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진

                                                                                                한혜경

 시간이 나는 날, 오랜만에 서랍 정리를 했다. 몇 년 묵은 영수증과 편지들 사이에서 미처 앨범에 끼우지 못한 사진들 뭉치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하던 일을 잠시 밀쳐두고 사진들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노라니까 옛 기억이 하나씩 둘씩 되살아났다. 그 옛 시간들에 빠져들고 싶은 마음에 아예 앨범까지 찾아들고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오래 눈길이 머무는 것은 아이들 어릴 때 사진들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아이 특유의 맑고 밝은 웃음, 막 돋아난 풀잎같이 여리면서도 싱그러운 모습이 아무리 오래 들여다보고 있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특히 햇살이 환하게 들어오는 거실 바닥에 두 아이가 나란히 앉아 웃고 있는 사진에서 눈을 떼기 어렵다. 사진 뒤 기록을 보니 딸애가 일곱 살, 아들애가 네 살 때이다. 제각기 좋아하는 인형을 가슴에 안고 함빡 웃고 있는 아이들의 벗은 발바닥이 정면을 향해 놓여 있다. 아직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하얀 발바닥. 이젠 다시 돌아가기 어려운, 순수했던 시절의 상징처럼 보여 나도 모르게 눈물이 어린다.

작은 것으로도 만족하고 결핍감과는 거리가 멀 때, 갈등이란 기껏 남매 사이의 실랑이 정도이고 속임수나 배반에 대해 아직 잘 모를 때, 낙오의 슬픔이나 열패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할 때, 그때는 사라지고 어느 새 중고생이 된 아이들은 학교다 학원이다 힘겨워한다. 여린 발바닥엔 조금씩 굳은 살이 박히고, 어릴 때와 같은 활짝 웃음은 자주 보기 어려워졌다.

또 다른 사진에서는 아버지가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웃으시며 손주들과 함께 물장구를 치고 계시기도 한다. 지금도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젊다는 말을 많이 듣는 어머니의 환갑 때 사진은 새색시처럼 고우시다. 그리고 이젠 나이와 함께 군살이 붙었지만 호리호리한 몸매와 갸름한 얼굴로 웃고 있는 친구들과 나의 학창 시절 사진도 있다.

우리 주변에 둘러 서 있는 나무들처럼 싱그러웠던 시절, 우리의 눈빛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하고 꿈에 잠겨 있다. 그때 꿈꾸고 기대하던 일들이 지금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우리 앞에 아무 제재 없이 펼쳐질 것 같았던 삶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래서 사진 속 하얀 발바닥과 싱그러운 미소는 볼수록 애틋하다. 그것은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았던 순간으로 남아 이렇게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 날의 환한 빛살을 되살려주고 있다.

내 곁을 흘러가는 무수한 시간들 속에서 어느 한순간이 포착되어 지금 다시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 신비롭다. 그냥 흘러갔다면 우리 뇌리에서 하얗게 지워졌을 시간이 한 장의 사진으로 남아 우리 곁에 영원히 존재하고 있으니 신비하다고 할밖에.

우리의 기억력이란 한계가 있어서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은 순간들은 잊혀지기 쉽다. 하지만 어떤 순간은 사진 속에 포획되지 않음으로써 무한히 확장되고 때로는 더 아름답게 채색되기도 한다.

두 해 전 겨울, 문우들과 설악에 갔을 때 일이다. 속초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창 밖으로 희뿌연 먼지 같은 것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저게 뭔가 하며 바라보니 아주 가는 눈이 내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눈발이 점차 굵어지더니 얼마 안 있어 주위 풍경을 새하얗게 바꿔 놓았다. 저 앞에 보이는 산등성이며 길가의 나무며 자동차 위, 모든 것이 하얀 눈뿐인 설국으로 변했다.

눈이 쌓이자 제일 먼저 마비되는 것은 도로 사정이어서 머리에 눈을 잔뜩 인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서울에서라면 길이 막히는 것에 짜증을 냈겠지만, 그곳에서는 자연 앞에서 기계 문명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가 먼저 느껴졌다. 눈 속에서 인간들과 인간들이 만든 자동차나 문명은 작고 무력해 보였다. 나무나 산, 하늘, 자연만이 의연했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 아래 고요히 가라앉은 낙산사 경내, 저녁을 먹는 횟집 너머 펼쳐진 밤바다의 거센 파도, 검은 밤하늘을 하얗게 칠하며 쏟아지는 눈송이들, 밤새 눈 치우는 차의 삐삐거리는 소리를 아스라이 들으며 뒤척이던 잠자리. 그리고 아침이 되었다. 잠이 모자라 잘 떠지지 않는 내 눈 앞에 아낌없이 펼쳐져 있는 것은 온통 하얀 은세계였다.

태초의 세상에 발을 내딛는 최초의 인간처럼 오직 흰빛뿐인 세상에 가만히 발을 내밀고 조심조심 발자국을 찍으며 눈길을 걸어봤다. 그리고 권금성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가며 눈 덮인 설악의 자태를 눈이 시리도록 바라보았다. 우리의 발자국과 목소리가 설경에 흡집을 내는 것 같아 조심하면서.

인적은 드물고 넘쳐나는 것은 하얀 눈뿐인 세상. 온 세상이 숨을 죽인 채 하얗게 엎드려 있는 것 같았다. 설경도 오랜만이었지만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더욱 황홀했던 것 같다. 마침 사진기를 가져온 일행이 있었기에 우리는 그 풍경들을 열심히 사진기에 담았다.

그런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그 사진들은 한 장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무척 아쉬웠지만 시간이 흐르니 사진 없이 기억에 남겨두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사진으로 남아 있지 않으므로 그 날의 풍경들은 내 머리 속에서 이리저리 흐르다가 아름다운 것만 재생되곤 한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자연스럽게 희미해지고, 기억하기 싫은 것들은 슬쩍 지워버리면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결정체처럼 남는다. 나의 의도적 편집에 의해 순수 자체로 채색된 그 시간은, 사는 게 구질구질하다는 느낌이 들거나 회색 도시에서 숨막힐 때, 한숨 돌리게 하는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혜경

<계간 수필>로 등단(98년).

현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