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료작 -

 저 강을 건널 때

                                                                                                     이난호

 “기쁜 노래 부르며 나를 드리오리.”

로사씨의 까만 입술에서 맑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는 그녀의 맨머리가 자잘하게 떨렸다. 성가 한 구절을 부른 로사씨는 눈을 딱 감고 꼼짝 않고 앉아 있다가 마치 먼지가 내려앉는 것처럼 사르르 뒤로 누웠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둘러앉아 로사씨를 지켜보던 사람들 중에서 한 청년이 뭔가를 휘젓듯이 어머니, 하고 불렀다. 로사씨가 눈을 반짝 떴다. 왜 자꾸 부르지? 또렷하게 물었다. 그녀의 앙상한 갈비뼈 밑으로 푹 꺼져 내린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자꾸 성모님을 부르세요. 청년이 얼결에 대답했다. 로사씨의 까만 입술이 찡긋했다. 미소를 만드는 것 같았다. 팔딱거리던 가슴이 잠깐 멎었다.

우리는 그녀의 가슴이 조금만 빠르게 뛰어도, 잠깐 숨을 멈춰도, 덩달아 숨차 하면서 저도 모르게 속으로 수를 세어갔다. 하나, 둘, 셋, 넷… 그러면 홀연 로사씨가 다시 몸을 일으켰고, “사랑하올 성모여, 찬미할지어다” 노래했다.

나는 그때마다 벽에 걸린 예수고상을 올려다봤다. 그는 네 개의 못으로 십자가에 걸려 축 늘어져 있었다. 저런 허술한 자세로 어떻게 이천 년씩이나 버텼을까, 자기 가시관의 무게 하나도 못 가누는 것 같은데 인류를 구원하겠다고, 나는 입술을 비틀어 물었다.

어머니 하고 부르던 청년은 점점 강해지는 시선을 로사씨에게 붙박고 움쭉달싹 않는다. 테레사도 반쯤 감은 눈으로 로사씨를 흘끔거리면서, 천주의 성모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소서, 끊임없이 염송했다. 왜일까, 나는 그토록 진지한 모습들이 겉노는 것처럼 들떠 보였다. 푸르뎅뎅한 얼굴이 낯설었다. 나는 얼른 시늉으로 가슴을 세 번 쳤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테레사가 급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새벽 두 시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로사씨가 또, 지금 돌아가신 대요.”

테레사는 교회에서 상례 일을 돕고 있었는데 가끔 나를 불러 동행을 청했다.

“한이 많은 분이어서 돌아가시기가 이렇게 힘든가, 벌써 몇 번째야…….”

로사씨의 임종을 지키려다가 몇 번 허탕친 테레사의 군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지금 돌아가신다’는 그녀의 말덜미를 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급한 김에 테레사는 위급 상황을 그렇게 요약했고, 나는 그 절대 절명의 진행 개념을 즉각 알아차렸음에도 ‘지금’에 사로잡힌 것이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로사씨는 이미 ‘지금 돌아가시고’ 있는 중이었고, 그로부터 두 시간 가까이를 아직도 ‘지금 돌아가시고’ 있는 중이다. 그녀는 그것을 증명하듯이 때때로 눈을 반짝 떴고, 낭랑하게 노래했고, 미소짓다가 깊게 침묵했다. 죽음을 맞는 모습으로는 참으로 기이했다.

나는 몇 번 죽음에 다다른 자들을 지켜본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대개 눈을 감고 납작하게 꺼져 누워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낼 숨을 벅차했다. 그렇게 차츰 미미해지던 숨결이 멎고 입가에 일던 작은 침거품이 잦으면 곧 몸에서 힘을 내렸다. 얼굴을 판판하게 폈다. 끝이었다.

지켜보던 이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그 큰 울음소리에 평온하게 죽음으로 가던 사람이 깜짝 놀라 되돌아설 것 같아 조마조마했었다. 숨이 멎은 후에도 그들의 몸은 얼마 동안 미지근한 온기가 있었다. 그때까지 그들의 극도로 투명해진 오감도 기능한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이제 비로소 그들은 자기의 체온이 서서히 식어가는 것을 허용할 것이고, 가장 자기다운 어떤 것으로 스스로를 갈무리할 것이다. 거기 그 시간은 오직 그들만의 성역일 것이다.

