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게임

                                                                                           전계숙

 일요일 저녁 시간, 일을 멈추고 TV 앞으로 다가간다. 마음이 긴박감으로 조여온다. 퀴즈를 풀기 위해 화면 속에 서 있는 출연자의 얼굴과 제한 시간을 알리는 시계의 초침 소리가 초조하고도 숨가쁘다.

피식 웃음이 날 만큼 쉽던 문제는 점점 예측을 불허하는 고난도로 변한다. 분위기는 점입가경. 배가倍加되는 상금의 액수, 팽팽한 분위기가 보는 나의 손바닥에 땀이 고이게 한다.

퀴즈에는 구차한 변명이 필요 없다. 순간적인 실수일지라도 일단 틀리면 두 말 없이 물러서야 한다. 저돌적이고 호기심 많은 사람의 성미에 딱 들어맞는 놀이다.

어릴 적에 나는 스무고개 놀이를 자주 했다. 그러다 지치면 방바닥에 지도책을 펴놓고 지명 찾기를 했다. 이미 그때 장차 다가올 여러 갈래의 삶에 대한 예측을 멋모르고 해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신문이나 책자, 심지어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한 미군 방송의 퀴즈까지 풀어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내 취향을 남편은 한 발 앞선다. 부창부수라 할까.

어찌 보면 사는 게 다 퀴즈 게임인지 모른다. 여러 개의 퀴즈 뚜껑 속엔, 이런저런 종류의 문제가 골고루 숨어 있다. 마치 삶의 복병과도 같다. 풀기 어려운 문제가 있는가 하면, 뜻밖의 보너스가 들어 있기도 하다. 선택에 따라 우리 앞에 펼쳐지는 삶이 달라지듯 말이다.

진학을 앞두거나 배우자를 찾을 때, 집이나 심지어 양말 한 켤레도 퀴즈 문제를 고르듯 하는 게 사람의 심리다. 토너먼트 식의 퀴즈에선 출연자들이 답을 맞추지 못하면 사회자가 임의로 문제를 지적한다. 마치, 선택의 여지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우리의 운명과 같다.

몇 년 전이었던가. 주가가 하늘로 치솟으며 온통 주식 얘기로 들뜨던 때였다. 뻥튀기에 넣은 것처럼 단시간에 돈이 불어났다는 얘기가 무성했다. 난들 그냥 있을소냐, 주식에 대해선 아무 지식도 없는 나도 수중에 있던 돈을 털어 증권사로 향했다. 믿는 건 오로지 퀴즈의 보너스 같은 행운과 고객담당자의 장담이었다. 증권사 직원의 말을 믿고 막 오르기 시작한다는 대형주를 샀다. 돈이라야 몇 푼 되잖아 가진 자가 들으면 사탕 값이나 될 액수지만, 그것은 의지해 마지않던 내 마지막 보루였다. 내가 산 주식은 잘 올라주었다. 곧 몇 배가 되어 아이들 혼수 마련에 빛나는 공을 세우리라.

그러나 그런 나의 바람과 달리 장이 곤두박질을 해 갔다. 주식은 팔리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생각했던 기준을 내려 팔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판 욕망의 구덩이로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갔다. 그때 팔았어야 하는 건데… 절반으로 줄어든 돈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난해한 퀴즈 문제 앞에서 난감해 하는 출연자를 볼 때마다 내 처지를 연상한다. 만일, 은행이라는 퀴즈의 뚜껑을 열었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쯤 승자의 미소를 머금고 있을 것이다. 내 실수가 이런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서지 않고 있다. 누구나 상식처럼 알고 있는 ‘리바이’의 내력이 나의 흥미를 끈다.

1850년의 미국은 가난한 20세의 청년 리바이에게 번듯한 직업을 제공하지 못했다. 궁리 끝에 그는 금광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로 가서 질긴 천으로 천막을 만들었다. 그러나 천막 장사는 잘 되지 않았다. 별다른 일거리를 찾을 수 없었던 그가 남은 천을 보며 고심을 하다, 쉽게 헤어져 골머리를 앓던 광부들의 옷에 착안을 했다.

땅굴을 파는 데 강한 바지가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고, 서부 광산지대를 진원지로 해서 급격한 수요가 이루어졌다. 3년 후엔 ‘리바이 스트라우스 앤 컴퍼니’가 세워졌고, 그는 프랑스에서 수입한 ‘사지 드님’천에 방울뱀이 질색하는 시퍼런 인디언 물감을 들여 본격적인 청바지 제조에 들어갔다. 거기에 조개껍질로 만들어 소비자의 불만을 샀던 단추를 깨어지지 않는 구리로 바꾸어 단 것이 오늘의 철의 장막까지 뚫고 들어간 ‘리바이스’ 청바지의 유래다.

만일 그가 일찍이 다른 직업을 택했다면, 좌절감으로 모든 것을 포기했다면, 푸른 물감과 구리 단추에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면 그의 운명과 함께 오늘날 전 세계 젊은이들의 유행은 전혀 다르게 변해 있을 것이다.

퀴즈 대결에서 간발의 차로 떨어진 출연자가 패자 부활전에서 역전승을 하는 것은 퍽 스릴이 있다. 뜻밖의 승리가 예측 불허의 우리네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아직도 어린아이같이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은 나는, 역전승과 패자 부활전이 있어서 퀴즈 게임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전계숙

경남 출생. <계간 수필>로 등단(99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