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리金東里의

' 수목송樹木頌'

 

일 시 : 2002년 3월 16일

장 소 :수필문우회 회의실

참석 인원 : 문우회 회원 27명

사 회  : 고봉진

정  리 : 최순희

 

(본문)

 

樹木頌

 

 

돌과 흙과 쇠 같은 따위들은 그 깨임 없는 깊은 잠에 주검처럼 굳어진 자들이라 일깨워 우리와 사귈 수 없고, 鳥獸蟲類들은 生老病死에 사람의 아픈 바를 지니되 그 신령한 바를 갖추지 못하니, 또한 더불어 살기에 나를 기를 것이 없다. 樹木은 이와 달라, 돌·흙·쇠 같이 깨임 없는 잠으로 굳어진 자 아니요, 꽃으로 잎으로 또는 열매로 그 생명의 多樣한 변화가 사람의 얼굴에서처럼 발랄하되, 그 생로병사에 呻昑 없이 의젓함은 조수충류에서 멀다. 깨어 있으되 소란하지 않고, 삶을 누리되 苟且하지 않음이 사람에서는 至人達上의 풍모라고나 할까.

우리가 수목에서 가장 驚歎을 금할 수 없는 것은 그 長壽라 할지니, 느티나무·은행나무·밤나무·녹나무·숙대나무·회나무·편백나무 따위들은 그 수명이 천 년이요, 소나무·잣나무·히말라야시다 하는 松柏의 따위들도 또한 천 년에 이르는 자 많고, 떡갈나무·이깔나무·벚나무·감탕나무 따위들은 그 연연하게 물들어 화사하기 꽃과 같은 잎을 달고도 견디기를 오히려 5백 년에서 지난다.

東洋의 역사 소설인 왻꽤埼쩄에서 보면, 주인공 劉備의 고향은 탁현인데, 그의 집 앞에 천 년 묵은 뽕나무가 누각처럼 펼쳐 서 있었기 때문에 동네 이름을 樓桑村이라 불렀다 하며, 또 다른 주인공의 하나인 曹操의 死期를 재촉한 이야기에도 천 년 넘은 배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면 뽕나무·배나무도 다 각각 천 년의 장수를 누릴 수 있다고 하겠다. 그뿐 아니라 경주 佛國寺의 大雄殿과 求禮 華嚴寺 覺星殿의 어느 기둥들은 각각 천 년된 싸리나무와 박달나무라고 전해지고, 이밖에도 古寺巨刹엔 대개 천 년 넘는 잡목 기둥이 한두 대씩 들어 있다고 그 절의 승려들로부터 자랑하는 말을 듣는다.

이로써 볼진대 천 년을 사는 나무의 이름을 따로 들먹일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수목이 이와같이 사람이나 조수충류에 비겨 그 悠長한 생명을 누림은 뿌리를 깊이 땅속에 묻고, 그 잎새로 직접 태양을 받아마시기 때문이리라. 따라서, 수목은 大地와 태양을 직접 먹이로 삼고 살아가는 有機體인 것이다. 우리가 自然이라고 할 때, 맨 먼저 수목을 머릿속에 그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가 또한 수목에서 그 장수와 더불어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 청춘이라 하겠다. 수목은 어린 거나 늙은 거나 잎을 달고 꽃을 피우는 이상 언제나 청춘이다. 그 잎은 푸르고 그 꽃은 붉다. 붉지 않으면 희거나 누르거나 푸르거나 하더라도 꽃이란 꽃은 다 잎보다도 더 젊고 아름다운 얼굴이다.

이렇게 청청한 잎새와 잎새보다도 더 젊은 꽃을 가진 모든 수목은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과 용기와 위안을 준다.

우리가 고향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의 얼굴이라든가 가까운 肉親의 모습이라 하겠지만, 그것은 때에 따라 바뀌기 마련이다. 어머니나 아버지가 年老해서 세상을 떠나셨다거나 했을 땐 어버이 대신 아내나 또는 다른 형제의 얼굴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어머니를 대신할 숙모나 형제의 얼굴이라도 고향길에 비치는 동안은 좋다. 그러나 형제와 친척들마저 타처로 떠나버렸을 때, 아아, 그때에 고향을 지키는 얼굴은 마을 앞에 서 있는 늙은 포구나무나 마을 뒤에 서 있는 묵은 느티나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예로부터 고향산천이란 말이 있고, 또 사실 산과 내야 나무보다도 더 오래고 더 믿을 만한 고향이기도 하지만, 마을 앞뒤의 늙은 포구나무나 묵은 느티나무 같은 故舊之感은 없다.

