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국大國 속의 한 사람

                                                                                                         권태숙

 그건 바다였다. 섬 하나 거느리고 있는, 잔잔한 바다……. 그래서 유람선이 떠다니기도 하는 바다로 보였다. 그런데 호수라니, 그것도 인공 호수라니.

“북경 관광의 마지막 코스인 이화원입니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며 차에서 내렸을 때, 정문의 규모나 형색을 보고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청나라 건륭 황제가 모친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황실의 정원이라고 해서 우리 나라의 비원을 떠올렸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니 무척 아름답고 멋지리라 생각은 했다. 그런데 초입에 들어올 때는 상상도 못한 광경이 걸음을 옮길수록 내 눈을 흥분시켰다.

바다처럼 펼쳐진 호수와 그를 따라 끝도 보이지 않게 이어진 낭하, 호수를 만드느라 파낸 흙을 쌓아놓은 거대한 산줄기, 20층 건물보다 높다는 목조 누각, 호수 속 섬에 연결된 다리, 이들이 엮어낸 이화원이란 결코 정원庭園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총면적이 290만 평방미터라고 할 때는 그 크기가 가늠되지 않았는데, 서울의 여의도가 700만 평방미터라고 하니 짐작이 간다. 산과 누각이 있는 곳까지도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닌 것 같아, 보는 데 만족하고 대형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북경에 온 사흘 동안 푸른 하늘을 본 적이 없다. 부우연 하늘과 먼지에 찌든 가로수만을 보다가 이화원의 파아란 물을 보니 시야와 가슴 속이 환하게 열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엄청난 규모의 호수를, 포크레인도 없던 시절 삽이나 괭이를 가지고 팠을 생각을 하면, 마음 속에 싸한 바람이 인다. 땅이 세계 3위에 이르도록 넓으니 매사를 크게 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만 리가 되는 장성이나 9,000여 개의 방을 가진 자금성 등. 그러나 황실 가족의 휴식처를 만들기 위해, 여의도의 반에 가까운 정원에 그 3/4를 파서 호수를 만든 사실 앞에서 나는 그저 감탄사를 발할 수만은 없었다.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피땀을 흘렸을까. 깊이를 예측할 수 없는 짙푸른 물 아래 옛 중국인들의 고통스런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스스로 제 살갗을 태우던 제약회사의 연구원 얼굴이 물살 속에 흔들린다.

어제, 오전 관광을 마치고 조선족 가이드는 말했다.

“거기 가서 꼭 약을 살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라에서 안내하도록 정해준 곳이라 안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 만큼 약은 믿을 만합니다.”

관광지가 아닌 곳에 또 안내해야 하는 미안함을 얼버무리며 가이드는 앞장 서 건물로 들어갔다.

스무 명 정도가 앉을 강의실 같은 방에는 흰 가운을 입은 청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방 파스에 이어 화상 특효약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중에 화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탁자 끄트머리에서 굵은 쇠사슬이 달구어지고 있었다. ‘저게 뭐하는 거지, 설마 약 선전을 위해 누군가를 데게 하려고…’ 상상만이라도 안 될 것 같아 진저리를 치며 생각을 떨쳐내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은 느낌이었던 모양이다. 누군가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물었다. ‘어쩜, 이럴 수가…’ 우리들의 우려는 사실이었다.

“하지 마세요. 그냥 약 살 테니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의 의무입니다. 제가 지금 6개월째 이 과정을 하고 있습니다. 일정 기간을 마치면 승진해서 약속된 연구원이 됩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그는 오히려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사정했다. 보지 않겠다고 뛰쳐나간 60대 초반의 두 여인을 다시 모셔오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바알갛게 독이 오른 쇠사슬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손바닥을 지졌다. 그리고 재빨리 약을 바르고 뛰쳐나갔다. 금속성의 외마디 소리들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지금까지 거쳐온 판매소와는 달리 너도나도 약들을 샀다. 하나에 35,000원이란 만만치 않은 약값이지만, 나도 한방 파스를 주문했다. 남편은 화상약도 사자고 했다. 인체 실험에 마음이 약해진 탓인가.

어젯밤, 남편 일 관계로 북경에 살고 있는 친구가 숙소로 찾아왔다. 나는 연구원 얘기를 했다.

“여기서는 교통사고 나서 몇 명 죽는 것 따위는 뉴스에 나지도 않아.”

그런 일은 다반사라는 듯이 친구는 말했다.

세계 제1의 인구와 세 번째로 넓은 영토를 가진 나라, 그러나 그 규모에 눌려서인지 예나 지금이나 개인에 대한 존중의 정신은 결여된 것 같다. 개인은 그저 무궁무진 이어나는 자원일 뿐인가.

유람선 안은 지구 최대의 정원을 보러온 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있다. 그들을 맞으려고 나날이 높은 호텔을 지어내고 길을 내고 하루가 다르게 변모한다는 중국, 눈부신 경제성장을 하고 올림픽을 유치하고, 머지않아 황색 돌풍을 몰고 올 것이라고 세계가 주시하는 중국, 그 옛날의 대국은 오늘도 대국임에는 다름이 없다.

그러나 이 광대한 대륙의 한쪽 귀퉁이에 붙은 쪼그만 반도에서 온 나는 개인을 압도하는, 때로는 묵살하기도 하는 그 ‘대국大國’이라는 단어가 왠지 섬뜩하고 두렵다.

 

 

 

권태숙

<계간 수필>로 등단(98년).

전 연서, 서울 성산여중 국어 교사. <四季>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