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벌의 삶

                                                                                           李應百

 1952년 무렵이었는가 보다. 부산 보수寶水공원 모 천막 학교에 근무할 때, 어느 날 골상骨相을 본다는 이가 교무실에 찾아왔다. 골상이라니, 나도 호기심에서 보게 됐다. 머리통을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두 가지 이야기를 해주었다. 첫째는 곳간에 든 쥐 형국이니, 한평생 먹을 것 걱정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몇 살까지 살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 뒤로 넉넉지는 못하나마 그런대로 끼니 걱정은 없었으니, 그의 말이 맞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몇 살까지 살겠다는 데 대해서는 미처 그 나이에 도달하지 않았을 때는 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가끔 그 이야기가 나오면 그 당시 평균 연령보다 훨씬 높게 불렀으니, 그때로 환산換算하면 그것에 많이 보태야 할 것이라고 웃어 넘기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이 바로 그가 말한 그 나이의 해다. 평소에 뇌리腦裏에 넣어 특별히 괘념掛念하지도 않고, 더구나 우리네 풍속으론 사주니 관상은 다 음력으로 보는 것이므로 양력은 생각의 대상이 아니건만, 연말이 되니까 다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정해진 수명壽命은 건강과는 관계가 없음을 익히 보아 왔기에 말이다. 그러나 올 1월 1일도 평소처럼 맞춰놓은 자명종自鳴鐘이 어김없이 울려 벌떡 일어났다. 살아 있었구나. 그런데 그 순간, 이건 양력이니 별것 아니라고 종을 달아 보기도 했다.

 

느긋하게 살아도 누가 무어라 간섭 않을 것인데, 자타自他의 계획의 틀 안에서 스스로를 닦달질하는 것이 어쭙지않게 여겨지면서도, 그것이 인생이라 생각해 본다.

93년에 집사람이 내 곁을 먼저 떠난 뒤, 달리 미룰 데 없는 외아들이 손자 둘을 두어, 다섯 식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 94년에 아들 내외가 제 자식들 교육을 위해 강남의 아파트로 이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나는 공기 맑고 산과 숲이 좋아 1주일에 한두 번 승가사僧伽寺에 올라 약수를 길어다 먹는 것이 좋고 해서, 20년 살아온 세검정洗劍亭을 종착지로 삼으려 했었다. 그러나 아들애 보고 “네 모母가 너를 위해 두 번 집을 옮겼는데, 너희들이 자식을 위해 옮겨야 하겠다는 의견에 따르겠다” 하고 이리로 이사를 왔던 것이다.

단독 주택에서 화초며 정원수庭園樹를 가꾸며, 때로는 지붕이며 담도 고치면서 살았었는데, 아파트는 마치 닭장 속에서 자연과는 인연이 멀게 사는 것이 싫었다. 그러나 마음놓고 집을 비우고, 아무 때 드나들어도 자유로운 것이 무엇보다 괜찮다.

사람이 오래 살 욕심慾心보다 사는 날까지는 건강하여 애들에게 폐 끼치지 않는 것이 소원이라, 집사람은 생시生時에 우리 둘 중 혼자 남게 되면 애들 신세지지 말자 했는데, 제 모가 타계他界하자 저희들 아파트는 세를 놓고 붙박이로 이사까지 하는데야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비교적 아픈 데 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99년 2월 하순, 삼키지 못하는 병으로 병원 신세를 질 때 아들 내외의 고생이 미안스러웠다. 그 후로 다행히 건강을 되찾아 지하철의 계단을 운동 틀삼고 전철로 30분 걸리는 연구소에 나가서 숨을 쉬는 한, 한자漢字 교육 부활 글과 수필, 시조도 짓고 논어論語 강의도 하며 사람도 만나는 것을 일과로 삼고 있다.

