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탑

                                                                                                         이상만

 내 나이 칠순을 맞던 해였었나 보다.

어느 날 자식들이 찾아와 봉투를 내밀면서, 어디 가시고 싶은 곳이 있으면 다녀오십시오 했다. 수선을 떠는 잔치 따위보다는 내 평소 여행을 워낙 선호하는 성향을 익히 알고 있다는 듯.

그래 나는 아프리카며 남미 등 여행지를 고르다가 마침내 인도행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굶주림과 누추의 나라, 그런데도 행복지수 세계 1~2위를 다툰다는 인도라는 나라는 얼마나 흥미로울까.

비록 넝마를 걸치고 살 망정 모든 것을 소유한 듯 유유자적한 마음, 참으로 평화롭다는 지구촌의 이질적 삶의 경이를 경험하고 싶었다.

인도 대륙의 서쪽 데칸 고원, 그 두터운 화산층의 담벽을 쇠망치나 징 따위 단순 기구로 두들겨 굴착한 수십 개의 거대한 석굴 속, 후세 불교 미술의 원류가 된 아름다운 벽화와 승원들.

그 시대 평균 연령이 30세였음에 이어 이어 대를 바쳐 완성까지 무려 1세기의 불가사의한 인간의 정신력에 전율한 엘로라·아잔타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귀국하던 길에 봄베이에서 하루를 머물었다. 영국인이 제일 먼저 상륙했다는 첨단의 해안 도시 봄베이, 그 중에서도 나를 강한 힘으로 이끌어 간 곳은 몇 줄 안내문의 ‘침묵의 탑’이라는 이름이었다.

몇 차례고 묻고 물어서야 겨우 닿은 그곳은, 검푸른 숲이 무성하게 우거지고 바다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하고 있었다. 일반인 접근 금지의 금단의 장소가 아니었던가.

멀리 바라다보이는 것이라고는 돌계단뿐, 웬 독수리 떼만 까맣게 그 하늘을 빠른 몸짓으로 선회하고 있었다.

내가 본 그 계단은 시체를 운구할 때만 오르는, 말하자면 저승으로 가는 길목이라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알고 보니 내 머리 위의 독수리 떼에서 썩은 고기 냄새가 풍겨오는 듯 가슴이 역하게 울렁거렸다.

그 충격적인 풍장에 대한 내용들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나의 발길은 봄베이 박물관을 향해 갔다.

지름 30미터, 높이 20미터나 되는 깔대 모양의 노천극장과 같은 곳, 거기에 옮겨진 시체는 말끔히 씻어 향유를 바른 다음 그 상단에는 남자, 그 하단에는 여자, 그 아래쪽에는 아이들 식으로 몸뚱이를 차례지어 올려놓는다고 했다.

살이랑 바람에 다 삭은 후 걸러진 뼈는 아래로 아래로 굴러 쌓여 소위 백골들이 탑 모양새를 이룬다고 한다. 그렇구나, 바로 이것이 ‘침묵의 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풍습은 불을 숭상하는 고대 페르시아로부터 시작된 배화교도들의 장례법이다.

원래 힌두들의 나라 인도의 관습은 화장이 아니던가. 갠지스 강은 그네들의 대표적 삶의 터전이자 죽음의 길목이라 하겠다. 화장한 잿가루를 물에 띄우는가 하면 그 옆자리에서는 목욕과 빨래를 하며 기도하기도 한다.

내가 봄베이 교외의 한 화장터를 찾아갔을 때, 흐르기는커녕 머무적거리고만 있는, 악취가 코를 찌르는 듯한 개천가에서, 아낙들은 먹거리를 팔고, 그 둑에서는 사람들이 장작개비를 쌓아 불을 지피고 있었다. 무심코 그들 가까이 다가서자, 원 세상에 장작개비 사이로 살덩이가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끔찍한 광경이라니.

우리 나라에서도 최근 많은 납골공원이 생겨나고 있다. 오랜 유교의 전통을 깨고 화장을 장려하고 있는 까닭은 말할 나위 없이 좁은 국토 탓이라 하겠고, 한편으론 자식들에게 매장의 번거로움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게다.

죽어서 몸이 독수리에 찢기든, 불에 지글대며 타버리든, 아무런 감각이 없는 육체 무슨 상관이겠나 하지만, 차마 한평생 소중히 간직해 오던 내 몸을…, 하고 망설여지는 것도 또한 사실이다.

지난 여름 때아니게 선산을 다녀왔다. 그날 따라 가야산 줄기타고 내려온 감천甘川이 사무치게 가슴으로 흘러들고, 세상 모르고 물장구치며 고기잡이하던 그 눈물 없던 유년의 물가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금송리 산마루가 얼마나 따스하고 정겹게 느껴졌는지, 나를 도닥거리며 잠재워주시던 어머니 옆자리에서라면 그때 그 어린 아들인 양 더없이 편안하리라 싶어졌다.

화장인들 매장인들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매한가지일지라도, 내 칠순의 여행지가 하필 죽기 위하여 찾아가기도 한다는 인도였으며, 또한 결과적으로 ‘침묵의 탑’을 겨냥했었으니 아마도 내 무의식이 나를 불러내 죽음의 예행 연습을 시키고 있었음인가.  

 

 

 

이상만

학술원 회원. 서울대 명예교수.

시집 『사바나를 가다』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