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잎 이야기

                                                                                        김유빈

 살기가 좋아진 탓일까.

‘음식 문화’에 대한 격조 높은 이야기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퓨전 요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그러나 격조 높은 요리를 대하기란 일상과 너무 멀고, 퓨전 요리 속에서는 오래 묵은 전통의 멋과 재래의 살가운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첨단의 문명사회를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고향이나 어머니의 존재는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따뜻한 품으로 남아 있듯, 태어나서부터 먹어온 내 집안의 음식 하나쯤은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오늘 아침, 입덧을 한 고비 넘긴 딸아이의 전화는 온통 먹는 얘기였다.오장동 함흥냉면에서부터 무교동 낙지볶음, 신촌의 복국 그리고 또 무엇 무엇 하며 한참 읊더니,

“엄마, 된장에 묻어 놓은 콩잎 있지요?” 했다.

“콩잎?”

느닷없는 말이었지만, 나는 내심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임신중인 여자의 변덕스런 입맛이 궁리 궁리를 거듭하다가 친정집 된장 항아리에 묻혀 있는 콩잎을 생각해 낸 것이었다.

그것은 작고 사소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족과 가족을 엮어주는 끈이 되고, 서로가 가족임을 확인시켜 주는 기회가 바로 그 작고 사소한 일이 아니던가.

혈연으로 맺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족이라 부를 수야 있겠지만, 서로가 가족답기 위해서는 함께 공유하고 있는 이런저런 추억들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다. 게다가 특별한 음식에 대한 가족들의 기호가 유난스러웠다면 그 추억은 더욱 소중한 것일 게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단어보다는 ‘식구’라는 말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된장에 삭힌 콩잎은 두루두루 알려진 우리집의 별미다. 그리고 나에게는 찬이 아닌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으니, 식탁 위에서 남북 화합을 이루었다고나 할까.

 

경상도 출신인 남편과 평양이 고향인 나의 결혼을 두고 사람들은 남남북녀의 만남이라고 하며 덕담을 해 주었다.

그러나 다른 환경, 다른 습관, 거기에다 음식과 식성까지 다른 남남북녀의 결혼 속에는 크고 작은 많은 충돌이 예고되어 있었다. 더욱이 우리는 나의 어머님, 그러니까 꿈에도 고향 평양을 잊지 못하고 계시는 장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남편은 생선 갈치로 끓인 국을 즐겨 먹으며 자랐고, 나는 세상의 모든 국은 쇠고기로 끓이는 줄 알았다. 어머님의 별식은 언제나 빈대떡과 만두였고, 남편이 반기는 음식은 오직 생선이었다. 그러니까 맵고 짜고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가 완전히 달랐다.

육류가 주류를 이루었던 어머니와 나의 식탁이 차츰 생선들로 바뀌어갔다. 그래도 나는 빠르게 남편의 식성에 접근해 갔지만, 환갑을 바라보시는 어머님의 식성은 쉽게 변할 리 없었다. 그 중 가장 심했던 것이 콩잎 사건이었다.

시댁에서 얻어온 콩잎을 남편이 아주 맛있게 먹자, 어머님이 그만 참지 못하고 한 말씀하셨다.

“콩잎은 소가 먹는 것인데…….”

사실 그 말은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릴 법도 했다. 경상도 음식을 품위없다고 흉보시는 도가 지나치다고 느껴오던 터였다.

다행히 남편은 크게 웃어 넘기며 그 순간을 수습했다.

“어머님도 어디 한 번 잡숴 보세요. 몸에도 좋답니다.”

그런데 그 일은 의외의 결과를 가져왔다.

어머님도 자신의 말에 민망함을 느끼셨던지,

“어디 나도 한 번 먹어 볼까” 하고 한 장을 떼어 입에 넣으셨다.

그리고는 그 날 이후로 어머님은 즐겨 콩잎을 찾게 되셨다.

“입맛 없을 때 제 격이구나…….”

 

남쪽에서 머뭇거리던 장마전선이 북상한다 하더니, 날이 어두워지면서부터 장대비가 쏟아진다. 유리창에 부딪치는 빗줄기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 역시 저기압의 낮은 골로 서서히 가라앉았다.

‘새 생명을 잉태한 딸아이는 콩잎을 찾고, 그 콩잎을 즐기시던 어머님은 아니 계시는구나.’

저녁을 먹으며 남편에게 오늘 딸아이가 콩잎을 찾더란 얘기를 했다. 빙긋 웃을 뿐 한참이나 아무 말 없던 남편이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 했다.

“우리, 내일 만두국이나 끓여 먹을까.”

 

 

 

김유빈

<동서문학> 신인상 수상. 가락 동인.

공동 수필집 『떠오르는 빛』, 『나무로 만나 숲으로 서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