우리 남겨진 자들은 그들의 그 성스러운 시간을 조심스럽게 ‘지금 돌아가시는 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로사씨의 가슴이 불규칙하게 오르내렸다. 아직도 그녀는 ‘죽어가는’ 역을 맡기엔 일러 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잠시만 조용해도 둘러앉은 이들이 힘차게 임종경을 외웠다. 나는 역시 그 큰 임종경이 민망해서 로사씨의 눈치를 살피곤 했다. 그녀의 죽음을 재촉했던 속내를 들킨 듯해서였다. 그렇다고 기도를 멈출 수도 없었다. 자기가 죽는 순간에 마귀가 영혼을 재빨리 잡아채려고 노리고 있다고 로사씨가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나는 그녀를 슬쩍 밀고 싶었다. 마치 높은 턱에 걸렸거나 좁은 틈에 끼어서 안간힘 쓰는 것에 힘을 얹어주듯이. 그런 마음인 채 입만으로라도 임종경을 외우려니까 심통만 부글거렸다. 누군가에든 들이대려고 어리석은 물음을 꽁꽁 뭉쳤다. 도대체 왜 로사씨가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합니까. 아니, 내가 지금 이렇게 빌어도 되는 겁니까. ‘로사씨 제발 어서 가세요’라고.

예수고상을 외면했다. 거기에 걸고 매달리기엔 내 분노는 너무 무겁고 욕설처럼 질척했다. 그녀의 의식이 간헐적으로 반짝 되살아나는 것도 천연덕스런 노래도 가까스로 빚어내는 미소도 지겨웠다. 둘러앉은 사람들의 마음 안팎이 자꾸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아 시늉으로 가슴을 세 번 쳤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로사씨는 아직 숨쉬고 노래하고 미소지울 수 있으니까, 분명 ‘사는 쪽’에 붙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녀를 ‘지금 돌아가시고 있음’에 가둬놓고, 무의미하고 느린 화면을 되풀이 보듯이 투덜거리고 있는 것이다. 무슨 ‘지금’이 이렇게 길어. 죽는 순간이 너무 느슨해. 도대체 당신을 족쇄채우고 있는 게 뭐야. 그것이 만약 당신의 생에서 가장 아팠던 어느 마디라면, 그럴수록 당신은 끝내 침묵하고 가야 돼. 나는 괜히 그녀가 헐하게 한을 털어 보일까 봐 조바심쳤다.

나는 입술을 열려고 애썼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 리, 아, 여… 그러나 곧 염송을 그쳤다. 로사씨가 내 기도의 무게를 달아 볼 것이 두려웠다. 눈을 감았다. 어쩌면 ‘지금’이란 마지막 때에 일회적으로 가장 길게 참 얼굴을 보여 주는 절대 개념의 시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아마 로사씨는 어떤 강, 누구나 마음대로 건널 수도 없지만 반드시 건너야 하는 그 아득한 수평 앞에서 시간을 잊고 ‘지금’을 누리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로사씨를 깨우고 싶었다. 둘러앉은 이들의 어깨도 세게 흔들고 싶었다. 로사씨, 이제 노래를 그만 부르세요. 제발 미소를 멈추세요. 어서 ‘지금’으로 떠나세요. 테레사의 ‘지금’이 아니고, 당신의 ‘지금’이 아니고, 내가 ‘지금’이라고 안심할 수 있는 거기, 그 성스러운 시간 속으로 들어가세요… 그리고 아, 누구든지 야만스럽게 큰 소리로 울음을 먼저 터뜨리세요.

나는 더 이상 가슴을 치는 시늉을 할 수도 없다.

 

 천료 소감

 

 

그을음

 

오래 된 자기瓷器에는 그 나이만큼의 빙렬이 가 있다. 빙렬은 또 그 나이만큼의 감노름한 그을음을 머금고 마치, 할 말을 참는 모습으로 그윽하다.

내숭이 아니라 나는 진짜 철이 없다. 당연히 버릇없고 나르시스적이어서, 지극히 온건한 이에 의해 일쑤 불온不穩 쪽으로 밀린다.

그러나 나는 내가 편애하는 이 앞에선 아직 오금이 언다. 그의 가느다란 빙렬에 스며 영원히 침묵하고픈 매우 고전적인 순정 때문이다.

여기서 되도록 많은 ‘그’를 만났으면 한다. 이제 좀 기고만장해도 되겠다 싶자, 별걸 다 바라게 됐다. 실은, 바야흐로 핏줄이 팍 터지는 것 같아, 억지로라도 마음 벼리는(鍊) 몸짓을 꾸며 보려 했는데.

 

                                                                                                          이난호

 

현재 청소년 상담원.

수필집 "분홍 양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