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벗기

                                                                                               金菊子

 노모가 아침을 드신 후 한잠 주무시고 마루로 나오셨다. 부스스한 흰머리, 기역자로 꺾인 허리에 고무줄을 넣어 만든 담방치마를 입고 엉금엉금 의자를 짚고 한 바퀴 도신 다음 창가 의자에 앉아 나를 보시고는,

“댁은 누구슈?”

“며느리도 모르세요?”

“그런데 왜 그렇게 늙었어…….”

스물일곱에 시집와서 어머니와 삼십 여 년을 함께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며느리인 나를 몰라보시는 것이다. 어머니의 머릿속에는 며느리인 나의 모습이 항상 젊은 새댁으로 남아 있었나 보다. 그런데 육십을 바라보는 한 여인의 실체를 보신 것이라 생각하니 갑자기 늙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벌떡 일어나 밖으로 가서 거울 속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과연…! 엷은 슬픔이 가슴 속으로 흘러내렸다. 그리고 어머니와 얽히고 설키며 살아온 관계를 어머니가 놓아버리신 것 같아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약혼을 하고 처음 어머니를 찾아 뵙던 날, 쪽머리에 흰 무명 저고리를 입으시고 앉으셔서 절을 받으시며 활짝 웃으시던 때가 지금부터 삼십 여 년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로 굽이굽이 고개를 넘고 돌아 오늘까지 살아왔는데, 그 끈을 어머니 쪽에서 슬그머니 놓아 버리신 것이다.

나는 아직까지 그 줄을 붙들고 있지만, 줄은 밀고 당기고 할 때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법. 이렇게 한쪽이 놓아버리면 그 줄을 붙들고 있는 다른 한쪽은 맥이 빠지는 느낌이 든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도 삼십 여 년을 한결같이 서로 끌고 당기며 살아왔다. 서로 관계가 좋을 때도 있었고 힘들 때도 많았다.

아이를 낳아 어머니께 맡겨놓고 직장에 다닌 일이 있었다. 지금도 앉으시면,

“네 에미는 너희들을 낳아만 놓고 밖으로 나가 버렸어. 그래서 내가 시간을 꼭 맞추어 우유를 주었지.”

노래 후렴을 부르듯 한자리에 앉으셔서 같은 소리를 반복하신다. 얼마나 힘드셨으면 정신이 맑지도 못한 어머니가 그렇게 반복해서 뇌실까 생각되는 것이다.

며느리로서 가장 긴장되고 힘들었던 일은 어머니 생신을 치르는 일이었다. 시집온 해에 육순 잔치로부터 시작해서 환갑, 진갑 잔치는 특별히 성대하게 치렀고, 해마다 치르는 생신 잔치 말고도 칠순 잔치는 고향에 내려가서 냇가에 천막을 치고 돼지를 잡는 동네 잔치로 치른 것이다. 그 후 희수, 산수, 미수 그리고 2년 전 구순 잔치를 치렀다.

나는 어머니 생신을 치르면 그 해는 다 간 기분으로 살아온 것 같다. 이제 93세의 생신 잔치를 치뤄드려야 할 텐데, 조카는 물론 아들, 딸, 손주, 며느리도 몰라보시는 관계에서 잔치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인생을 살아가게 마련이다. 불교에서는 그 관계를 인연으로 보고 선연과 악연으로 말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은 전생에 빚진 인연이니 서로 갚아주어야 할 것이며, 형제 간의 인연은 전생에 경쟁의 인연이니 서로 양보해야 하며, 고부 간의 인연은 전생에 씨앗의 인연이니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볼 때 어머니와 나 그리고 남편과는 어떤 연일까? 혹자는 부부 관계를 악연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텔레비전에서 낱말을 알아맞히는 프로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드리는 문제의 답은 ‘천생연분’이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께,

“바로 우리 같은 사이를 무엇이라 하지?”

“원수.”

할머니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아니, 네 글자로 말해야지.”

“평생 원수.”

할머니는 어린애 같은 얼굴로 쉽게 대답했다. 할아버지는 천생연분으로 살아왔고, 할머니는 평생 원수로 살아왔단 말인가?

아침 진짓상을 들고 어머니 방에 들어가니 흰 무명 보자기에 싸인 보따리가 보인다.

“어머니, 이 보따리가 무엇이에요?”

“가려고.”

“어디로요?”

“응, 그냥 가려고. 죽지도 않고 왜 나 혼자 이렇게 있는지 모르겠어…….”

이제 집도 아들, 며느리도 따님도 모르시고 이 세상에서의 모든 관계를 끊고 계시다. 보따리를 풀러 보니 스웨터, 내복, 버선 등 옷가지와 참빗이 들어 있었다. 옷을 다시 장롱에 넣으면서 이제 정말 이 세상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먼 길을 떠나시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창 밖은 8월의 폭염으로 눈부시다. 어머니는 창 밖을 내다보며 얼마를 그렇게 앉아 계실지 모른다. 말씀이 없으시다. 세상과의 모든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한 폭의 움직이는 그림 같은 어머니를 보면서 어느 시인의 ‘세상벗기’라는 시가 생각나는 것이다.

 

‘노모老母가 팔십에 이르러 세상을 뒤엎네

오줌똥 무서워 않고 자시는 음식 곁에 나란히 놓네

고승들이 평생을 걸어도 만지기 힘든 탈속脫俗을

염불도 모르는 저 어른 어찌 깨쳤을까?’ ─ 임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