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은 서사시지요

                                                                                                        안인찬

 여름마다 집을 떠나 마음에 드는 곳에 한 달씩 둥지를 틀고 지낸 지 어언 6년차. 이제는 장소를 고르는 일, 그곳에서 지내는 일 모두에 이력이 날 만큼 되었다. 방을 구하는 일이야 빈 집이 흔하고, 급하면 우선 여관에라도 들면 되니까 걱정할 것이 없다. 자취하듯 꾸려야 하는 생활이 궁색하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도 피서랍시고 집 나와서 내가 머무는 주변에 하루, 이틀 텐트 치고 복작대는 다른 사람들을 보노라면 오히려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걱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번 갔던 곳에는 아무리 좋아도 다시 가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어쩌다 바닷가만 해마다 찾아가니 갈수록 다음 행선지의 범위가 좁아졌다. 궁리 끝에 신사년의 목적지가 되었던 곳은 남해안. 남해안을 생각한 것은 안 가본 곳이기도 하였지만 다른 이유가 있었다. 몇 년 전 남해안 출신 저명인사가 객지에서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귀향해 살면서 그곳 풍광을 소개한 잡지 기사를 읽고 호기심이 부푼 적이 있었다. 마을이 보이는 고갯마루에서부터 외국인 방문객이 넋을 잃었고, 자기만의 목욕소를 다녀오다가 가끔은 뱀을 만나 대화한다는… 그런 곳이라면 한 번쯤 지나쳐 보기라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금년은 어느 쪽이냐고 아내가 물을 때마다 아무데면 한 달 살 만한 곳 없겠느냐고 겉으로는 큰소리를 쳤다. 그러나 앞장을 서야 하는 처지인지라 내심 쫓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저명인사가 소개한 곳을 마음에 두고 그 고장의 문우에게 그럴듯한 곳을 찾아 달라고 미리 부탁을 하였다.

문우라야 그분으로부터 저서를 기증받은 적이 있어 주소만을 알고 있을 뿐 생면부지의 사이였다. 그런 문우로서는 충청도 사투리의 아닌 밤중 홍두깨 격인 전화에 난감하였을 것이다. 그래도 같은 교직에 종사하고 나이가 같고 또 문우라는 점을 참작하였던 것일까, 연락한 지 10여 일만에 두어 군데 후보지가 있으니 와서 보고 결정하라고 답을 해왔다.

그 정도면 나로서는 만반의 준비가 끝난 일, 자신만만한 기분으로 남녘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남해안에 이르자 문우가 앞장을 서고 굽이굽이 100여 리를 돌아 마침내 차를 세운 곳은 30여 호가 사이좋게 어우러져 있고, 마을 앞 바다에 양식장이 들판의 논밭처럼 펼쳐져 있는 조용한 어촌이었다. 그 마을 어귀에 어쩌다 갈 길 저문 손님이 들 만한 여관이 있었고, 문우는 그 집을 마음에 두었던 모양이었다. 전망도 그만하면 빼어난 편이고 시설도 그 정도는 되어야 한 달을 머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설명이었다.

찾아오기 전에 이미 여관 주인아주머니와 몇 차례 의견 교환이 있었던 터, 문우는 한푼이라도 방세를 낮추어 보려고 흥정을 열심히 하였다. 문우의 마음이 고맙기도 하고 달려온 노독으로 피곤하기도 하여 우리 부부는 나서지를 않았지만 그곳에 둥지를 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지나는 길에 하루, 이틀을 묵는 것이라면 그곳도 조용하고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러나 떠돌이 생활일 망정 한껏 눈이 높아진 우리로서는 고작 북통만한 여관방에서 한여름을 지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초기에는 그만 못한 방에서 지낸 일도 물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경험과 요령이 없을 때의 일이고 찾아보면 생각잖게 알찬 화수분을 만날 수 있음을 알고 나서는 안목이 달라졌다. 바로 지난해 동해안에서의 생활이 그런 것이었다. 50평 가까운 시설을 남해안의 여관 아주머니가 방 한 칸 값으로 달라는 액수의 반 값으로 별장 주인 부럽지않게 지낸 기억이 생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머무를 집보다도 주변의 풍광이었다. 거의 해마다 앞이 탁 트인 바닷가 언덕에서 마치 바다 위에 배를 띄워놓고 사는 기분으로 여름을 지냈는데 섬이 많은 남해안에서는 그런 호사를 누리기가 어려워 보였다.

