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들

                                                                                                     南基樹

 빛의 느낌 ─ 수정 기둥의 면面

대상과 나 사이에 투명한 면 ─ 일종의 막을 도입했다. 의식이었을 것이다. 일정한 대상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돌면 사물들도 따라서 회전하며 나를 스쳐갔다.

사물마다 표면表面이 보자기처럼 덮여 있었는데 그 위에 시선이 맺히면 표면은 스르르 미끄러져서 벗겨졌다. 어느 때고 내가 돌기를 멈추면 시선은 둘 사이에서 팽팽한 의식의 당김이었다. 나와 사물들은 역의 방향으로 이렇게 서로를 돌았다.

이런 긴장의 중간 위치를 잡는 것, 자신의 중심을 돌면서 그 위치에서 연직鉛直으로 투명한 평면을 세워 나가는 것 ─ 이런 ‘과정’이었다. 수정  같은 면面들이 나를 둘러싸고 까마득한 높이로 뻗어 올라가 있는 현상은 아주 눈부셨다. 사물을 대하는 의식의 긴장이나 시선의 중간 위치에서 연직면을 따는 것 등은 집중과 이완의 쾌감이 따르는 일이다. 상상의 범주 안에서 한껏 찾아볼 수 있는 꿈 속 무대의 원형이라면 불현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빛의 환한 느낌, 그 빛의 기둥들에 빨려들 듯이 노출되어 있는 스스로의 어떤 벗어남은 아니었을까…….

밝음이 우려내는 내면의 드러남 같은 것. 요즈음, 날씨는 계속 풀리고 있고 낮의 길이도 날마다 늘어난다.

 

그림자

한낮이면 빛 가운데에 서 있는 깃대 위의 기폭旗幅이 너풀거리고 하얗게 반사하는 아스팔트 위에 그림자를 던진다. 나부끼는 기폭은 쉼없는 그림자의 윤곽을 긋고 지운다. 평면화한 움직임과 단순화한 색깔은 이미 깃발의 나부낌도 그 광채도 지니지 않는다. 창 밖으로 이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자취 없는 깃발의 떨림이 최면처럼 스며온다. 사물에 대한 의식의 모호한 상태가 바로 저 그림자의 윤곽 같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한 이유

‘그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은 행복한 듯하다. 그렇게 보인다. 그는 지금 몰두하고 있다. 다른 것에서 벗어나 있는 상태 ─ 이는 행복한 상태다.

내부로 들어가는 것, 모든 것을 모아서 안을 비추어 보려는 첫 걸음으로 자기를 향해 들어간다는 것. 그는 필경 벽들을 대면하게 될 것이고, 그 한계를 통감하기에 이를 것이다. 자기의 세계를 헤쳐 보아야만 드러나게 될 그곳에서, 그는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게 되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이다.

그는 이미 그런 상태에 진입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다만 자기에 관한 자신만의 일이며, 이렇게 할 수 있는 동안 그는 행복하다.

 

경보警報

그는 말했다.

“난, 남들이 쓴 소설의 표면을 걷어낸 이면을 써보고 싶어. 말하자면 색이 배제된 흑백 사물처럼. 사진 필름에서도 양화, 음화가 있잖아. 일상의 이면을 노출시켜 놓는 그런 영상 같은 것. 인체의 뼈대처럼 삶의 골격만으로 된 그런 소설 말이야.”

아마 이런 것이 그가 집착하고 있는 면일 것이다. 인간의 눈에 잡혀드는 것이 로봇과 곤충의 눈에 잡혀드는 것과 다르듯이 그도 다른 시각, 다른 시선, 다른 시신경으로 사물을 감지하여 보고 싶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장르의 개념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는 근래에 느끼는 점 몇 가지를 더 털어놓았다.

“같은 사물의 기술이라도 장르가 다르면 다른 면을 드러내어 보여줄 수가 있다. 산문시가 있듯이, 수필을 시로 바꿔서 그 내용을 시수필詩隨筆로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비교는 필요 없으며 자신의 내면을 완벽하게 꿰뚫어볼 수 있으면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다.”

이런 명제들의 꼬리에 붙여 그는 또 주장했다.

“글을 읽을 때 두 눈을 가리는 것을 벗어 던져야 하는데, 아무것이나 주워 걸치다 보면 오히려 그것들이 시선을 차단하고 시야를 가려놓을 수도 있다. 주의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다.”

 

11월 어느 월요일 새벽, 정원

이른 출근길에 밖은 어두웠다. 새벽의 박명薄明이 걷혀서 지금은 환하다. 일곱 시 사십 분, 문 밖 큰길에는 질주하는 차량들의 소음이 점점 높아간다. 발을 위로 당겨놓았다. 나무들은 잎이 많이 져서 정원의 건너편이 다 내다보인다. 그런데도 나무들에게서 앙상하다는 느낌이 아직은 오지 않는다. 가을이 마음에는 깊지 않은 탓일 것이다.

창 밖은 이미 11월도 중순이다. 하늘은 잿빛일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흐릿한 공간이 가느다란 가지들 아래서 짙은 안개에 묻혀 있다. 새벽 습기가 지면 위로, 나무 사이로 흐른다. 바람 한 점 타지 않고 서 있는 나무들. 주위의 모든 것이 어두운 빛깔을 띠고 죽은 듯이 늘어져 있다. 빛도 새벽에는 축축하게 젖어서 무겁다. 다 그런 인상들이다.

