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만나다

                                                                                                       金銀福

 우리 모임의 다음 달 숙제는 프랑스의 작가 미셸 투루니에의 산문집 『짧은 글, 긴 침묵』이었다.

중후한 노신사를 연상했던 나는 저자의 사진에 놀라고 말았다. 온통 검정 바탕에 하얗게 부각된 것은 노안老顔과 왼손 하나뿐, 흡사 검은 비로드 장막에 매달려 있는 가면을 연상시켰기에…….

1924년 파리에서 태어난 저자는 25세에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등 독일 문학작품을 번역했고, 67년에 발표한 첫 작품인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이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 수상, 70년엔 『마왕』으로 콩쿠르상을 수상, 72년엔 아카데미 콩쿠르 종신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역자인 김화영 씨는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프로방스 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고려대학에 재직중이며, 저서와 역서가 적지 않다.

역자는 ‘책머리에’에서

 

‘… 이 산문집은 철학적 신화적 교양으로 무장된 이 작가 특유의 사유의 깊이, 매섭고 해학적인 에스프리 그리고 시적 몽상이 개간해 놓은 침묵의 넓이와 자유로움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중략) … 그의 산문은 방만한 수필이 아니다. 그것은 등푸른 생선이다. 구워서 밥상에 올려 놓은 생선이 아니라 이제 막 아침 빛을 받으며 바다 위로 튀어오르는 생선이다. 자 이제 떠난다. 그 선도 높은 언어의 빛을 낚아채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의기소침해진 나는 도저히 ‘자 이제 떠난다’고 외칠 수가 없었다.

유복한 가정의 5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결혼을 하지 않은 저자는 2세기 동안 사제관으로 사용하던 건물을 구입해서 홀로 기거하고 있는 범상치 않은 자유인 같았다. 그 자유로움 때문인지 무척이나 여러 나라를 넘나들었고, 그때마다 예리한 관찰력과 탁월한 추리력으로 종횡무진 표현하는 게 아니라 표출해 내는 필력은 참으로 멋지고 신기했다.

무작정의 의욕에도 불구하고 생경한 인명이나 지명, 고유명사들이 나오면 목에 걸린 가시처럼 껄끄러워 속도가 나가지 않았고, 생소한 관습과 세계적인 석학들의 고차원적인 대화나 기발한 버릇, 함축적인 블랙 코미디에 이르러서는 아리송하고 난해해서 기권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모처럼 이 책을 추천한 문우 金과, 삼복 더위에 일괄 구입해서 나눠준 邊의 성의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어 고민하던 차, 궁즉통窮卽通!

“어려운 대목이 나오면 일일이 사전을 찾거나 어원을 규명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꾸만 읽다 보면 자연히 문장의 앞뒤가 맞아떨어진다”는 한문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라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70년대 이후 프랑스가 배출한 최대의 작가로 해마다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는 무렵이면 예의 없이 후보 1순위에 꼽힌다는 작가의 글을 해독하려고 끙끙대기보다는 저자가 넘나들었던 미지의 세계를, 염치불구하고 무임 승차한 채 따라 나서기로 마음먹었더니 꼬리를 물고 생각난 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김기림金起琳 시인의 시 한 수였다.

 

序 詩

 

世界는 나의 學敎

旅行이라는 課程에서

나는 수없는 신기로운

일을 배우는

유쾌한 小學生이다.

 

나는 그 무덥고 지루하던 여름을 유쾌한 소학생이라도 된 기분이 되어 쉬엄쉬엄 따라다녔다. 비록 ‘숙제를 했다’기보다는 수박 겉핥기였지만 무임 승차했던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었다.

패의 제목이 시사하듯이 짧은 문장 속에, 범 세계적이고,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는 길고도 깊은 역사가 숨을 쉬고, 춤을 추는 이상한 책, 그 좌충우돌하는 자유분방 속에도 치밀하고. 어느 한 군데 데면데면 넘어간 곳이 없이 저마다 기지와 유모가 번뜩거리는 짜임새 있는 장章마다, 마치 박진감 넘치는 단편 영화와 같아 독자는 자신도 모르게 매료될 것이다.