아내의 표현대로라면 앞에 보이는 것은 바다가 아니었다. 충청도에서 흔히 보는 호수였다. 게다가 눈길이 닿는 곳은 갖가지 양식장으로 뒤덮였으니 시원한 파도 소리 한 번 듣기도 어려울 일이었다. 아내의 속내를 훤히 짐작하는 나로서는 잘못 왔구나 싶은 생각뿐이었다.

아무려나 직장 일도 바쁠 문우를 우선 돌려보내고 주변의 사정을 더 자세히 알아보러 나섰다. 그 첫 행보가 예의 잡지에서 읽은 명사의 거처를 수소문하는 것이었다. 지나는 이에게 물으니 바로 그곳이 명사가 사는 마을. 가리켜 주는 대로 2층집을 찾아가니 주인어른이 마침 계셨다.

희귀한 나무와 화초들이 잘 어우러진 정원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대접받자 비로소 별천지에 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해거름이 되면서 새들의 울음소리가 수선거리는 운치까지 곁들여 이런 집에서라면 며칠 묵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가한 욕심은 오래 가질 못하였다. 주인이 킬러 통을 들고 연신 방어를 해도 그곳의 터줏대감 모기들이 우리 같은 뜨내기를 그대로 두지 않았다. 견디다 못해 주인을 따라 정원 구경을 나서는데 어느 모퉁이를 돌다보니 담벼락에 뱀 껍질이 허옇게 말라붙어 있었다. 집주인은 뱀 껍질 앞에서 신바람이 났다. 저런 것들과도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산다는 자랑이었다. 나야 둠벙에서 뱀과 함께 미역을 감으며 자란 사람이니까 까짓 담벼락의 뱀 껍질쯤 대수로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바퀴벌레의 뒷다리만 보아도 온 식구를 불러모으는 아내로서는 오금이 저릴 일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내가 엉뚱한 말로 주인을 가라앉혔다.

“동해안은 사방이 탁 트여서 시원한데 남해안에는 섬들이 많아 답답하네요.”

그 말을 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주인도 그런 것은 익히 알고 있는지라 다음 답이 명쾌하였다.

“동해안이 서정시라면 남해안은 서사시지요.”

사실 그 말이 우리에게 쉬운 것은 아니었다 서정시와 서사시가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는 얼른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말이 어려운 듯 우리가 잠시 멀뚱거리자 주인이 좀 쉬운 말로 다음을 이었다.

“소득 1만 불 수준의 사람들은 도시의 아파트 생활을 좋아하지만, 2만 불 수준의 사람들은 이런 자연 속의 생활을 좋아하게 되지요.”

옳거니 찾아온 곳이 작년과 다르다 하여 당황할 것도 아내에게 미안할 것도 없는 것이었다. 어찌 서정시만 시라고 찾아 나설 것인가.

“여긴 서사시가 있어요. 당신 몇만 불 수준의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짚어 보구려.”

이 정도의 말이면 한 달간 불편을 참아 내고 지난날과 비교하여 구시렁대는 것을 달래는 데는 충분할 것이라 싶었던 것이다.

노력 끝에 남해안에서도 동해안의 별장을 그리워하지 않을 만큼 훌륭한 집을 구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눈여겨보니 남해안에는 그곳대로 좋은 것이 얼마든지 있었다. 바다로 드나드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수월하고 산골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는 것이 그 중의 하나였다.

며칠 지내는 동안에 집안에 날아드는 까치 떼 중에 흰 까치가 한 마리 있는 것을 알았다. 그날 이후에는 흰 까치 오는 시각을 기다리는 일이 일과 중의 하나가 되었다. 갈매기 떼가 양식장에서 참선방을 차리어 그들을 흉내내는 것만으로도 하루 일과가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이것저것에 재미가 붙자 날마다 다른 서사시를 읽는 기분이었다. 모르는 사이에 단조로운 서정시 같은 동해안을 까마득히 잊게 되었다.

어찌 서정시만을 시인 줄 알고 서사시를 낯설다 마다 할 것인가? 집을 나선 것은 바로 낯설은 것이 그리워서가 아니었던가 말이다. 오늘은 어제가 아니니 어제와는 다른 것이 오히려 당연할 것이다. 이렇게 마음이 정리되어 돌아올 무렵에는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마음이 설레었다. 오늘은 도대체 무슨 시가 펼쳐지려나 궁금하기도 했고, 극시도 있다던데 하는 야무진 기대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그 버릇이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