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해보기

                                                                                                        박선님

 1. 뒤로 걷기

 

시간은 나를 무한속도로 몰아친다. 허겁지겁 등 떠밀려 위태롭게 치닫다 보니 노랑 신호등 못본 척한 적 수없이 많아, 안전불감증 중증 환자되어 빨간 신호등을 보고도 갈팡질팡 멈춰 서지 못한다.

끼익, 빠아앙 빵,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불협화음 소리 듣고서야 아차 하며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닥쳐올 시간들이 두려워 뒷걸음을 치니 온몸이 균형을 잃고 뒤뚱거린다. 불안한 마음이 자꾸만 나를 잡아 세우려 한다.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내게 말한다.

‘이 바보야, 왜 뒤로 걷는 거야. 뒤에는 눈이 없어 보이지 않잖아. 평소처럼 앞으로 가. 앞으로 가면 빨리 달릴 수도 있어. 뒤에는 장애물이 많아 다쳐.’

이렇게 온갖 핑계와 이유를 만드느라 안간힘을 쓴다. 뒤통수에도 눈이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함과 동시에 어느 새 나는 앞을 보며 뛰고 있다. 하~ 이렇게 편하고 좋은데 왜 불편하고 어렵게 뒤로 걷느냐 하며 자위한다. 앞이 보이니 자신만만하다. 아까보다 훨씬 수월하게 마구 앞으로 치닫는다. 먼데 산이 내가 뛰는 속도만큼 달아난다. 뒷산은 내 등을 떠밀면서 쫓는다. 무게중심이 자꾸만 앞으로 쏠린다. 금방이라도 꼬꾸라질 것 같다. 숨이 몹시 가쁘다. 멈춰야 할 것 같다. 앞으로 가기는 쉽다고 마구 내달린 것이 무리임을 깨닫는다.

다시 뒤로 걸어 본다. 앞에 보이는 산이 나를 따라온다. 뒷산이 내게서 물러나고 있다. 천천히. 이제는 급하지 않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뒤통수에 눈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는다.

 

2. 물구나무 서기

 

오랜 시간이 나를 스쳐갔건만 이렇다 하게 내놓을 만한 것이 별로 없이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몸무게만 불려놓고, 하늘과 땅이라 이름지어 갈라놓은 섭리자의 말씀 좇아 땅만 딛고 사느라 발이 퉁퉁 붓다.

아랫도리가 실해서 험한 세상 살기에 딱 좋다는 엄니의 말만 믿고, 심성 따라 얼굴도 몸매도 고와진다는 울엄니 말만 믿고, 맏며느리 뜻도 모른 철부지 때부터 지금껏 부잣집 맏며느리 감입네 하는 말이 듣기 좋아 살다가, 지상에 난무한 별별 다이어트 한 번 못해 보고 당하는 꼴이 되다. 이제는 날씬한 몸매가 판을 치는 세상이니 틀에 박힌 생각을 어쩔거나 고민한다. 옷에 몸을 맞추라는 시대에, “심성 못된 것은 용서가 되지만 몸매 나쁜 것은 용납이 아니 된다” 하는 말을 수용해야 할까?

엄니가 귀에 못이 박히게 했던 말이 내 머리 속을 어지럽게 한다. 굵은 다리를 감추려고 긴 치마만 입던 고집을 꺾고 어느 날, 짧은 치마를 입고 나섰더니 앞집 새댁이 내 다리를 보고 희고 통통해서 예쁘다는 말을 한다. 이번에도 정말 그런가 하고 또 착각하고 만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나더러 산을 내려갈 때 유리한 다리라고 그러기도 하고, 뿌리 튼튼한 나무 같아 건강하겠다는 말을 종종 한다.

이런저런 말들 사이에서 방심하다 보니 계단 오르기가 숨이 가쁘다. 운동을 해야 한다는 처방전이 내려진다. 물구나무 서기, 틀을 깨는 용기를 가지고 몸무게를 하늘에 실어보기로 하다. 하늘이 땅인 양 땅이 하늘인 양 거꾸로 섰지만 그것은 그리 쉽지 만은 않다.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몸무게만 부풀려놓은 것이 후회 막심하다.

하늘은 하늘이어서 더덕더덕 욕심으로 가득 찬 나를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쓰러지고 일어나고, 덜어내고, 비어내고, 또 떼어내기 연습. 심신이 가벼워지기 전엔 물구나무 서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거꾸로 본 세상, 고정관념 깨고 옳게 본 세상.

하~ 잎이 뿌리가 되고 뿌리가 잎이었구나.

하~ 땅이 하늘이었고 하늘이 땅이었구나.

그런데 나만 그대로네!

 

 

 

박선님

<한국수필>에 ‘고무신 닦기’, ‘싸리비’로 등단(93년).

무등수필 컨문학회 동인. 광주광역시 문인협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