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가락지 한 짝으로 남은

                                                                                                        정태헌

 발치에서 곰실곰실 나들이 나온 게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면, 갯바람에 술렁이는 갈대 숲이 없었다면 더욱 적멸의 풍경이었을 게다.

철새 도래지 순천만 갯둑에서 바라본 개펄은 빈 가슴이다. 철새조차 떠나 버린 빈 개펄이다. 한 발짝 앞서가던 K선생은 담배를 꺼내 물었고, S목사도 개펄 쪽에서 눈을 떼질 않는다. 쾌활한 성격의 P여사도 발걸음이 느려진다. 아득히 펼쳐진 개펄을 끼고 둑길을 걷다 보니 내남없이 말수가 줄어든다. 무슨 생각들을 하는 걸까. 벼르던 기차 여행인지라 사뭇 들썩거리기까지 했는데.

갈대 숲을 훑고 지나가는 비릿한 갯냄새가 코끝에 훅 끼친다. 순간 지금도 삽짝 울타리를 잡고 망연히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을 이모님의 환영이 왈칵 달려든다. 이모님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그놈의 흰 왜가리 한 마리 때문이다.

저편 산기슭의 푸른빛을 옆에 끼고 개펄 위를 나는 왜가리는 철새들이 떠나 버린 빈 개펄을 지키는 파수꾼 같다. 흰 왜가리는 이모님의 손가락에 낀 은가락지로 어느 새 둔갑을 한다. 소나무 껍데기같이 거칠고 메마른 손가락에 끼워진 그 은가락지로.

팔순의 이모님에 대한 생각은 비릿한 갯냄새와 은가락지로 다가온다. 유년 적, 어머니의 치마폭을 잡고 이모님 댁에 갔을 때, 이모님은 소복 차림이었다. 어머니를 발견한 이모님은 삽짝까지 달려와 무너져 내리듯 어머니의 가슴으로 쓰러졌다. 어머니의 등 뒤로 넘어온 이모님의 손가락엔 은반지 한 벌이 애잔하게 끼워져 있었다. 그곳은 몇 걸음질만 하면 갯물이 밀려오는 남해의 갯마을. 얼기설기 엮어 놓은 울타리엔 주인 잃은 걸그물이 걸려 있을 뿐.

이모님은 부모가 짝지어 준 사내 따라 군소리 없이 갯마을로 시집을 갔다. 앳된 색시는 그런대로 실팍한 사내의 가슴팍에 기대어 수굿하게 살았다. 사내는 가난했지만 제 색시 귀한 줄 알았다. 더러 취한 발걸음이었지만 고기잡이 갔다 올 땐 색시 위해 생선 몇 마리 챙겨오는 걸 잊지 않았다. 썰물 밀물이 나고 드는 갯가에서 이듬해 아들을 낳았고, 그들은 아이의 숨소리처럼 포근하고 다정하기만 했다.

허나 비바람 세찬 어느 여름날, 사내는 그물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러 바다에 나갔다가 영영 소식이 끊기고 말았다. 주검도 건사하지 못한 채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만 것이다. 색시가 시집간 지 육 년만의 일이었다. 도리 없이 모진 세월을 먼 바다만 빈 가슴으로 바라보며 한 점 혈육을 갯바람 속에서 키웠다. 아들은 갈대같이 억세게 자라 일찍이 아버지의 걸그물을 걸머지고 바닷가로 나갔다. 그리고 근동에서 짝맞추어 혼례도 치렀다. 아낙은 지아비보듯 자식을 올려다보며 며느리, 손주녀석과 함께 시름을 잊으려는 듯 갯가에 묻혀 살았다.

하지만 아들 역시 시퍼런 나이에 아버지처럼 흔적 없이 바다에 또 묻히고 말았다. 이태 후, 어린 자식을 팽개치고 며느리마저 어디론가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아낙은 남정네의 두 주검을 가슴에 묻고 어린 손주녀석을 키우며 눈가가 짓무르도록 곤곤한 세월을 바다만 바라보며 살았다.

헌데 장성한 손주녀석마저 대처로 가겠다고 고집하는 통에 결국은 허락하고 말았다. 그리고 철새 떠난 빈 개펄같이 빈 가슴으로 살고 있다.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운 것은 얼마 전 뵈었을 때다. 갯바람에 그을린 얼굴, 갯고랑 같은 깊은 주름살, 그리고 메마른 손등을 볼 수가 없어 피하고 싶기만 했다.

허나 눈길을 붙잡는 게 있었다. 메마른 손가락에 헐렁하게 끼워진 은가락지 한 짝이었다. 유년 적 보았을 때, 애잔하게 반짝이던 은가락지 한 벌이었는데. 유일하게 간직했을 지아비의 마음이 배인 가락지였을 텐데. 세월만큼 거칠게 닳아 있었다. 흠집과 자꾸 닦은 흔적이 엿보였다. 한 짝은 어찌 된 걸까.

그 동안 이모님은 어디에 기대어 무엇을 바라보며 갯질경이 같이 살아왔을까. 지아비와 한 점 혈육을 바다에 묻어 봉분조차 짓지 못했으니…며느리를 찾을 생각이야 어찌 없었으랴. 그저 묵묵히 떠나 보냈겠지. 어쩌면 손주녀석을 갯가에 비끄러매두고 싶지 않아 선선히 도회로 보내지 않았을까.

모진 세월을 남은 은가락지 한 짝에 의지하여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때가 끼고 색이 흐려지면 육자배기라도 웅얼거리며 은가락지를 닦고 또 닦았겠지. 헌데 은가락지 한 짝의 행방이 자꾸 궁금하기만 하다. 어쩌면 그 한 짝의 은가락지도 지아비와 자식의 뼛조각처럼 어느 개펄에 묻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갯둑에서 서성이는 동안, 이모님이 빈 가슴을 무엇으로 채우며 여태껏 살아왔을까가 못내 궁금하기만 했다. 자꾸만 칙칙한 개펄 위를 선회하는 흰 왜가리 한 마리가 한 짝의 은가락지로 보여 가슴 속으로 비집고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개펄에 묻혀 있는 굽은 나무막대가 먼 바다를 지금도 바라보고 있을 등이 휜 이모님의 모습으로만 보인다.

돌아오는 갯둑, P`여사의 뒤를 걷다가 못 볼 것이라도 본 양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집 뜰에 심겠다고 갯둑에서 뽑아 든 달맞이꽃이 생맥없이 시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