아침이면 5시 반에 맞춰놓은 기상 벨로 반사적으로 일어나, 소피所避 보고 부처님 사진에 20배 한 다음, 양 발바닥의 용천湧泉을 동시에 20번 두드리고, 양쪽 복숭아뼈 위쪽을 20번씩 주무른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 청매실 농충액濃縮液을 컵 밑둘레에 한 바퀴 돌 정도로 따르고 꿀을 조금 곁들인 뒤, 솔잎가루를 작은 찻숟가락으로 하나 넣고, 주전자에 끓는 물을 반 컵 남짓 따라 대숟가락으로 저어 방에 갖다놓는다. 주먹보다 좀 작은 감자 한 개를 씻어 플라스틱 강판薑板에 갈면서 참선參禪의 경지로 불교 방송의 ‘고승 열전’ 등을 듣는다. 다 갈면 베 보자기로 짜, 전자 렌지로 18초 동안 숨을 죽여 찬찬히 마신 다음, 청매실액을 천천히 마신다.

그리고 세수를 할 때 알루미늄 강판鋼板에 올라서서 발까지 씻고, 죽염 물로 눈을 씻고, 더 진하게 해서 양쪽 콧길도 씻는다.

조반은 걸러도 좋겠지만, 그러다 보면 점심·저녁을 밖에서 들을 때 집에서 한 끼도 안 들게 되는 미안감에서 같이 든다. 조반 뒤에 이를 닦고 죽염竹鹽을 손가락에 묻혀 잇몸 아래위 안팎을 문질러 염기鹽氣가 그대로 입안에 간직되게 한다.

죽염은 내게는 가위 만병통치약이라 할 만하다. 올 연휴 때 약국이 닫혔는데 눈다락지가 나 죽염을 탈지면에 스며 일회용 반창고로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붙였더니 사그라지고, 잇몸이 부으면 역시 죽염 스민 탈지면을 갈아대면 시나브로 가라앉으며, 감기 기운이 있으면 좀 짜게 타서 목 양치를 하면 치료와 예방이 된다. 속이 더부룩할 때 찝찔하게 물에 타 마시면 가라앉는다. 내 조카가 아주 건강한데 속이 거북해 위 내시경을 비쳐보니 위벽이 벌겋게 부었었는데 병원 약을 써도 별 효험이 없었다. 그래 죽염을 물에 타 식간食間에 마시게 했더니, 이삼일 만에 깨끗이 가라앉았다.

나는 감기 예방 방법으로, 잘 때 서류 봉투를 반을 접어 코 위에 얹고 한쪽 끝을 이불 깃으로 고정시킨다. 그렇게 하면 코에서 나온 찬기가 가신 공기가 되돌아 들어가기 때문이다. 자다 보면 봉투지는 다른 데로 달아나 버리지만, 잠이 들 때 그리하면 감기 예방주사를 맞지 않아도 버틸 수 있다.

식후에 아파트 구내를 약 30분 동안 산책한다. 끝 무렵에 내 살구나무의 떡 벌어진 두 가지를 양 손으로 잡고 20번씩 다리 굴신屈伸을 하고, 양쪽 어깨를 20번씩 나뭇가지를 치받쳐 압력을 가한 다음, 허리통을 나뭇가지 아래쪽에 대고 20번 밀친다.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도록 끈 달린 가죽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치고 등뒤로 돌려 멘다.

목욕탕에 들어갈 때 온탕에서 50번까지 수를 세고, 열탕에서는 100번 센 다음 나와서 씻고, 다시 열탕에서 50까지 세다가 나와 머리 감고 마무리한다.

국내 여행을 하면 맑은 공기를 쐐서인지 그 다음 날 거뜬히 연구소에 나가고, 해외 여행 때는 현지 시간에 시계와 머릿속 시간을 맞추어 행동하면, 시차時差 부담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설도 양력, 음력 두 번이 있고, 섣달 그믐도 두 번이다. 평소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음력 섣달 그믐이 내게는 곧 마음이 쓰였다. 골상장이의 예언이 딱 들어맞으면, 다음 날 아침에는 하직下直 상태일 것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를 치르는 수험생이 그 전날 밤에 잠을 설치기 일쑤인데, 나는 평소와 같이 별 신경 안쓰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정월 초하룻날 새벽에 평소平素처럼 눈이 떠지니 새 생명을 얻은 것같이 신비감神秘感을 느꼈다.

99년 입원했을 때 사람들의 해석으로는 저승간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 조건 없이 새 생명을 찾았으니, 앞으로 마음 평온하게 늘 웃음을 띠고 여벌의 삶을 살며, 남에게 폐 안 끼치게 되길 염원念願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