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이 모녀

                                                                                                    구양근

 나는 여대 1학년 전공 과목을 맡고 있다. 덕분에 막 들어온 꿈 많은 신입생들을 상대로 예의 나의 열변을 펼 수 있다. 사십 년 전의 자신의 모습을 그리며……. 학생들은 무척 감격하는 눈치이다. 또 나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내 연구실을 한 번 들를 것을 빠뜨리지 않는다.

“내 연구실은 항상 열려 있다. 일 년 강의가 다 끝날 때까지 내 연구실에 와서 차茶를 한 잔 같이 마시지 않는 학생은 학점 주기가 곤란하다”라는 선의의 으름장까지 놓는다.

학생들은 웃음꽃이 피고 무척 좋아하는 눈치이다. 그러나 좀처럼 용기를 내서 연구실에 들르지는 않는다.

그런데 어느 날, 무척 한가한 오후에 어느 학생이 혼자 연구실을 찾아왔다. 그리고는 다방면의 인생 면담을 했다. 그 학생은 피부가 흑진주같이 고운 이국적인 학생이었다.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그의 가정 사정을 대충 알게 되었다.

정은이는 자기 어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아버지는 한 번도 뵌 적이 없지만 대만臺灣 어느 선박회사의 선장이라고만 했다. 그리고 대만의 아버지와는 세 살까지 살았고, 그때 소꿉장난하던 대만의 골목이 꿈인지 생시인지 어렴풋이 기억난다고 했다.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정은이는 그 인연과 그 아버지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으로 중문과를 택한 것이었다.

정은이는 그 뒤로도 심심찮게 내 연구실을 들려 이것저것 여러 가지 상담하기를 좋아했다. 정은이는 학교 근방으로 이사와서 어머니와 셋방살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르바이트로 동사무소에서 호적 정리를 도와주는 일을 한단다. 그러던 어느 날 정은이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 정은이 엄만데요. 교수님을 한 번 뵈려가도 될까요?”

너무나 의외였으나 마치 잘 아는 사람에게 전화하는 것처럼 걸려온 전화를 나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연구실에 들른 정은이 어머니는 듣던 대로 첫눈에도 화가의 모습이었다. 정은이 어머니는 마치 나에게 자기의 과거를 모두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의무라도 있는 양 모든 것을 털어놨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가 지난 어느 날, 또 정은이 어머니한테서 연구실에 들려도 되느냐고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자기와 정식 결혼까지 한 그 대만 선장을 찾을 길이 없겠느냐고 진지한 상담을 한다. 나는 그 자리에서 평소부터 잘 아는 대만 문화참사처의 한 외교관에게 전화를 걸어 자세한 다리를 놓아주었다.

자기 아버지의 거처를 알아낸 정은이는, 한국말을 한 마디도 모르는 아버지를 찾으러 대만으로 날아갔다.

돌아온 정은이는 대만에서 지낸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상당히 실망을 했다는 얘기며, 그러나 비록 외국인이지만 처음으로 아버지와 자기 피붙이들을 만난 감격을 모두 털어놨다.

“거 봐라. 내가 뭐랬어? 만나 보면 실망만 할 거라고 했잖아.”

“저도 각오는 했어요. 그러나 일단 만나 보고 나니 한은 풀었네요.”

드디어 정은이의 졸업식 날이 되었다. 졸업식 날이라고 하지만 요새는 시대가 변하여 학생들이 교수실에 들르지도 않고 모두 운동장에서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그러나 행여나 누구라도 찾아올지 몰라서 온종일 연구실에서 책을 보고 있었다. 느지막하게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정은이였다. 모처럼 정장을 하고, 가운을 손에 들고 백설처럼 하얀 머플러를 목에 두른 정은이는 이제 완연한 성인이었다. 나는 반갑게 맞아주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격려를 다 해주었다.

정은이는 연구실을 나간 지 십 여 분 후에 다시 교문 밖에서 전화를 했다.

“교수님! 오늘은 이 말씀은 꼭 드리려고 했는데 못하고 나오고 말았네요. 지금이라도 말할래요. ‘저는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여대에 왔나봐요’ …….”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늦게까지 잡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정은이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잠깐 연구실에 들려도 되느냐고.

이번에는 20년 전 자기 친구를 찾고 싶다는 상담이었다. 그 친구와 해수욕장을 다닌 기억, 둘이서 캔버스를 메고 그림을 그리려 산천을 헤매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그런데 누구한텐가 들으니 그가 대학교수가 되었다고 하더란다.

대학교수라면 찾기가 뭐가 그리 힘들겠는가, 인터넷만 들어가도 나올 텐데, 했더니 집에 컴퓨터가 없다고 한다. 나는 즉시 컴퓨터를 키려 책상 앞으로 갔다. 이 광경을 본 정은이 엄마는 불안한 몸짓을 한다. 즉시 나오면 어떨까 하는 불안감과 또 얼마 전의 기억이 되살아나서라고 한다.

얼마 전, 같이 그림을 그리던 선배 언니를 만났었는데 서로가 무척 반가워했단다. 그런데 전화하겠다던 그 언니가 오늘까지 전화가 없단다. 서운해서 울었단다. 이 친구도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고 금방 눈물을 글썽인다.

검색 사이트에 들어가서 장×× 교수만 쳤는데도 관련 사이트가 여러 개 뜬다. 한 곳에 들어가니 서울의 유수 대학이 나오고, 장×× 교수의 선명한 사진과 함께 화려한 약력이 펼쳐진다. 이메일(E-mail) 주소도 나온다. 정은이 엄마가 부르는 것을 내가 쳤다.

“장××! 설마 네가 나를 모를려고? 나 박××야! 어렸을 때 여수 바닷가에서 뛰어 놀던 그 박×× 말이야…….”

전화는 집에 가서 조용히 다시 하겠다고 메모지에 써서 보관한다.

나는 귀가하기 위하여 가방을 챙겼다. 정은이 엄마와 같이 운동장에 나오자 초저녁의 불빛이 아름답고, 초겨울 날씨의 맑은 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다.

“교수님! 정은이는 지금 학원 선생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제 아버지를 찾아서 대만을 가겠대요. 정은이가 한국을 떠나버리면 저 혼자 어떻게 살지요? 저는 지리산으로 들어갈까 해요? 지리산 자락의 한 마을에 부탁을 해두었어요. 요새 집을 버리고 도시로 떠난 사람이 많기 때문에 폐가가 많대요. 그런 집을 하나 헐값에 사서 그림도 그리고 약초도 캐며 살래요.”

얼마 후, 출근하여 전화기의 녹음 스위치를 누르자, 정은이 엄마 목소리가 선명하다.

“교수님, 그 장×× 친구 말이에요. 이메일 답장도 없구요, 자기 학교 전화기에 녹음을 해놨는데 며칠이 지났는데 아직도 전화도 없구요… 또 배신인가 봐요!”

정은이 엄마는 울먹이다가 전화를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