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잎

                                                                                                 김형진

 늦가을 오후. 상담실 안엔 적막이 흐른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가을빛 때문일까. 눈꺼풀에 엉켜오는 졸음이 여간 아니다. 나는 몇 차례 도리질을 쳐 졸음을 뿌리친 다음, 느릿느릿 의자에서 일어선다. 유리창 위쪽으로 내다보이는 비취빛 하늘이 시원하다. 이끌리듯 창문을 향한다.

교사校舍의 맨 위층 한적한 곳에서 내려다보는 가을. 우선 눈길을 붙잡는 건 운동장 건너편 언덕에 몇 그루 줄지어 선 은행나무이다. 아니, 은행잎이다. 샛노란 은행잎이 가을 햇빛에 우려져 밝게 빛나고 있다. 그 은행나무 밑 농구장에선 웃통을 벗어붙인 학생들이 경기에 열중이다.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가 언뜻 떠오른다. 이 세상에 꽃보다 아름다운 잎을 가진 나무가 정말 있을까. 더군다나 여름 꽃도 가을 꽃도 아닌 봄 꽃(二月花)보다 아름다운 단풍잎(霜葉)이라니.

대부분의 나뭇잎들의 조락凋落은 처량하다. 누렇게 시들어 떨어지는 놈이 있는가 하면, 거뭇거뭇한 반점이 잎 전체에 번져 사그라지는 놈도 있다. 어떤 종류의 나뭇잎은 처량함을 지나 처절함을 느끼게까지 한다. 시들어 축 늘어진 채 가을 서리와 겨울 한풍寒風 속에서 찢어발겨진 추한 모양새를 이듬해 봄 새 잎이 움틀 때에야 떨어뜨리는 모습이라니……. 그런 나뭇잎을 볼 때엔 눈물겹다기보다 짜증이 앞선다.

단풍든 잎이 아름답기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단풍나무일 것이다. ‘霜葉紅於二月花’에서 ‘霜葉’도 단풍 나뭇잎을 가리켰으리라. 맑은 가을 햇빛을 머금고 있는 단풍 나뭇잎은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도 잎에 생기가 남아 있을 때까지다. 붉게 물들었던 단풍 나뭇잎이 생기를 다 쇠진하고 그 아름답던 색깔과 귀엽던 모양새를 잃어가는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퍼석퍼석 말라 빠진 잎이 싸늘한 바람에 구겨 버린 휴지조각처럼 흩날리는 모습은 처참하기까지 하다.

은행나무는 봄철 움이 틀 때부터 여름철 녹음이 짙을 때까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가지가 많은 것도, 잎이 무성한 것도 아니며, 꽃이 크고 아름다운 것도 아니다. 여느 나무 같으면 초라해 보일 법한 외양인데도, 은행나무는 쉬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 지니고 있다. 대부분의 나무는 밑동이 썩어들거나, 공기가 빠져 구멍이 생기면 측은해 보인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늙을수록 위엄을 더해 간다. 나이가 들수록 안에 갈무리된 힘은 더욱 강해지는 듯하다. 화석 식물다운 강인함을 엿보이는 대목이다.

뭐니뭐니해도 은행나무의 진가는 그 잎에 있다. 그것도 늦가을 단풍든 잎에서 절정을 이룬다. 은행잎은 단풍 나뭇잎처럼 울긋불긋 단장을 하고 아양을 부리지 않는데도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매력이 있다. 그러면서도 보는 이의 가슴을 들뜨게 하지 않는다.

단풍잎이 여성적이라면 은행잎은 남성적이다. 그것도 깊은 산속에서 오랜 세월 몸과 마음을 닦고 이제 막 하산한 현인 같다. 누구도 그 앞에서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게 한다.

은행 나뭇잎의 조락은 장엄하다. 질 때가 되면 머뭇거리지 않고 우수수 진다. 갈 때가 되었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머뭇거리는 약함을 보이지 않는다. 떨어진 잎을 주워 보면 썩어 반점이 생겼다거나 수분이 다 말라 푸석푸석하지도 않다. 여느 나뭇잎 같으면 아직도 한동안은 나뭇가지에 남아 자태를 자랑할 만한데도 때를 알아 져버린다. 은행잎은 땅에 떨어져 있어도 처량하거나 측은해 보이지 않는다. 아니 아직도 아름답다.

금년 8월 교사 정년 단축으로 갑자기 원로 교사가 되어 한적한 가을 속에 홀로 서 있는 나를 본다. 지금 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저 환한 은행잎도 며칠 뒤 된서리를 맞으면 우수수 지리라. 장엄하게 지는 은행잎의 모습이 자꾸만 눈앞을 어지럽힌다. 그리고 땅에 떨어져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은행잎이 자꾸 눈에 밟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