우리는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가도 어느 낯선 마을 앞에 늙은 회나무나 느티나무가 몇 그루 멋지게 가지를 벌리고 서 있으면, 덮어놓고 그 동네가 평화스럽고 행복스럽게 보이며, 무언지 깊은 由緖나 전설이라도 깃든 것같이 느껴진다. 만약, 그 나무 곁에 주막이 있다면 곧 뛰어내려 막걸리라도 한 잔 하고 싶은 야릇한 충동이 들기도 한다.

수목은 山野나 벽지에만 흔한 것이 아니라, 도회와 邑市의 거리 거리, 公廳과 旅舍와 민간의 뜨락마다 繁盛하지 않은 데가 없다.

이렇게 현대 같은 문명의 暴威에도 배척받지 않고 都市街와 廳舍, 閭家에 繁榮茂生하여 사람과 더불어 共存交歡함은 수목이 우리에게 정신적인 위안과 그윽한 즐거움과 기쁨과 희망과 이익을 줄지언정, 우리의 짐이 되고 걱정이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라. 수목이 없는 세상에 아름다움이 있겠는가. 수목이 없는 세상에 평화가 있겠는가. 수목이 없는 세상에 기쁨과 위안과 희망이 있겠는가. 수목이 없는 세상에 오히려 행복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수목에서 받는 이 형언할 수 없는 그윽한 기쁨과 즐거움과 위안과 그리고 마음의 안정은 어디서 연유하여 오는 것일까? 그것은 흡사 기독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神에게서 받는 그것과도 같다. 수목은, 아니 자연은, 동양인에게 있어 성격이 다른 神의 이름일지도 모른다.

 

 

 

사회 : 안녕하십니까? <계간 수필> 제28호, 2002년 여름호를 위한 합평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합평 대상 작품은 우리 한국 근대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고 김동리 선생의 ‘수목송樹木頌’입니다. 오늘의 지정 토론자로는 유경환, 최병호, 변해명, 김채은, 이렇게 네 분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 수필집에 수록될 당시의 원고에서 몇 번 수정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토론 작품으로 선정하는데 다소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먼저 이 부분을 정리하고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변해명 : 현재는 7차 교육 과정인데, 이 ‘수목송’은 제5차 교육 과정 당시 중학교 2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입니다. 원문은 65년도에 나온 첫 수필집 『자연과 인간』(국제문화사 간행)에 수록된 이후, 74년과 79년 세 번에 걸쳐 나왔습니다. 금성출판사 판이 원문과 거의 동일한데 반해 어문각 판은 뒷부분이 다소 다릅니다. 오늘 우리가 토론할 작품은 어문각 판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교과서에 실린 문장과 동일합니다.

유경환 :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재판再版 삼간三刊인데, 초판에도 김동리 선생의 서문이 있고, 개정판마다 작가가 직접 서문을 썼습니다. 65년도 판에서 그는 시·소설·수필을 모두 합하여 총 400여 편을 썼으며, 그 중 수필이 가장 많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만약 수필집을 냈다면 상당히 여러 권 냈을 텐데, 아무도 김동리를 수필가로 생각하지 않으며 한국 문단에서 대표적 지위를 누린 소설가로 인정하는 거지요.

박재식 : ‘수목송’은 1955년 편찬된 『문장보감』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65년에 출판된 수필집에 처음 발표된 작품은 아닌 듯합니다.

유경환 : ‘무녀도’, ‘등신불’, ‘사반의 십자가’ 같은 세 대표작들과 오늘 합평할 수필은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저는 이 소설들의 기반이 되는 김동리의 철학과 사상이 ‘수목송’ 이 한 편에 다 함축되어 있다고 봅니다. 문예사전에는 1913년 생으로 되어 있으나, 작가 자신에 따르면 그는 1911년 생입니다. 그의 정서 체계가 형성된 기간은 무속·토착·토속이 아주 강한 영향을 끼친 시기가 되는 것이지요. 그의 공식 학력은 대구 계성고등보통학교를 2년 중퇴하고, 서울로 올라와 경신중학을 다니다가 중퇴한 것으로 끝납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에서 학문의 지식 체계를 구축했을까요? 그의 백부는 민족주의자이며 한학자이던 김범부였습니다. 그런 집안에서 태어나 한학을 공부했으니까, 그는 1910년 이후 일본을 통해 우리 나라에 유입된 서구 사상과 문물을 조금 흡수한 정도였지 체계적으로 수용한 것은 못 되는 것이지요. 이런 기반 위에서 흡수한 서구 사상·문물, 그리고 기존의 한국 토속적·무속적인 것의 만남이 갈등을 낳게 되고, 거기 적응·조화하려는 과정은 소박하게 그의 대표작들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라고 봅니다.

