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

 

                                                                                             고봉진

 

라흐마니노프(Rakhmaninov)를 오디오로 자주 듣는다. 특히 그의 피아노 협주곡, 그 중에서도 제2번을 듣기 좋아한다. 레퍼토리에 그 곡이 들어 있는 연주회가 있으면 가려고 노력한다. 젊었을 때는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지 않았다. 정작 그의 음악은 별로 들어보지도 않고, 그의 ‘통속성’을 비판한 글들의 영향을 받아, 그저 그를 관념적으로 멀리 했던 것이다. 나는 그때 소설이나 음악 가운데 대중적인 작품에 은근히 이끌리는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했었다.

라흐마니노프는 작곡자이기도 하면서 피아노 연주자이기도 했다. 연주자로서 그는 생전에 ‘비루투오소(virtuoso)’라 불렸던 기교적으로 아주 탁월한 피아니스트였다. 그러나 그의 연주는 자작곡은 물론이고 타인의 곡을 연주할 때도 로맨티시즘이 과잉 표출된 대중 영합적인 연주를 했다고 혹평을 한 사람들이 많았다.

작곡가로서도 같은 시기의 쇤베르크와 같이 ‘아방가르드(avant-garde)’ 적인 새로운 ‘음악 화법’은 탐색조차 하지 않고, 로맨틱한 19세기의 낡은 양식에 안주하여 개인적인 감정과 감상 표현에만 몰두했다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그를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잊혀지게 될 ‘통속적인 작곡가’로 낮게 평가했다.

그러나 그러한 세평과는 상관없이 그는 꾸준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놀라운 것은 1930년대에 청년 시절을 보낸 우리들 아버지 세대들에게도 아주 인기가 있었다는 점이다. 한참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때라 동양, 특히 일본 지배 하에 있던 우리 나라 같은 구석진 지역에서는 그의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작품이 실제로 연주되는 것을 들을 기회조차도 거의 없었다. 라디오 방송도 막 시작된 때라 음악 방송이 그렇게 일반화가 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때의 SP 레코드와 축음기를 통해서 그를 알고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가 스토코프스키(Stokowski)의 지휘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직접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제2번’도 레코드로 나왔었는데 꽤 보급이 되었던 것 같다. 가까운 집안 어른 한 분도 SP로 5장 10면이나 되는 그 앨범을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까지도 애지중지 소장하고 있었다. 이미 LP 시대가 도래한 때였지만, 그분은 멘겔베르그(Mengelberg)가 지휘한 차이코프스키 ‘비창’과 함께 그 곡을 전축으로 조심스럽게 들려주며 최고의 명반이라고 아주 자랑스러워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묘하게도 그때 처음 들었던 그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을 특히 오랫동안 경원해 왔었다. 연주 시간이 평균적으로 35분 정도 되기 때문에, 한 면에 약 25분 정도밖에 녹음이 되지 않는 LP 레코드로는 듣기가 불편했던 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여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그 ‘통속성’이 불만스러웠던 탓이다. 나도 ‘여수旅愁’라는 이름으로 개봉된 ‘September affair’와 우리 나라 제목은 잊었지만, 타이런 파워가 주연한 ‘The Eddy Duchin Story’ 영화를 감격스럽게 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영화에서 감미롭게 열정적으로 흐르는 그 곡에 열광한다는 것은 어쩐지 유치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라흐마니노프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온 것은 1988년 8월에 있었던 일이 계기가 된다. 뉴욕 출장을 갔다가 카네기 홀에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다. 그 날 저녁 레퍼토리에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과 함께 우연히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도 들어 있었다. 소련이 아직 붕괴되기 전이었지만 러시아의 대표적인 지휘자 테미르카노브(Temirkanov)가 지휘를 하고, 미국의 흑백 혼혈 피아니스트 와츠(Watts)가 협연을 했었다. 내 옆 좌석에는 시카고에서 중학교 교사를 한다는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백인 여성이 앉아 있었는데, 그녀는 열렬한 와츠의 팬으로서 그의 연주를 듣기 위해 그 날 낮 비행기를 타고 뉴욕까지 날아왔다고 했다. 그가 연주를 시작하자 그녀는 안절부절 못하며 얼마나 솔직하게 열광을 하는지 음악보다 그녀에게 더 깊은 감동을 받았었다.

그 뒤 나도 모르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른 아티스트들이 연주한 여러 가지 ‘제2번’의 CD를 사서 모으고 자주 듣게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도 함께 모였고, 그 곡을 연주하다가 미치기까지 했다는 헬프갓(Helfgott)을 다룬 영화 ‘샤인(shine)’도 나왔다.

그의 음악을 자주 듣다 보니 그가 20세기 초에 많은 음악가들이 시도한 음악적인 모험을 외면하고, 충실하게 차이코프스키를 계승한 그의 보수성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여겨진다. ‘러시아적 우수’를 담뿍 담고 있는 그의 곡들은 쉽게 사람을 휘어잡는다. 그 ‘통속적’인 매력이 바로 음악적으로도 아주 견실한 불멸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연주하기 어렵거나 재생하기 불편했던 음악을 CD로 쉽게 듣게 된 것이 세계적으로 많은 변화를 초래하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은 ‘경음악’이라는 분류가 사라졌다. 고전 음악이 CF에 자주 사용되고, 어떠한 장중한 곡도 ‘배경 음악’처럼 틀어놓고 즐긴다. 모든 음악이 ‘경음악화’, ‘통속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명곡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에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자주 듣고 사랑하는 소위 ‘통속성’을 지녔느냐 아니냐가 명곡을 가리는 평가 기준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