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불의 향연

                                                                                                    고임순

 3월이 저물던 날의 오후 3시, 곤지암 보원요寶元窯로 가는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고 있었다. 대빗자루 자욱이 정갈한 마당에 들어서니 어디서 매화 향기가 은은하게 풍겨왔다. 그런데 오늘은 여느때와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야산 밑 아름드리 밤나무 사이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가마솥. 그 머리쪽 굴뚝에서 시꺼먼 연기가 하늘로 솟아오르고는 이내 흩어지곤 했다. 그 동안 죽은 듯 엎드려 있던 황토 가마가 오늘은 살아 굼틀거리며 기염을 토하고 있지 않는가. 뒷곁에 산더미처럼 쌓였던 장작을 계속 나르는 경운기 소리가 조용한 산촌의 대기를 흔들고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1년에 두 번 있는 도자기를 굽는 날이다. 새벽 3시부터 우리 나라 재래종 소나무인 육송陸松 통나무 한 트럭분을 땠다는 봉통 아궁이 앞에 앉는다. 12시간이나 화염을 토하고 지금 막 잠잠해진 아궁이 속은 마치도 금물결 굽이치는 불바다였다. 생살 찢는 아픈 가슴 사르고 못내 빨갛게 달구어진 쇳덩이 같은 통나무숯 불꽃이 서로가 보듬어 안고 빛을 발하고 있었다.

타는 나무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 옛날 군불을 때면서도 꿈을 꾸며 그 불꽃에 매료되었던 소녀 시절. 아궁이게 생솔 가지를 꺾어 넣으면 타타탁 하고 소리내며 불꽃이 훨훨 타올랐다. 그 환상적인 춤사위가 사라지고 나면 숯불이 붉은 강을 이루었다. 그것들을 아궁이 속 깊숙이 밀어넣고 방에 들어가 따뜻한 아랫목에서 책을 읽으며 나는 또 계속 꿈을 꾸었었다.

지금 내 눈은 황홀한 불길 속에서 지난 꿈을 찾으려 함인가. 젊은 도공은 구슬땀을 흘리며 수시로 봉통 아궁이 속을 굽어다보고 긴 쇠막대기로 화력을 고르게 다독거렸다. 그리고 가마의 옆구리 맨 아래쪽에 있는 칸불 아궁이에 껍질을 벗긴 육송 장작을 쉴새없이 집어넣었다. 불꽃이 밖으로 날름거리며 신 내린 듯 타고 있는 칸불과 아궁이의 불길을 통해 가마와의 합일을 이룬 도공의 정성이 하늘에 닿을 때 가마 속 그릇들은 새 생명의 신비를 재현하게 되는 것이다.

저 가마 속에는 지헌知軒 스승과 제자들이 빚은 작품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 흙덩어리를 잉태한 가마는 화도 1,350℃ 고열 속에서 몸부림치며 영원한 아름다움을 탄생시키기 위한 태동을 한다. 흙들의 혼이 살아서 모험의 여행을 시도하는 것일까. 마침내 흙이 녹아 흐물흐물 물 같은 형태로 변하고, 이 무른 고령토高領土의 수분이 증발하는 과정에서 도자기의 원형은 변화를 가져와 축소되기도 한다. 공기가 들어가면 균열되기 때문에 산소를 제한하고 탄소가 많이 나오도록 환원 변조를 한다. 산화가 되면 염이 끼어 누렇게 되기 때문이다. 이 경지는 스승에게 전수받은 도공만이 오랜 숙련 끝에 터득하게 되는 비법이기도 하다.

어느덧 산촌에 어둠이 내리고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봉통 아궁이의 숯불은 한층 선명하게 타오르고 칸불의 화염은 요기마저 띤 듯 춤추며 날름거렸다. 나는 아궁이 앞에서 기도드리며 가슴 속에 간직했던 꿈을 불러 또 꿈꾸는 시간으로 빠져들어갔다. 내 꿈은 과연 영원을 향해 열릴 것인가. 저 속에는 그 동안 내가 흙을 빚어 초벌구이한 접시와 꽃병 등에 글씨를 쓰고 난초를 그리며 새겨놓은 내 꿈이 서려 있는 것이다. 불꽃처럼 가슴이 설레인다.

흙이 갖는 냉철한 의지력과 불이 갖는 뜨거운 포용력의 만남인가. 생명의 근원인 흙과 불의 향연으로 이루어지는 도자기 예술. 몇 단계의 공든 탑을 힘들게 쌓고 처음의 물질이 전혀 다른 형태로 변모해 가는 도예술이야말로 최고 최후의 예술이 아닐까. 이러한 도예술의 완성은 종국에 불가마의 신비에서 비롯됨을 알았다. 오로지 한곳에 쏟아붓는 사랑, 정성, 열정, 예술혼이 함축된 정식력으로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것도.

잠시도 불가마에서 눈을 떼지 않은 도공은 밤새 나머지 여섯 군데 불 아궁이에 불을 때며 내일 아침까지 계속 24시간을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불가마가 서서히 식은 일주일 후 그릇들은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불가마의 성공률은 겨우 30%에 불과한 것이다. 첨단의 기계식 가스 가마에서 99%의 성공률로 천편일률적인 매끈한 인공미 그릇의 출현과는 거리가 멀다. 불가마 속에서 주저앉거나 금이 가 울지 못하는 허약한 그릇들을 깨부수면서 아픔을 절규하는 도예가. 이러한 도예가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살아 남은 도자기의 되바라지지 않은 은은한 빛깔이다.

소나무의 불길에는 유액 성분이 있어 천연 향토의 육색 그대로의 우둔하면서도 신비스런 빛이 선염渲染되어 흐른다. 손자욱까지도 잔잔한 물결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나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형체와 빛깔에 탄성을 지르게 된다. 마치도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의 울림 같은 것을 느낀다고나 할까. 영원을 향한 애달픈 몸짓인가. 불가마는 메커니즘에 젖은 현대인에게 어떤 메시지를 남겨준다.

파괴의 총체인 도자기. 창조에의 끊임없는 열정과 삶의 환희로 흙을 빚고 구워내고 깨 던지고 또 빚고를 반복하는 삶. 그 많은 세월을 도자기 세 개를 얻기 위해 일곱 개를 버리는 작업을 거듭하면서도 태연한 스승을 나는 다시 한 번 우러러보았다. 뒷곁에 버려진 무수한 도자기 파편들은 그러나 그냥 사라진 것이 아니다. 모두 스승의 새로운 도예술의 시야를 넓혀주고 언젠가 빛을 보게 되는 밑거름인 것을.

비 내리는 어둠 속을 집으로 돌아가면서 내내 생각에 잠겼다. 나는 지금까지 서예술과 수필 문학에 심취하면서 작품을 썼다. 천착 과정에서 밤을 지새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치열한 고뇌와 진통 과정을 겪고 작품 하나를 완성했다. 얼마나 많은 화선지와 원고지를 버렸는가. 그러나 작품 3편을 고르고 과감하게 7편을 버렸는가 반문해 보았다.

그 동안 안일하게 쓴 작품들을 파기하고 싶다. 불꽃 같은 열정으로 새롭게 다시 창작하리라. 눈 앞에 이글이글 타오르던 봉통 아궁이의 불꽃이 아른거리며 나를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