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로 간 아이

                                                                                                       程光愛

 스산한 산바람에 물든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다. 여기저기서 서성이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로, 발 아래로 제멋대로 휘날린다. 아이는 4번 번호표를 달고 그곳으로 들어간 지 한 시간이 넘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이별의 길이다. 주위 사람에게 많은 상처를 남기고 아이는 저만의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갔다.

 

아이는 ‘백과사전’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성적이 우수한 것은 물론 갖가지 상식이 풍부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붙여준 또 하나의 이름이다. 그 아이가 주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고등학교에 들어가 1등을 하면서였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더욱 큰 것을 요구했고,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켜주기를 원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2등에서 3등, 다시 1등, 오르락내리락 시소를 타면서 심한 마음의 갈등을 겪기 시작했다. 공부에 짓눌린 아이는 어디에서도 여유로움을 찾을 수가 없었다.

공부로 치장된 집과 자꾸만 더 큰 것을 요구하는 아버지로부터의 탈출구는 일요일에 잠시 나가는 외출이었다. 그것은 교회를 간다는 명목이다. 신앙심에서라기보다는 교복을 벗어버리고 바깥세상과의 만남, 친구들과의 어울림, 잠깐의 해방이었지만 아이에겐 더할 수 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자유마저도 오래 가지 못했다. 숨통을 조여오는 듯한 아버지의 요구에 순응하면서 아이는 자신을 위하는 길이거니 확신했다. 대학에만 가면 자립할 수 있다는 희망도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별거 상태였다. 정확한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부부의 성격차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날 아버지와의 불화도 떨어져 있는 엄마를 만나고 오면서 터졌다. 늦게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아버지는 몹시 화가 났고, 그 과정에서 전화로 아버지와 엄마의 다툼이 있었다. 공부하는 아이 왜 불러내느냐고…….

참아 왔던 모든 것이 폭발한 아이는 아버지에게 심한 반항을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그만 아이에게 손찌검을 하고 말았다. 아이는 무너진 자존심과 걷잡을 수 없는 격한 감정 때문에 집을 뛰쳐나갔다. 그리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소식이 없었다.

아이의 소식을 들은 것은 그 후 1주일이 되던 날이다. 그것도 병원 영안실에서였다. 하얀 국화 속에 파묻혀 있는 녀석은 17세 나이답지 않게 의젓한 모습으로 영정 속에 있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쓰러져 누워 있는 엄마, 말 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소리 없이 눈물을 훔치고 있는 아이의 친구들, 모두 말이 없다.

아이는 집을 나온 후 밖에서 엄마와 짧은 통화를 했었다.

“엄마, 나 힘들어.”

“아무 생각 말고 엄마한테 오너라.”

“엄마, 생각 좀 하구 갈게요.”

생각하고 가겠다던 아이의 말은 그냥 끝이었다. 그것이 아이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요즘 새로운 TV 드라마가 나가면 많은 네티즌들이 그에 대한 요구 사항을 수십 건씩 올린다고 한다. 사랑하는 남녀인데 꼭 맺어져야 하지 않겠느냐, 불행한 주인공을 행복하게 해 달라, 모든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해 달라… 등 갖가지 의견이 오른단다.

문득 아이의 이야기가 드라마였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어쩌면 나 역시도 그들과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극적인 화해를 해 달라, 죽음을 택한 아이를 누군가가 구해 달라, 엄마와 아빠를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는 등 떼를 부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주인공이 없으니 어느 한 경우도 성립되는 것이 없다.

불행에 익숙지 않은 우리의 아이들, 그런데 아이는 스스로 불행의 길을 택했다. 그 무엇이 17세의 아이를 차가운 물 속으로 밀어넣었는지 모르겠다. 아버지와의 갈등, 성적에 대한 짓눌림, 엄마 사랑에 대한 그리움, 모두가 아이에겐 헤쳐나갈 수 없는 험난한 가시덤불이었을까?

불 속에 있던 아이는 1시간이 지나고 40분이 더 지나고야 한 줌의 재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엄마의 통곡이 메아리쳐 모든 사람의 가슴을 쳤다. 학교 친구들의 손에 들려 그곳에 들어간 아이는 다시 친구들 품에 안겨 나왔다.

짧은 해가 갈 차비를 하고 있다. 하늘은 낮아지고 조금 더 차가워진 산바람이 사람들의 어깨를 더욱 움츠리게 했다. 아이 엄마에게 우리는 친구로서 위로할 말이 없었다.

“나쁜 녀석이에요. 잊어버려요.”

하지만 아이가 왜 나쁜 녀석이야만 하는지 우리 모두 입을 다물었다.

흔히 화장터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우리는 뿔뿔이 헤어졌다. 부디 잘 가라는 짧은 말로. 그러나 서로의 가슴에 아픔을 묻고 아이와 이별을 했다.

아이는 늘 가고 싶어하던 동해로 그렇게 홀연히 떠났다.

 

 

 

정광애

<에세이 문학>으로 등단.

공저 『단감찾기』, 『마루가 있는 집』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