서구 기독교의 신은 불가시적인 신입니다. 그런데 그는 수목과 자연을 동일시했고, 이는 가시적인 것입니다. 사람보다 훨씬 오래 사는 수목 또는 자연은 첫째 우리에게 그윽한 기쁨을 주고, 둘째 위안을 주며, 셋째 마음의 안정을 준다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 기능이 충분히 신적인 역할과 작용을 한다고 본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는 전통적·토착적·토속적인 것을 옹호하면서, 서구 사상을 간접적·상대적으로 비판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사회 : 말씀하신 것처럼 김동리 선생은 공식 교육은 얼마 받지 못했으나,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우뚝 서 있는 분입니다. 특히 해방 후 좌익 진영과의 이론 싸움에서 민족 진영의 대표자로 크게 활약을 하신 분입니다.

‘송頌’은 예찬의 글이고, 따라서 ‘수목송’은 수목에 대한 예찬의 글이 되겠습니다. 이 글의 핵심 주제를 어떻게 보면 좋을지 네 분 지정 토론자께 각각 한 말씀씩 부탁드립니다.

유경환 : 마을마다 당산목이 있지요. 그 당산목을 기복신앙의 대상으로 보면서 빌 수가 있는데, 즉 그 우람하고 거대한 당산목이 충분히 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데 달리 무슨 신이 더 필요한가? 토속의 우리 것만 갖고도 충분하지 않는가? 서양의 신은 간절히 불러야 응답하지만 동양의 신이라 여길 자연이나 수목은 안 불러도 그 눈빛으로 우리를 늘 바라보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왜 또 신이 필요하느냐? 이 작품의 전체 흐름이나 가닥을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최병호 : 학교 다닐 때 김동리 선생에게 직접 배웠는데, 그때마다 “동양의 신은 자연이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수목을 곧 자연으로 보고, 그것이 안겨주는 온갖 아름다움, 즐거움, 평화, 위안을 마치 기독교인들이 신에게 받은 그것처럼 차원을 높이 하여 수목을 예찬, 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 이 글이 아닌가 합니다.

김채은 : 초등학교 때 언니 오빠들 영향으로 ‘무녀도’를 읽었는데, 별로 재미도 없고 이상하고 낯선 작품으로만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 뒤로도 그분의 개인 생활에 대한 일말의 거부감과 문학 재벌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부정적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처음에는 유난스럽달까, 나무에 너무 많은 것을 부여한다는 느낌까지 들었으나, 읽어 가는 동안 역시 문학적으로 인정을 받을 만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차츰 선입견이 깨어져 갔습니다. 주제라기보다는 이런 제 태도의 변화로 말을 대신하겠습니다.

변해명 : 김동리 선생은 소월의 시 ‘산유화’에 대한 해설로도 유명합니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라는 구절에서 ‘저만치’가 무엇인가 하는 청산과의 거리에 대한 해석 말입니다. 그것은 화자가 동경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자연, 즉 신과의 거리’를 뜻한다고 그분은 설명했습니다. 자연은 동양이 갖는 정신 세계의 절대 경지이며, 자연 즉 신과의 거리가 바로 김소월이 읊은 ‘저만치 피어 있네’의 거리라고 얘기했습니다. 그 말씀이 여기 ‘수목송’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수목은 신과도 같은 자연이다, 다시 말하면 수목 = 자연을 대비하는 것이고, 자연은 동양인에게 있어서 신과 같은 존재의 다른 이름이 아니겠느냐, 라고 저는 보았습니다.

