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어금니

                                                                                                      이선우

 무심천에는 벚꽃이 쏟아지고 있었다. 딸아이는 종종거리며 떨어진 꽃잎을 주워서 어미에게 선물이라며 내민다. 조그만 손바닥 위에 놓인 꽃잎 위로 오래 전에 보았던 왕비의 어금니가 포개졌다.

이따금씩 떠오르던 왕비의 어금니, 그것은 어금니라기보다는 한 장의 예쁜 꽃잎이었다.

십 여 년 전 일이다. R 선생님의 배려로 백제문화권 유적답사팀에 합류하였다. 본관이 경주인 내게는 신라의 피가 흐르는지 모를 일이지만 나는 고향이 있는 백제 땅에 더 친근함을 느낀다. 그때의 백제지역 답사는 고향을 깊이 알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다.

답사중에 들른 공주 박물관에서는 관람에 앞서 문화재 전문위원이 무녕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을 중심으로 슬라이드 필름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면서 역사적 의의까지 곁들여 설명해 주었다. 이어서 박물관 안에 들어가니 방금 슬라이드를 보면서 익힌 유물들은 훨씬 구체적인 느낌으로 다가섰다.

어둑한 박물관에 전시된 왕과 왕비가 누워 있던 목관에는 그들의 시신이 산화된 티끌 같은 게 얹혀 있었는데 손으로 쥐면 내 손 안에 들 만한 부피였다. 우리의 육신이 언젠가는 거기 쌓인 먼지처럼 된다는 것을 그때 실감하였다. 왕과 왕비가 썼던 금관, 왕비가 걸었던 옥목걸이, 금핀, 매지권買地券 등을 훑어나가다가 투명한 작디 작은 유물 앞에서 발을 멈추었다. 팻말에 ‘왕비의 어금니’라 적혀 있었다. 그것은 마치 꽃잎처럼 얇고 투명했으며 보석처럼 반짝였다. 왕비의 어금니를 보는 순간, 1천5백 여 년 전 여인이 환생이라도 한 듯 사락사락 비단 치맛자락 끌리는 소리가 내 귀에 환청으로 들리는 듯했다.

앞서 문화재 전문위원은 왕비는 왕보다 3년 늦은 526년에 죽어 무녕왕과 합장되었고, 그녀의 향수享壽, 간지干支, 이름조차 기록에 없다고 했을 뿐 왕비의 어금니에 관하여는 한 마디 언급이 없었다. 도록을 사서 자세히 읽어 보았으나 역시 그것에 관한 기록은 없었다. 고고학적 가치로서의 왕비의 어금니는 출토된 동전 조각이나 구슬보다도 언급할 가치가 없는가 보다.

그럴수록 나는 그녀에게 강하게 끌렸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같은 여자로서의 속물적인 것이었다. 그녀가 얼마큼이나 아름다웠는지, 지아비의 사랑을 받았는지, 몇 살에 이승을 하직하였는지, 자식은 있었는지, 여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등이었다.

무녕왕은 백제의 강력한 통치자였다. 그런 왕의 왕비로 간택되었으니 당대 최고 가문에다가 지·덕·체를 갖춘 최고의 미인이었을 것이다. 왕의 육신은 모두 티끌로 산화되었는데 비해, 남아 있는 어금니로 보아 그녀는 건강한 치아를 지닌 채 사망했을 것이고, 요절이라도 한 것일까. 어금니나마 산화하지 못할 만큼 이승에 한恨이나 미련이 있었던 것일까. 이쯤에서 그녀에 대한 나의 상상력은 벽에 부딪치곤 하였다.

종교를 갖고 있는 나는 사후死後 영혼세계를 믿는다. 1천5백 여 년 전에 이 세상에 왔다간 왕비의 영혼은 지금 어느 세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동화 같은 궁금증이 인다. 언젠가 나도 딸아이도 그 미지의 세계에 가야 된다면 그곳에서도 딸과 어미의 인연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소중한 이웃들과도 함께 했으면 더 재미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니 죽음이 그다지 쓸쓸하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딸아이는 무심천에 흩날리는 벚꽃에 마음을 빼앗기고 나는 하늘에 흐르는 구름 한 조각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

 

 

 

이선우

월간 <수필문학>으로 등단(94년).

도서출판 선우미디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