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 회 추천-

 송사리의 꿈

                                                                                                      민명자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하월곡동은 지금 성북구의 번화한 도심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사오십 년 전만 해도 논과 밭, 초가가 있는 시골 동네였다. 그리고 지금 동덕여자대학교가 들어 서 있는 자리는 왕족의 것으로 보이는 묘원墓園이 있던 곳이었으며, 그 입구에는 사당祠堂이 있었다. 사당에서부터 석상石床이나 석물石物로 옹위된 무덤이 있는 곳까지는 아주 길고 비탈진 언덕으로, 잔디가 덮여 있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우리 또래들은 그 언덕의 위에서부터 밑에까지 굴러내리며 온몸에 잔디를 묻히고 놀았다. 그리고는 사당 옆 덤불에서 산딸기를 한 움큼씩 따서 입에 털어넣는 것으로 놀이의 갈증을 풀기도 했다.

봄이면 산이나 들로 나물을 뜯으러 다녔고, 여름에 비가 지나간 후면 버섯을 따러 다니기도 했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잠들 때까지 놀이로 날을 보냈다. 그런데 그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마을 앞을 흐르는 개천에서 물고기를 잡는 놀이였다. 남자아이들이 삼태기를 대놓고 쫓겨 내려오는 고기들을 건져냈다. 변변한 투망 하나 없는 고기잡이였다. 그때 많이 잡힌 것이 송사리였는데, 우리들은 큰 고기만 남기고 송사리는 꼭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우리 손에서 빠져 나간 송사리가 떠는 것처럼 몸을 움직이며 수초 사이를 헤집고 들락거리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차츰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우리는 더 이상 고기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 동네로 들어오는 버스의 노선이 많아지게 되었고, 묘원도 헐리기 시작했다. 버스의 노선이 많아지는 만큼 우리의 가슴은 메말라갔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는 몇몇 친구들이 공장의 여공으로 취직을 하거나, 타 처로 이사를 하기도 하면서 우리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내가 송사리의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상하게도 나는 송사리의 꿈을 많이 꾸었는데, 그것은 언제나 떨쳐버리고 싶은 꿈이었다. 꿈속에 나타나는 송사리는 어릴 적 동네 개천에서 수초 사이를 오가며 자유롭게 구름과 놀던, 그런 송사리가 아니었다. 큰 물고기만큼 커지고 싶어서 그 옆으로 바짝 붙어 따라다니며 키 재기를 하다가 그 큰 꼬리에 부딪혀 놀라 자빠지거나, 큰 비늘이 달고 싶어서 무엇인가를 걸쳐 보면 오히려 제 살이 벗겨지는 아픔을 겪는 그런 송사리였다. 또 어떤 때는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는데 갑자기 내가 송사리가 되어 시험지 위에서 허우적대는 꿈을 꾸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미술관에서 본 쟝자크 륄리에의 그림들은 이렇게 지나온 나의 꿈들을 되새기게 하기에 충분했다. 몇 개의 작은 액자가 나란히 걸려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꿈을 묘사한 그림들이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인 방의 한 귀퉁이 침대에서 자고 있는 사람의 꿈이 한 가지씩 표현되어 있었다. 잠을 자는 사람은 자신이 군중 속에 나체로 서 있거나, 또 자신의 머리를 뚫고 식물이 나온다거나, 욕조 안에서 내장內臟의 일부를 내놓고 있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그 그림들을 보면서 사방이 막힌 네모난 벽과 같은 현실에 사는 현대인의 다양한 욕구와 소외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그 그림들은 내가 꾸었던 송사리의 꿈들로 바뀌어 묵은 비밀처럼 감추어져 있던 감성들을 건드리고 지나갔다.

꿈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이 자고 있는 동안에 행해지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하였고, 프로이드는 꿈을 ‘자의식과 무의식의 괴리에서 오는 완전한 심적 현상’으로 보았으며, 하나의 ‘소망 충족’으로 간주했다.

그 동안 내가 꾸었던 꿈들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하여튼 내가 많은 꿈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은 아름답던 유년 시절이 지나고부터였다. 그리고 생존 경쟁에 눈뜨게 되면서부터 내 꿈자리는 더욱 편안하지가 않았다. 현실에서 무엇인가 목표하는 것에 도달하고자 하는 욕구, 내가 가진 것보다 남이 가진 것이 더 크다는 비교의식에서 오는 갈등들이 아마도 나를 꿈속의 송사리로 만들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나는 늘 용문龍門을 뛰어오르는 잉어가 되고 싶었거나, 바다로 나가고 싶은 송사리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송사리의 꿈은 한편으로는 나에게 헛된 욕망의 사다리를 하나씩 접게 하는 발판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송사리의 꿈과 함께 했던 내 삶의 시간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 자체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기와의 치열한 싸움 뒤에 얻은 전리품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뿌리박고 살아가야 할 현실이 비록 박토薄土이거나 늪일지언정 한 마리 용감한 송사리로서 헤엄치며 살아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