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회 추천-

눈길 만들기

                                                                                                 김성아

 저녁 어스름에 눈이 그쳤다.

마당에서 싸리비 소리가 스사락거린다. 귀까지 가려지는 국방색 모자를 쓰고, 아버님이 눈을 치우신다. 마당 가운데 눈더미가 쌓인다.

밥상을 차리던 어머님은 다 저녁에 무슨 비질이냐고 하시고, 아버님은“눈이 얼기 전에 길을 내 놔야 혀어”라고 하신다.

나는 무심히 “아버님 저도 할까요?”라고 한다. 평소에 내가 뭘 하겠다고 하면 “아녀, 됐어어” 하기 때문에 오늘도 그러실 줄 알았다.

그러나 아버님은 싸리비를 내게 주며 대문 밖으로 나가신다. 대문 앞부터 가래로 밀고, 나에게는 그 뒤를 따라오며 비질을 하라신다.

내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한 방향으로만 비질을 하니, 아버님은 비를 달라고 하여 시범을 보이신다. 지그재그로 쓸어 나가면 힘이 반으로 줄어든다고 일러주신다.

그 소리에는 스사락스사락 가벼운 리듬감이 있다. 나도 지그재그로 해 보지만, 쓸려 갔던 눈이 도로 빗자루에 딸려 와 깔끔한 길이 되지 않는다.

그냥 한 방향으로만 비질을 하기로 한다. 갓 시집온 색시의 다듬이질이 절룩거리듯, 어색한 비질 소리.

아버님이 뒤를 돌아보면 얼른 자세를 고쳐서 제대로 하는 척하다가, 다시 앞을 보시면 편한 대로 해 버린다. 길은 대문 앞을 지나 고추밭 사이를 지나고 비닐 하우스로 이어진다.

비질이 힘겹다. 너무 힘을 주어서 싸리비의 잔가지가 부러져 나간다. 싸리 묶음을 동여 맨 나일론 끈마저 풀려 버릴 듯하다. 이러다간 싸리비를 망가뜨리고야 말겠다.

아버님은 마땅치 않아서 자꾸 뒤를 돌아보시고, 그때마다 나는 지그재그로 쓸고…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긴다. 왼쪽으로 갔던 비 끝을 살짝 들어 옮기면, 쓸렸던 눈이 따라오지 않게 되는 것이다. 아하, 이렇게 하면 되는 구나. 힘도 별로 안 들고.

아버님은 허리를 펴서 숨 한 번 길게 쉬고, 뒤로 돌아서서 “옳지 옳지” 하신다. 비닐 하우스 앞에서 돌아 나와 마을로 난 길을 따라간다. 스케치북을 온통 까만 크레파스로 칠해 놓고, 그 위를 펜촉으로 긁어 대듯이 가래 자국 위로 빗살 무늬, 가래 자국 위에 가지런한 빗살 무늬…….

변소 가는 길도 만들고, 방향을 틀어 목장 옆을 지나고 아랫집까지 길을 잇는다.

하얀 눈 위에 외길 한 줄기.

그 마지막에 서서 숨을 고르는 노인의 모습이 평화롭다.

개울 건너 겨울나무 까치집엔 눈이 소복하다. 까치가 날아올라 나뭇가지가 흔들려도 둥지에 쌓인 눈은 흐트러짐이 없다. 건넛집 굴뚝에선 군불 지피는 연기가 힘겹게 새어 나온다.

 

어느 새 어두워졌다. 연기도 굴뚝도 보일 듯 말 듯 가물거린다.

개구멍으로 들락날락하던 백구가 달려나온다. 왕왕거리며 뒹굴면서 싸리비로 만든 길을 헝클어 뜨린다.

아버님이 발을 굴려 으름장을 놓으니, 백구는 움칫 뒤로 물러선다. 부르르 몸서리쳐서 털에 묻은 것을 털어 내고는, 외길 옆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간다. 쌓인 눈에 닿을 듯 말 듯 꼬리를 말아 올리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아버님은 잠깐, 아주 잠깐 동안 마을 쪽을 바라보다가 대문으로 들어가신다. 밤새 눈이 오면 지워질 길을, 날도 저물었는데 왜 만드셨을까.

 

자정이 다 되어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큰아주버니는 제사를 위해 왕정리 눈길 십 여 리를 걸어왔다. 아버님이 만든 길을 밟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