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관광통역안내원 면허증

                                                                                                            황필호

 단기로 쌍팔(4288)년을 살짝 넘긴 4289(1956)년 대학에 입학한 내가 군대를 갔다가 다시 복학해 졸업한 것은 1962년 가을이었다. 전공은 종교학이었으나 그때는 우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아무 곳에나 들어가 보았더니, 그곳이 바로 미군 부대 PX 콘세션에서 보석을 파는 회사였다.

이렇게 내 인생의 첫번째 직장은 영어를 해야 하는 곳이었다. 대학에서 밤낮 영어를 읽고 쓰고 번역하면서도 회화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미군 GI들로부터 당한 말 못할 서러움을 독자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드디어 나는 월급이 나오면 그 날 밤으로 다 써버리는 한심한 GI 두 명과 생활을 같이 하기로 결심했다. 그들과 같이 클럽에 가서 밤새도록 마시고 춤추고 떠들면서 거리의 언어(street language)를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회화 실력이 어느 정도 되자, 나는 역시 PX 콘세션에서 비행기표를 파는 여행사로 자리를 옮겼다. 종이(비행기표) 한 장을 뚝딱 써 주고 70~80달러를 받는 것이 내 스스로도 대견했다. 가 보지도 못했지만 “마이애미에 갔다가 모기 때문에 혼이 났다”고 허풍을 떨면서. 컴퓨터가 없던 당시에는 비행기표의 내용을 직접 기록해야 했던 것이다.

그때 미국으로 휴가를 가거나 제대해서 귀국하는 미국 군인들은 한국부터 미국 서부에 있는 트라비스 공군 기지까지는 공짜 군용기로 가지만, 그곳부터 목적지까지는 유료 민간기를 이용하게 되어 있었다. 당시 서부에서 뉴욕까지의 항공료는, 자리가 있으면 타고 갈 수 있는 스탠드 바이 티켓으로 ─ 나는 지금도 명확히 기억하고 있지만 ─ 일반 여객기의 절반인 72달러 55센트였다.

어느 날 나는 부장님 앞으로 불려가서 1개월 후에 실시될 관광통역안내원 자격시험을 보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시 새로운 법이 통과되어 앞으로는 모든 여행사가 최소한 두 명의 안내원 면허증을 가진 사람을 채용해야 되며, 회사에서 영어를 잘하는 두 사람을 지명했다는 것이다.

1966년 한국 관광통역안내원 면허증 제1회 시험과목은 영어(혹은 일어), 국사, 관광법규 그리고 인터뷰였다. 나는 국사와 관광법규에서 거의 0점을 맞았다. 매일 밤 술 마실 시간도 없는데 언제 공부를 했을 것인가. 그래도 다행히 과락科落이 없어서 겨우 턱걸이로 합격했다.

드디어 면허증을 사용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관광 업무보다는 여행 업무를 주로 하기 때문에 내가 직접 외국인을 안내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데 관광을 주로 하던 회사에 갑자기 결원이 생겨서 이튿날 아침 미국인 관광객 20여 명에게 경복궁을 안내해야 된다는 것이다.

도대체 나는 경복궁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정말 아무것도 없다. 나는 퇴근하자마자 근처에 있는 시립 도서관으로 달려가서 밤 늦도록 베껴서 밤새도록 그것을 암기했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왔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가이드를 맡게 된 황필호입니다. 이 경복궁은……?”

그런데 그 연도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얼른 주머니 속에 있던 종이를 찾아, 보면서 말했다.

박수가 쏟아졌다. 하여간 그때 나는 생전 처음으로 미국인들은 참으로 질문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당시 왕은 몇 명의 후궁을 가지고 있었는가?”

“왕은 그 많은 후궁들을 어떻게 서로 질투하지 않게 했는가?”

“화장실은 어디였는가?”

결국 나는, 이것이 내 생애 첫번째 외국인 안내며, 그러니까 여러분이 좀 잘 이해해 달라고 부탁했다. 쥐구멍이라도 찾는 심정으로.

또 박수가 터졌다. 저들은 내가 실수만 하면 박수를 쳤다.

이제 나는 정확히 1966년 11월 26일자로 된 면허증(제144호)을 자세히 본다. 당시 나의 주소는 서울시 동대문구 용두동으로 되어 있는데, 나는 어느 곳인지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나 면허증의 사진은 나의 늠름한 젊음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나도 저렇게 젊었던 시절이 있었구나. 젊음이란 그 자체로 얼마나 좋은 것인가.

아마도 내가 이 면허증을 다시 사용할 기회는 앞으로 영원히 없을 것이다.

 

 

 

황필호

생활철학연구회 대표. 한국비교철학회 회원.

계간 <어느 철학자의 편지>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