 그리고 그것으로 명예도 생계도 유지해야 할 사람은 아니며, 그렇다고 글을 쓰지 않으면 손이 근질거리는 글 병이 든 사람은 더욱 아니니까요. 그래도 형께서 보내 준 책을 읽고 그냥 입을 쓱 닦고만 있지 않고 어설프지만 느낌을 적어 인사에 대하는 글을 적을 수 있다는 것을 감사드리며 지내렵니다.

2001년 5월 22일(오늘로 독일에 온 지 만 두 달이 되었군요)

베를린에서 경섭.

 

 

 

한경섭

동부전자 부사장.

현재 베를린에서 요양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