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쾅, 그 여진

                                                                                              최병호

 어느 지점에선가 느닷없이 핸들이 왼쪽으로 확 꺾였다. 응!? 하는 사이 차체는 지그재그로 쿵-쾅, 오른쪽 둔덕의 눈더미 위에 처박혔다. 아니 이런? 이런……! 나는 차 안에 앉은 채 몇 번이나 너털웃음을 토했다.

그 날, 나는 ㄷ교도소엘 가고 있었다. 주 한 번의 문예강좌를 이어가기 위해서다. 연일 내리던 눈이 문득 멈추고 맑은 하늘이 끝없이 펴진 날씨. 차창으로 안겨드는 햇볕이 더없이 반가웠다. 제설 작업이 잘된 편도 2차선의 새 대로가 시원스러웠다. 그런 가운데 사고라니…….

밖으로 나가 보았다. 쿵-쾅 소리 그대로 앞 범퍼가 박살이 나고, 뒤 범퍼도 왼쪽이 빠개져 있었다. 앞 타이어는 둘 다 휠에서 어긋나 있었다. 와락 눈물이 나려고 했다. ‘쾅’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완만한 둔덕 끝이어서인지 별스런 흠은 없었다. 처음 ‘쿵’ 했던 분리대를 가 보았다. 약간 휜 듯했으나 눈에 띨 정도는 아니었다. 핸들이 확 꺾였던 현장을 살펴보았다. 위로 다리가 하나 가로지른 지점이었다. 노면이 낮아서인지 갓길에 쓸어 붙여진 눈더미 언저리가 꽤 두터운 빙판이었다. 핸들을 10시 10분 각도로 쥐지 않고 아래쪽을 느슨하게 잡았던 방심이 번개처럼 떠올려졌다.

이윽고 수습을 서둘렀다. 찾아간 정비소는 일급 서비스 센터였다. 꽤 넓은 마당엔 일그러진 차들이 늘비했다. 수속이란 게 기이했다. 수리가 끝났을 때, 센터가 보험회사에 내야 하는 수리 내역은 아직 공란인, 말하자면 백지 위임서 같은 청구서의 기본 난을 쓰는 일이었다. 담당자는 차가 밀려서 한 사날 후에나 공장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차 안의 물건들을 대강 싸들고 집에 오는 버스를 탔다. 허탈인지 피곤인지 어깨까지 뻐근했다. 자꾸만 차의 일그러진 모습이 애처롭게 어른거렸다.

그 동안 나는 별 생각 없이 ‘쿵-쾅’이란 소리를 곱게만 삭혔던 것 같다. 건설 현장에선 ‘희망의 소리’로, 학교 복도에선 ‘약동의 소리’로, 심지어 전쟁터에서의 그 소리까지도 마냥 ‘국방의 소리’로만 여겼으니……. 그런 소리들이 그 날 왜 별안간 내 차가 토해낸 그 상처 위로 겹겹이 달려들었는지, 살래살래 고개가 흔들어졌다. 좋은 뜻으로 내세워진 그 숱한 ‘쿵-쾅’ 소리 속에도 얼마나 많은 아픔들이 묻혀졌던 것일까? 새삼 숙연해졌다.

정비소에선 ‘사날 후’가 거듭 지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전화를 넣었다. ‘밀린 차가 많아서 아직도’라고 했다. 오래 갈 것 같은 으스름이 스쳤다. 과연 그 다음 핑계는 ‘부품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서’였다. 사탕발림처럼 ‘판금부에 가 있다’는 잠깐의 낭보에 이어 또 종무소식. 내 지친 목소리가 전화를 들었을 때, 그 화답은 ‘파업이 일어났어요’였다. 나도 몰래 수화기가 던져졌다. 제길, 불행도 한꺼번에 온다 했던가.

현장을 쫓아가 보았다. 차는 보닛이 벗겨진 채 방치되어 있었다. 왜각대각 드러난 엔진의 몰골이 마치 파업한 의사를 기다리는 응급환자의 안색같이 느껴졌다. 몇 가지 새 부품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 사태 이후, 불어닥친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내 차도 꼼짝없이 일격을 당한 꼴이 되었다. 그런 시대적 상황이야 사실 누군들 어찌하랴.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이러구러 석 달이 다된 어느 날, 묻지도 않았는데 ‘차를 찾아가라’는 희소식이 귀에 꽂혔다. 파업에 불참한 한 정비공의 호의라고 했다. 일부 부품을 그가 제 돈으로 구했으니, 그건 차주가 우선 부담해 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논리를 앞세웠다. 나는 호의는 고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귀사의 내부 문제이고, 또 그런 일은 돈을 줄 보험회사와 상의하라고 일축했다.

보험회사 보상과로부터 금방 전화가 왔다. 별것 아니니 돈 걱정은 말고 차 찾아갈 때 위임장만 하나 써 주라는 얘기였다. 위임장?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시 보험설계자에게 문의했다. 그쪽에선 위임장이 아니라 확인서라고 했다. 확인서?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바로 보상과를 찾았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위임할 수 있고, 또 확인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담당자는 내 말은 건성으로 듣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비소의 처사만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리곤 수화기를 들었다.

일급 정비소 마당엔 황사에 묻힌 폐차가 하나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수리됐다는 내 차의 몰골이었다. 와락 눈물이 나려고 했다. 담당자는 여러 모로 미안하다고 했다. 불만이 목까지 치밀었지만 터져 나온 말은 어찌된 일인지 수고 많았다는 인사였다. 차창만 대강 눈을 틔우고 집으로 행했다. 차는 그런대로 잘 굴렀다.

대청소를 했다. 보닛 표피가 깔끔히 닦이지 않았다. 쿵-쾅에 이은 그 여진의 숱한 멍울처럼 고물고물 얼룩투성이었다. 엔진 쪽에도 붙들어 매지지 않은 배선 등, 미심쩍은 곳이 몇 군데나 보였다. 웃음이 나왔다. 차는 굴러도 그 쿵-쾅의 여진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쿵-쾅, 그 빛과 그늘을 가만히 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