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를 찾아서

                                                                                                        주연아

 사람과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가는 것이 바로 정신적인 노화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런 뜻에서 정신의 노화가 꽤 진행중인 나에게 아직도 남은 마지막 호기심이 있다면 그것은 아직 겪어 보지 못한 낯선 세계와의 만남이라 하겠다. 책이나 영화를 통한 상상 속의 새로운 만남, 또는 비행기나 배를 타고 가서 직접 겪어 보는 경험은 아직도 가슴을 설레게 한다.

상상 속의 여행이라면 나는 다가올 미래의 세계보다는 사라져간 과거의 세계로 떠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잃어버린 문명의 방문객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직접 여행을 한다면 현란한 기술이 지배하는 최고의 문명국보다는 원시 문명의 자취가 아직도 남아 있는 미개발국을 택하고 싶다. 나는 드넓은 몽골의 초원 위에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말을 달리는 바람의 딸이 되고 싶고, 사라진 영광이 석양 속에 남아 있는 앙코르와트의 장엄한 폐허 속에서 보이지 않는 신에게 겸허한 기도를 올리고 싶다.

너무도 급속한 과학의 발전에 막연한 공포와 함께 반발심을 느끼는 나는 컴퓨터나 핸드폰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미개발국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급변하는 시류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정신의 나사를 힘껏 조였던 나는 그곳에서 비로소 나사를 느슨하게 풀게 된다. 시간마저 느리게 가는 원시의 하늘 아래서 느림의 자유를 맘껏 누리며 나는 시간과 공간의 여행을 함께 즐기는 것이다.

놀랍도록 빠르게 진행되는 디지털의 세계에서 아직도 원시적인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나는 혹시 전생이 고대의 원시인이었는지도 모른다. 앙코르와트를 갔을 때, 그 이국의 산길에서 만났던 산골 소녀도 어쩌면 먼 기억 밖 그 옛날의 내 이웃이나 형제의 환생은 아니었을까.

한때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던 것처럼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오늘, 네티즌들이 헤엄치는 사이버 공간은 인간이 오래 전부터 꿈꾸어 왔던 미래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차별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기막히게 편리한 이 공간은 분명 유토피아의 세계라 할 수도 있을 게다. 하지만 사람들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컴퓨터를 매체로 문자와 부호로만 타인과 접속하고 정보를 취득한다. 인간과 인간의 의사소통과 교감은 오로지 컴퓨터와 통신이라는 매개체에게만 의존하게 되어 가는 건 아닌지. 문명의 발전이 이런 형태로 계속되면 언젠가 우리는 디스토피아의 문을 두드리게 되지는 않을런지…….

미래의 사회를 그리는 데 있어 전체주의의 무서운 폭력을 예견했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은 혹시 오늘날의 사이버 제국을 뜻하는 암호는 아니었을까. 그의 이야기는 공상으로 끝나지 않고 이미 시작된 것이 아닐까. 그 소설에서처럼 개개인의 모든 활동과 정보가 기계로 모니터되고 감시를 당하듯, 인터넷이란 새로운 전체주의적인 권력 아래 우리의 영혼은 통제를 당하는 것 아닐까. 두려운 생각이 꼬리를 문다.

이제 사람들의 관계는 기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맨투맨이나 스킨십, 또는 아이콘택트와 같이 인간성을 공유하며 감정과 이성이 교류되던 사회는 사라져간다. 기계 앞에서 ‘나’라는 존재는 오직 비밀번호의 숫자와 문자로 표기되는 몰개성화의 시대로 전환되는 것이다. 눈과 눈을 마주보며 상대방의 표정과 어투에서 마음을 읽어내던 세상은 증발하고, 단순한 문자로 채팅을 하고 냉랭한 이메일로 따뜻한 마음과 정의 편지를 대신 하게 되지 않았는가.

이렇게 가다가는 얼마 안 가서 여지껏 우리가 알고 살아온 세계는 역사의 뒷편으로 흘러가고, 하나의 개체로 격리된 생소한 세계에서 우리는 하나 하나의 고립된 존재가 될 것 같다. 사람과 사람이 기대어 사람 ‘인人’ 자를 이루던 글자는 해체되고, 우리는 바야흐로 18세기의 산업혁명보다도 훨씬 더 혁신적인 새 혁명의 급류를 타게 될지도 모른다.

문명의 빠른 변화와 편리함에 중독되고 나타나지 않는 신神 대신 드러나는 물신物神을 섬기는 우리들. 하지만 나는 가끔은 느리고 불편한 원시가 그립다. 그리고 다행히도 세상엔 아직도 자연이 훼손당하지 않아 원시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 미개발국들과 신비스런 7대 불가사의한 문명이 남아 있다. 나는 그곳을 가고 싶은 것이다.

원시란 오늘에 비해 결코 열등하지 않으며, 고대의 찬란했던 문명 속엔 영혼에게 안식을 주는 진정한 지혜가 반드시 숨어 있을 것이라 믿는 나에게, 내 호기심 탐험은 그 답을 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