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거기 가 보아라

                                                                                                  金昌珍

 대학마을 S 촌에 가 보아라.

교외선 S 역의 역사驛舍를 보아라.

그건 광증狂症처럼 치솟으며 길길이 날뛰면서 날이 날마다 탈바꿈하는 요새 세상에, 아 이 무슨 고집이지, 저리 옛 고전(?)의 모습으로 버티고 있는 건.

그리고 그 근처의 어느 이층에 있는 찻집 C 에 가 보아라.

고전음악이 배음背音처럼 잔잔히 흐른다. 인형 무대만한 북창北窓에는 가끔 S 역에 닿고 떠나는 교외선 열차가 석양빛을 받아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얼른얼른 유영遊泳해 나간다.

널찍한 남창 너머에는 대낮에도 촛불이 하늘거리고 있다.

날이 갑자기 흐려지면 그들도 처마 밑으로 빗방울을 피한다.

내가 이 C 찻집을 자주 찾는 것은, 이 남창 너머 저쯤에 바람벽 높이로 쌓여 있는 고목枯木의 토막들 때문이기도 하다. 장작더미가 제때를 놓쳐버린 것 같은, 그래서 그건 도심에서도 전혀 초조하지 않고 느긋하다.

차를 마시며 그걸 바라보는 나 또한 그러하다.

“이리 늙은이가 들어와도 괜찮으냐”고 나는 새삼스러이, 정중히 묻는다. 차를 따르면서 그 애들도 매양 정색으로 “그러믄요”라고 답한다.

젊은이들이 우글(?)거리는 대학가에선 나이 지긋한 이의 숨쉬기가 때로 조심스럽다.

젊은이들의 문화와 숨결로 가득 찬 이 대학가에서 노인들이 유일하게 숨쉴 수 있는 고도孤島와 같은 이색지대異色地帶의 공간, Y 라는 찻집에서의 일이다.

바깥에 비가 오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젊은이가 들어온다.

대개 이런 경우, 다른 애들은 그 침잠沈潛한 백색지대 ─ 가을날 갈대들은 그 머리에 유백색의 갈꽃을 달고 바람에 흔들리며 서걱인다 ─ 에 엉뚱해 하며 돌아서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젊은이는 말없이 굳은 표정으로 아까부터 앉아 있는 창가의 두 노인에게로 간다.

참 묘한 일이다.

그 젊은이가 지팡이를 잡고 있는 노인에게 “아버지!” 하면서 울먹거리며, 빗물로 젖은 맨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긴 큰절을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아버지 노인도 그리고 우산을 짚고 있는 그 옆의 노인도 그 애가 일어날 때까지 아무 말이 없다. 이를 지켜보는 이웃자리의 다른 노인들도 말을 잃는다.

나는 이 진풍경珍風景에 가슴이 찡해 옴을 느꼈다.

왜 그랬을까. 왜 울먹거렸을까. 왜 그리 큰절을 올리고 한동안 꿇어앉아 있었을까. 아버지는 그 옆의 노인은 왜 그를 일으켜 세우지 않았을까.

80년대까지만 했더라도 이 궁금증에 대한 우리들의 상상은, ‘쫓겨다니는’ 그를 떠올렸을 것이다. 아니면 비록 막 풀려는 났으나, 학교에서 이미 제적당하고 영 오갈 데 없는 앞날이 캄캄한 한 젊음을 상상했을 것이다.

은빛들로 빛나는 이색지역의 찻집에서 젊은이는 왜 그랬을까.

사랑 때문이었을까. 고아였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한 ‘볼품 없는’ 여자와의 사랑 때문인가. 아니면 술 마시며 담배 피우며 그리고 남의 아이까지 가진 한 ‘신식’ 여성에게 자기의 ‘동정’의 모두를 바쳤기에서일까. 그래서 친구에게서, 멀리 시골의 부모님에게서부터 종적을 감추고 그리 빠져버렸을까.

아니지, 아니지. 그 애는 한물 간 구식 양복을 걸쳤고, 대낮인데도 눈가엔 술기운 같은 붉은 빛이 감돈다.

그건 혈안血眼이었을까.

옛날에 옛날에, 1930~40년대 그때, 아버지의 바람을 버리고 자기 꿈에 빠졌던 젊은이들이 있었지. 노인은 현해탄을 건너 그 애를 찾았지. 아버지는 그 날로 돌아왔지, 현해탄을 되건너서.

젊음은 모르는 것, 그건 영원한 빠짐, 끊임없는 집념, 솟구치는 미침, 그리고 그리고 한량 없는 취醉함.

 

취하라, 미쳐라

빠져라

집념하라

스며라, 가슴.

 

나를 느긋하게, 때로는 이리 들뜨게 하던 공간, 두 찻집은 어김없이 사라졌다. 교외선 기차역의 왜소해진 역사驛舍와 헐렁한 대합실만 대학마을 S 촌에 그런대로 남아 있다.

우리를 이미 떠난 세월이, 당신을 아는 체할지 모르지 않는가. 친구여, 거기 가 보아라.

플랫폼의 차단한 불빛을 떠올릴 수 있다면서야.

 

 

 

김창진

전 가톨릭대학교 교수.

시문집 『그대 우리 자유로울 수 있는가』 

산문집 『나폴레옹 클래식에 빠지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