1997년 11월에 파리에 있는 저자의 자택을 방문했을 때의 역자와 대화를 옮겨 본다.

 

‘그는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번역하게 되었느냐, 그리고 특히 『짧은 글, 긴 침묵』의 어떤 점이 좋았느냐고 물었다. 우리 나라 옛 선비들의 산문 전통과 어딘가 약간 미진한 듯한 그 짧은 산문들은 그 자유로운 형식에 있어서 어딘가 통하는 데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나는 사실은 유사성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사고의 낯설음이 좋아서 번역하는 것이리라…….’

 

유복한 집의 5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현재까지 결혼도 하지 않은 저자는 근 2세기 동안을 일곱 명의 사제들이 생활했던 사제관을 사들여 홀로 살고 있는 저자의 ‘매력과 광채’라는 글 중에서

 

사제관의 매력? 그 정원의 매력? 나는 어느 면 그걸 증명하기 위하여 여기서 사는 기분이다 (중략)… 그런데 정원으로 말하자면… 정원은 공동묘지와 붙어 있는 데다가 최소한 2미터는 되는 축대 아래 있다는 것을 말해둬야겠다. 어느 해인가 나는 면장─본래 직업이 토목업이며 석공인─을 찾아가서 담장 밑 축대가 약 20미터도 넘게 아래쪽으로 불룩하게 나와 있는데 그것은 땅 속에 묻혀 있는 수많은 척추와 어깨뼈들이 밀고 나오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렇게 밀어 붙이다가는 결국 사자死者들이 담을 뚫고 나오지 않겠어요…….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런 집에서 홀로 지낼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는 흔히 환경이 성격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 이 저자는 이런 곳에서 오랜 세월을 살았던 때문인지 그는 요즘엔 흡혈귀 문제에 심취영량해 있다는 것이다.

 

─ 그 주제를 가지고 한 권의 소설을 써 보려고 말입니다. 아주 결정적인 흡혈귀 소설을요. 모리스 라벨이라는 작곡가는 왈츠곡을 작곡했어요. 그가 원했던 것은 흔히 있는 왈츠곡들 중 한 곡이 아니라 왈츠곡 그 자체였어요. 과연 그 곡이 발표된 이후에는 아무도 왈츠를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죠. 내가 원하는 흡혈귀 소설도 그런 거예요. 부정관사가 아니라 정관사가 붙은 흡혈귀 소설! 투루니에는 항상 이런 식이다. 얼른 들으면 매우 오만한 발언이다. 라고 적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잡다한 치장보다는 아무것도 없음을 찬양한‘고양이와 거북이’ 중에서, 실내 장식은 나의 장기가 아니다. 25년 전 내가 이 집에 처음 이사했을 때 유난히 마음에 드는 것은 그 텅 비어 있음과 가구 하나 없는 방들에서만 느낄 수 있는 낭랑한 울림, 그리고 작가인 나에게는 백지의 흰색을 연상시키는 그 벌거벗음이었다. (중략)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도 진진하지만 독자의 시야와 사고의 폭을 넓혀 주고, 배울 점이 너무나 많았던 고마운 책. 이루 다 소개할 재량才量 부족이 못내 아쉽지만 단연 권장하고 싶은 책이었다.

드디어 9월 17일 밤, TV에선 시드니 올림픽에 출전했던 한국 축구팀이 강적 모로코를 1대 0으로 제패했다는 환호성이 터질 때, 책의 종장인 248쪽을 읽은 나는 얼른 ‘한 권의 책을 만나다’라고 적어 놓고 시계를 보니 12시 30분이었다.

 

부정관사가 아니라 정관사가 붙은 본격적인 ‘흡혈기 소설’을 고대하면서…….

 

 

 

김은복

<수필공원>으로 등단.

수필집 『송도의 여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