 

사회 : 이상으로 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지정 토론자들께서는 이 작품의 구성이나 문체적 특징 등에 대하여 토론해 주시고, 좌중에서도 해당 사항에 대한 견해를 자유롭게 피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변해명 : 예전에도 느꼈었지만 저는 이 작품의 뒷부분이 상당히 섭섭했습니다. 그래서 원본을 자꾸 추적해 보게 된 것인데, 이 결말 부분이야말로 ‘수목송’이란 글을 통해 김동리 선생이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유경환 선생님도 말하셨습니다만, 이분의 대표작 ‘무녀도’는 서구에서 들어온 기독교 사상을 믿는 아들과 토속 신앙을 믿는 어머니와의 갈등을 그린 작품이지요. 이분의 작품 세계는 이런 주제를 중심으로 계속 변주되고 있습니다. ‘수목송’의 맨 끝부분을 보면, ‘기독교를 신봉하는 이들이 신에게서 받는 그것과도 같다. 수목은, 아니 자연은, 동양인에게 있어 성격이 다른 신의 이름일지도 모른다’라고 했지요. 한편, 맨 처음 수필집에 실릴 당시의 원문을 보면 ‘가슴 속의 궁극, 끝내는 돌아갈 고향과 영원한 내일의 여유를 마련케 하나니…’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죽은 뒤까지도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나무라는 것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거지요. 이 수필 속에서 나무는 대지에 뿌리를 내려서 ‘대지와 태양을 직접 먹이로 삼고 살아가는 유기체’로 나옵니다.

동양의 나무란 바로 신의 통로로서, 김동리 선생은 두 개의 종교라든가, 문화적 충돌 혹은 갈등 같은 것을 자연 = 수목의 하나로 통일시켜 바라보지 않았는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 수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결말 부분이 바뀌어 있다는 점에 대해 저는 불만을 느끼게 됩니다.

 

사회 : 두 가지 이본異本이 있는 관계로 이야기가 그쪽으로 자꾸 흘러가는데, 일단 오늘 합평의 대상이 된 텍스트에 준해 토론하기로 하지요.

유경환 : 김동리 선생이 한국 문단에서 높은 위상을 누린 이유를 이 작품을 읽으면서 두 가지로 짚어보았습니다. 첫째는 ‘등신불’, ‘무녀도’, ‘사반의 십자가’ 등 대표작들이 모두 외부 세력과 우리가 지니던 토착 세력의 만남과의 갈등을 작품으로 형상화한 첫 시도라는 점입니다. 1900년대 우리 사회의 갈등을 작품으로 형상화해 낸 인물로서 당연히 누릴 수 있었던 지위가 아니었는가 하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카프가 해체되고 난 뒤에 그때 현대 문학의 좌우익 투쟁에서 작품과 이론을 통해 우익의 기수이자 좌파를 제압한 인물로서 당연히 누릴 위상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 보니 그의 작품의 바탕이 되는 사상과 사유 세계의 하부 구조가 참으로 단순 소박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제 시각에 ‘수목송’이 상당한 역할을 하는 게 사실입니다.

최병호 : ‘수목송’은 소설의 플롯처럼 단락을 짓고 작은 항목을 설정하여 상세히 설명·묘사하고 있습니다. 1, 2단락은 한문 번역투 인상을 주는데 반해, 9, 10단락에서 고향을 연상시키는 어머니, 또 늙은 느티나무 부분은 말하는 듯한 문장입니다. 즉 상반부와 하반부의 문장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이지요. 무리한 논리 전개 또한 예찬의 글 또는 송頌이 갖는 편협성을 느끼게 하는 글입니다.

 

사회 : 송頌은 원래는 무용·춤이 곁들인 노래를 의미하는데, 주례사에서 좋은 얘기만 하듯이 과장법이 있겠지요.

김채은 : 처음에 이 작품이 뻑뻑하고 재미없게 여겨졌는데, 그 이유로는 음식으로 말하자면 전체  요리의 향신료가 너무 강한 경우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두의 표현이 너무 강하고 비논리적이어서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처럼’이란 표현 또한 생각을 한정시키는 느낌을 주고, ‘내가’가 아니라 ‘우리가’라는 말로써 독자를 몰고 가는 것이 글쓴이가 매우 권위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유경환 : 문장이나 문체에 있어서는 그가 쓴 수필집의 서문 내용과 일맥 상통합니다. ‘수필 문학은 본디 그 양식상의 특질로서 사색적인 기능에 있어 철학과도 통한다’라고 했거든요. 구성 면에 있어서는 이 글의 8할이 수목은 곧 자연이고, 자연은 곧 동양의 신적 증거다 하는 정의를 유도하기 위한 서술이지, 특별히 구성이랄 만한 게 없다고 봅니다.