동글동글하게 조림된 측백나무와 주목이 칙칙한 단풍나무 잎 사이로 여기저기 서 있다. 잘록잘록하게 다듬어진 나무 모양이 애완용 강아지의 가느다란 다리를 생각나게 한다. 산책 길에서 만나던 애완용 강아지들은, 쥐면 한 줌도 못되어 보이는, 병적으로 빈곤해 보이는 몸집이었다. 요리조리 깎고 조몰락거려 남겨놓은 다리털이 응혈된 혈관이 부푼 것 같기도 했고, 아직 떼어내지 못한 혹처럼 불거져 있는 듯하여 언제나 보기에 흉했다. 끌려나온 미물에 가해진 그 무지한 잔인성은 애완용이라는 의미와 결합되어서 그랬는지 늘 혐오감을 일으켜놓았었다. 다듬어진 정원수를 보는 지금의 마음이 그렇다.

손길이 반들반들하게 난 사물에서 오는 인간의 손질에 대한 혐오감이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무엇이고 만지작거려서 본래의 모습에 껍질을 씌워놓는다. 더께 진 껍질이 사물을 덮어나간다. 그 사물 자체도 그래서 본래의 모습을 잃고 껍질뿐인 덩어리로 변모하여 간다. 허용될 수만 있다면 이러한 인위의 습성들, 손때를 묻히려드는 본성이 미치지 않은 곳으로 가고 싶다. 이제 와서 마음에 드는 곳 한 군데를 지목하고 찾아가 조용히 숨을 쉬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렇게 큰 사치가 될까……. 한낮을 향해 자신을 주장하고 싶은 생각도 이제는 많이 없어졌다.

산 능선 뒤로 빛의 발그레한 기운이 은은하게 배어나고 있다. 실내도 한결 밝게 생기를 찾아간다. 어제 오후에 보낸 팩스의 답신은 아직 오지 않았다. 한나절 정도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어느 하루

밤 ─ 생각들이 미열 같다. 왔다가 사라진다. 유리되어 있다. 자신을 옭는 순간의 의식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때면 어떻게 벗어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로 떠오른다. 더 넓게, 더 깊게, 더 자세하게 보고 싶다. 그럴수록 옭혀드는 것이 또한 한계이다. 그렇다 해도 어느 것과도 자신을 비교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 ─ 흑갈색, 아시아 ─ 황토색, 남북 아메리카 ─ 노란색, 유럽 ─ 초록색, 대양주 ─ 연두색, 남·북의 극권極圈 ─ 흰색. 사람의 수명을 이렇게 색 테이프의 길이로 환산해 본다. 일 년이 1밀리미터인 단위로 17세는 17밀리미터, 92세는 92밀리미터 길이의 테이프 도막이다. 사람마다 하나씩 이 시간의 도막을 기점에 맞춰 나란히 지구 위에 늘어놓는다. 그 다음에 이 테이프 도막 위에 그 사람이 성취한 바를 쌓아올린다. 이렇게 진열하여 나가는 때, 무엇이 높은 봉우리를 이루었다고 여겨질까.

새벽 ─ 전철역 건너편, 아파트 단지의 건축 공사장에는 외장 페인트칠을 기다리는 시멘트 벽들이 어둑하게 펼쳐져 있다. 들판이었던 공간이 머지않아 소란스런 움직임으로 가득 찰 것이다. 이태 전에 걸어놓은 분양 현수막이 지금도 지전紙錢처럼 너풀거린다. 사방에 널려 있는 집들이 붙박이 생각을 심어왔다. 지금도 돌고 있는 지구 위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기형의 붙박이 다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아침 ─ 전동차 안. 창 밖의 전주들이 쏜살같이 지나간다. 마주 달려와 소리처럼 스쳐가는 전동차 창들이 얼룩덜룩 나타났다 사라진다. 동살이 잡히고 아침 햇살이 차창으로 들어와 공책 위에 엷은 감빛으로 물든다. 의자 밑 히터의 따스한 기운이 무릎 아래에 포근하게 고인다. 봄, 4월이지만 이른 아침은 쌀쌀하다. 그러나 정신에게는 건강한 발아의 한때이다.

정오 ─ 뒷산을 산책한다. 햇빛이 환하고 바람이 세차다. 아직은 잎이 돋아나지 않아 숲길은 바닥까지 빛이 쏟아져 내린다. 군데군데 봄꽃들이 파리하게 문득 문득 서 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봄 들판은 작은 움직임들로 아련하다. 돌아오는 길은 맞바람을 안아야 한다. 계속해서 눈물이 흐른다. 안경이 바람막이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다.

오후 ─ 송강 휴게소를 지난다. 벚꽃나무가 여기저기에 부푼 솜사탕을 꽂아 놓은 것 같다. 산에는 잎눈이 트여 갈색에 섞이고, 온 산이 연푸르게 떠오르고 있다. 가물어서 내에는 물줄기가 말랐다. 보리밭이 파랗고 마늘밭에는 마늘 싹이 총총하다. 창 밖으로 흐르는 색채와 현상들… 저녁 노을이 산 능선을 따라 곧 붉게 펼쳐질 것이다.

내일 ─ 빛 아래에 경계를 짓는 논둑, 밭이랑이 연녹색 가운데로 묻히고 경계를 푸는 날이 올 것이다. 아직은 보습 아래 뒤집힌 흙덩이가 메마른 갈색일 뿐이지만, 들은 물기와 움직임으로 가득 찰 것이다. 곧 그러한 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