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許世旭

 이맘때 고속도로가 또 열병을 앓는다. 꽃철을 놓칠세라 저마다 들떠서 산다. 먼 데 친구 불러 왁자지껄 꽃을 보고, 청명 성묘 길에 음복 술로 거나하다. 나도 덩달아 잠을 설치고, 5년 전까지만도 내 작은 뜨락에 살던 때가 그립다. 밤중마다 살며시 방문을 열고 혼자 뜨락에 서서 부연 달빛에 시나브로 흩날리는 목련이나 라일락을 아쉬워했던 날이 그립다.

내 고향집 사랑 앞에는 백 년이 훨씬 넘는 회화나무가 여름이면 그 무성한 가지와 잎새가 지붕과 마당은 물론 이웃까지 덮었다. 지금쯤 새 봄이 익을 때면 잿빛 가지에 파룻한 잎눈이 간간 점을 찍고 그 칼칼한 뼈 마디에 자못 매화의 풍모를 보였다.

열일곱 선머슴애에 무슨 시름이랴만 밤잠을 깰 때면 회화나무 신록의 그림자가 섬돌을 지나 마루로 올라와선 지금 막 방마다 두 쪽의 하얀 영창 그 낮은 격자에 발을 딛고 있었다. 아직 상현 달빛인데.

이윽고 회화나무 잔가지가 머리를 추켜세우자 그를 따라 토실토실한 줄기가 엉거주춤 허리를 눕히고 간간이 작은 눈엽들이 이슬인 양 물방울인 양 얼룩지고 있었다. 달빛이 희미할수록 영창마다 가득히 드리운 회화는 먹물을 엷게 바림한 한 폭의 문인화나 다름없었다.

그 아름답던 그림자 때문인지 사람의 그림자를 살핀 적이 있었다. 요즘처럼 바쁘게 퉁탕거리다 보면 자기 그림자 한 번 제대로 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가 형제봉 산보 길에 내 그림자를 일부러 보았다. 때마침 석양 무렵, 왼쪽 잔등에 누운 내 그림자는 꺼벙한 키다리. 눈, 코도 없는 것이 외롭고 낯설었다. 심지어 귀신의 형용으로도 보였다. 내가 앞으로 나서면 아무 말 없이 따라오지만 휘청휘청 금세 찢어질 듯했고, 아예 걸음을 재촉하면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언젠가 인공위성에서 찍었다는 우리 나라 전모를 사진으로 본 일이 있었다. 그것은 삼태기에 담겼던 황갈색의 흙을 한꺼번에 뿌려놓은 모습이기도, 짐승 한 마리가 골짜기를 뛰어갈 때 길가에 살짝 흘린 그림자로도 보였다. 심지어 한 줄기 사나운 바람결로도 보였다. 우리가 국가를 부르면서 무시로 섬겨왔던 무궁화 삼천리 금수강산이 그런 그림자로 보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림자를 한갓 그림자로 보지 않는다. 돌아가신 어른의 사진 모신 곳을 그림자의 집, 곧 영당影堂이나 영전影殿으로 받들었고, 어떤 사물이 뒷날에 끼치는 작용을 그림자 울림, 곧 영향影響이라 했다. 그뿐인가? 우리는 사진 찍기를 그림자 긁어담기, 곧 촬영撮影이라 했고, 중국은 그림자 남기기, 곧 유영留影이라 했다. 그러니까 실체를 기계에 담아서 남기는 일을 촬영이나 유영으로 본 만큼 그 그림자, 곧 사진은 실체의 대신이나 계승쯤으로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진기 앞에선 입술에 침을 바르면서 단정한 용모를 추스르기 마련인데, 사람들은 그 순간을 이 세상에 그림자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햇볕이나 달빛, 심지어 가물가물 호롱불에도 그토록 또렷했던 그림자는 도대체 무엇일까? 그 빛과 함께 씻은 듯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것은 한낱 도깨비인 것이다.

아무렇게나 책갈피에 묻혔던 손때도 누우렇게 한 세상에 남고, 어디서나 따온 봉선화 한 잎을 반달 모양의 손톱에 묶어두면 이튿날 손톱 한 장이 온통 붉은 반지가 되었는 걸. 작은 물방울도 한 곳에 십 년 떨어지면 바위에도 확이 패이고, 청동으로 깎은 조각의 발등도 십 년을 어루만지면 청동으로 얇아지는데 말이다.

나는 때로 귀향길이면 사랑 앞 회화나무 그늘에 서서 그 흙마당을 뚫어지게 응시한 일이 있다. 그 그늘 밑, 그 흙더미에 한평생 들고났던 할아버지 형제분과 아버지의 형제 그리고 우리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 그 크고 작은 발자욱이 찍혀 있으련만 도시 아무런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행여 묻혔세라 땅을 깊이 파보면 땅 속 어드메쯤 잿빛 꼬부라진 모습으로 그림자는 누워 있을까? 옛날 아버님 혼자서 한숨 터질 때마다 쭈그려 앉으셨던 그 툇마루 뾰족한 양지가로 다가서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어머니 서성였던 곳도 눈에 선했다. 한평생 사대 봉사하느라 물 긷던 오동나무 그늘 아래의 그 우물 바닥이나 반생을 두고 집을 나간 자식 기다리느라 울적하면 서 계셨던 동구 밖 징검다리 옆에도 어머니 그 작은 고무신 자국이 찍혀 있으련만, 지금은 우물조차 파랗게 이끼 낀 채 쌩쌩 바람 소리만 남아 있었다.

그림자에도 음양이 있고 기가 있을까? 그렇다면 명승고적의 그것들은 무엇이 달라도 다를 것이다. 서울의 탑골공원 그 육모정 마당이나 경주 불국사의 그 수려한 다보탑 옆으로 그를 우러렀던 수천 수만의 그림자가 천 년 세월에 찍혔을 것이다. 더구나 백 년 동안 우리 겨레의 애환을 나르던 서울역 광장이나 군중의 아픔이 격할 때마다 붉은 머리띠에 주먹이 모여 밤을 새던 명동 성당 그 언덕에도 그림자가 천 겹 만 겹으로 쌓였을 것이다.

그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그 행렬이 흐트러지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썰물이 나간 뒤 하얀 거품 한 개도 남지 않은 하구와 다름없었다.

그래서 어떤 선사는 카메라의 촬영을 한사코 거절하고, 한 가닥 목숨 말고 일기나 간찰 그것마저 깡그리 남기지 않았는지 모른다. 더구나 핏기 없는 그림자를 빌려 무얼 남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것들은 그림자와 소리, 이름과 육체랑 함께 필시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커다란 바윗덩이를 갈고 닦아 거기에다 새긴 그 이의 거룩한 벼슬과 이름 석 자가 마침내 어느 날 바람인 줄을 짐짓 알았던 것이다.

그림자는 아무것으로도 남지 않았다. 정녕 해가 지고 달이 질 때 그림자는 어디에도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