흥미로운 것은, 저는 이 수필을 통해 이분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김동리는 1935년 ‘화랑의 후예’란 단편소설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게 되는데, 주인공 ‘내’가 세태의 변화를 깨닫지 못 한 채 조선시대 사고방식을 가진 시대의 낙오자 황진사를 만나 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한탄하는 얘기거든요.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일세를 당당하게 살았지만, 사후의 뒷모습은 그의 데뷔작 속에 등장하는 황진사의 모습을 어찌 이리도 연상시키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 : 이 글은 교과서에도 실렸고 대표적인 서정수필의 하나로 손꼽히는 매우 유명한 글입니다. 그러나 저 역시 좀 지루하고 재미가 없고, 나무의 수명에 대한 언급도 신빙성이 적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반면교사 기능은 있었고, 취할 점도 없지 않았습니다. 좌중에서도 기탄 없는 의견 개진을 부탁드립니다.

김종완 : 저는 평소에 소설가나 시인이 수필 좀 안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편입니다.(웃음) 이 작품은 김동리란 이름 때문에 읽어주는 수필이지, 한 편의 수필로 놓고 봤을 때 제멋대로의 글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수필을 쓰는 이들이 좋은 수필들을 놔두고 그 이름 때문에 굳이 다른 장르 작가들의 수필답지도 않은 수필을 텍스트로 공부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나온 반면교사라는 말과 통하는 얘기겠지요.

박재식 : 나무의 덕목을 주제로 한 국내 수필로서 널리 알려진 작품으론 이 ‘수목송’과 이양하 선생의 ‘나무’가 있습니다. 이양하의 ‘나무’는 나무가 지니는 덕목을 사람의 덕성으로 의인화하여 구어체로 그려낸 글이어서 문맥이나 문의文意에 접하기가 매우 쉬운 작품입니다. 반면, 김동리 선생의 ‘수목송’은 나무가 갖는 특장과 인간에 끼치는 덕목을 작가적인 에스프리에 의해 직접 나무와의 교환을 통해 거기에서 생성되는 감흥을 주조로 형상화한 글이어서, 산문성보다는 시적 효과를 노린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문장도 운율과 대구법을 중시하는 고전적인 문어체 형식의 글이어서 한 번 읽고는 언뜻 그 실체에 접하기가 탐탁치 못한 작품입니다. 그러나 거듭 음미해 보면 역시 대가의 문장다운 도도한 호흡이 느껴지는 명문입니다. 이런 깔축 없는 명문을 조탁하기 위해 김동리는 아마 단편소설 한 편을 쓰기보다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러나 또 산문으로서는 무리가 엿보이는 흠도 없지 않습니다. 일례를 들면, ‘수목이 없는 세상에 오히려 행복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하는 대문에서 ‘오히려’라는 군더더기를 삽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사회 : 한문 직역체군요.

유경환 : 저는 긍정적 평가도 좀 하고 싶습니다. 1910년대 초의 근대적 사상의 유입 경로는 세 가지로 나눠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양계초를 중심으로 한 언론인들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둘째, 일본을 통해 모더니즘이, 그 다음으로 서양 선교사들을 통한 서양으로부터의 직수입, 이렇게 세 경로를 통해 근대 사조가 들어오게 되는데, 이런 조류의 소용돌이 속에서 당시 식자들 중에는 이러다가 한국이 자기 것을 잃고 표류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때 김동리 선생도 이런 3층 구조의 혼란과 갈등 속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걱정하는 마음에서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김태길 : 마지막 대목이 이 수필의 결론과 주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의 신앙의 대상이 신이라면, 동양인의 신앙의 대상은 자연이고, 자연을 조금 축소하면 산천이며, 산천을 더 구체화하면 수목이다, 이런 구조 말이지요. 동양인의 신앙의 대상은 사실은 천天입니다.

여기서 김동리는 동양인을 대변하는 것처럼 이 글을 썼는데, 엄밀하게 말하면 이는 동양인이 아니라 무속인을 대변하는 글입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아까 사회자가 지적한 것처럼 수목의 수명에 대한 얘기라든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삼국지에 나온 이야기를 인용한다든지 하는 부분들은 객관화가 부족합니다. 굳이 이렇게 하지 않더라도 현대인의 자연과학적인 근거를 들이댈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김종완 : 수목은 수명이 길다, 그 청춘이 아름답다, 또 나무를 보면 정답다, 등등 수목 예찬의 근거로 든 사실들이 너무 평범합니다. 대가의 수필일 때는 더욱 큰 깨달음을 기대하며 읽게 되지 않습니까. 앞서 박재식 선생님은 김동리 선생이 이 글을 단편소설보다 더 힘들여 썼을 거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보기엔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수필을 만만히 보고 너무 쉽게 쓰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느낍니다.(웃음)

 

사회 :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좋은 수필 중에 의외로 과학자들이나 학문하는 분들이 쓴 것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의 학문과 사유 세계가 농익어 감동을 주는 글들이 태어나는 것이겠지요. 방금 말씀하신 비판에 대해서는 소설가들이 평소 쉽게 글을 잘 쓰니까 논리를 접어두고 쓰는 것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 가령, 수목이 없다고 가정을 한 번 해보라는 대목에선 너무 설득력 없고 가당찮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최병호 : ‘그가 나를 보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존재한다’는 말이 있지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보는 대로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김동리는 수목을 자연의 대변자로 격상시켰는데, 논리적 비약이 심하고 타당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으며, 어떤 거시적인 안목이 부족한 점이 불만스러웠습니다.

이병남 : 나무 이름이 열아홉 개나 나오는데, 제가 처음 듣는 것만도 다섯이나 되었습니다. 그 많은 이름들 중 히말라야시다를 제외한 다른 나무들은 모두 동양 이름이어서, 이 외래종을 꼭 넣어야 했을까 하고 아쉬웠습니다. 또한 ‘수목이 우리의 짐이 되고 걱정이 되는 일은 없기 때문’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저는 당장 묵은 나무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베어낼 수도 없고 말입니다.(웃음)

김병권 : ‘수樹’는 살아 있는 나무를 가리키고, ‘목木’은 죽은 나무를 가리킵니다. 살아 있는 나무에 대한 찬가 위에, 나무는 죽어서도 우리 인류에 공헌을 한다는 생각을 곁들였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응백 : 작품을 논할 때, 너무 논리적·철학적으로 따지기보다 이 글에서 취할 게 무엇인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정진권 : 이 글의 결론, 즉 주제는 서양 사람들이 신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반해, 동양에서는 자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지요. 동양의 자연이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는 은혜, 즉 기쁨과 즐거움이 마치 서양에서 신이 기독교인들에게 베풀어주는 은혜와 같다는 말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본문 중에 어떨 때 그런 기쁨을 주는가 하는 얘기가 좀더 나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지금까지 주제와 구성, 문장 표현 등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이쯤에서 마무리를 해 가면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엄정식 : 문장은 곧 그 사람이다, 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처음엔 대가로서는 의외로 세련되지 않은 글로 여겨지며 잘 읽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왜 인구에 회자되나 하고 다시 읽어보자 상당한 감동이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도 기독교와 범신론적 사상의 갈등은 많이 있습니다.

동양적인 사상에도 상당히 인격적인 천天 사상이 들어가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 글의 귀결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수목은 아니 자연은 동양인에게 있어 성격이 다른 신의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한 부분도, 글은 글로서만 봐야지 무속에 대한 관심 과다는 오히려 이 글에 대한 누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김채은 : 오늘 합평을 위해 김동리 선생의 수필을 40여 편 읽었는데, 그 모두가 결국엔 이 ‘수목송’을 쓰기 위한 것이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동양인에게 있어서 자연은 곧 신이다’ 혹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녹음 바라보기가 취미다’라는 얘기들이 청년 시절부터 자연과 수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었고, 제 개인적으로는 소설로 인한 부정적 인상이 수필을 읽고 난 뒤 수정된 점이 큰 소득이라 하겠습니다.

김태길 : 지정 토론자들의 노력에 각별히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모두들 말을 잘 하시고 정반대 되는 견해도 많이 나왔는데, 옳지 않은 의견을 가려내는 눈도 필요하리라고 봅니다.

 

사회 : 오늘의 합평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수목송’의 바탕을 이루는 사상은 수목 = 자연 = 신이라는 것이며, 구성과 문장은 다소 엉성하고 논리의 모순과 비약이 있긴 하나 곱씹어 읽을수록 역시 대가다운 풍모가 엿보인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교과서에 실려 줄곧 좋은 수필로 인정받던 이 작품도 오늘날의 비평적 관점에서 볼 때엔 아쉬운 점이 많긴 하나, 그 수필 세계와 소설 세계를 평생에 걸쳐 일관되게 관통한 김동리 선생의 중심 사상 및 문학관이 이 한 편의 수필 속에 어떻게 담겨 있는가 고찰해 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으로 합평회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