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악사

                                                                                                   정선모

 며칠 전, 종로에 나갔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시인통신’에 들렀다. 골방 같은 그곳에 빽빽이 들어앉아 서로 무릎 맞대고 문학을, 군사정권을, 젊음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신열을 앓던 예전의 친구들이 떠올라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데, 한 할아버지가 기타를 메고 우리가 앉은 탁자 옆에 서서 말을 걸었다. 정중하게 연주를 부탁하자, 가벼운 손놀림으로 ‘애수의 소야곡’부터 흘러간 가요를 작곡한 연대와 작곡자까지 설명하며 줄줄이 쏟아놓는다. 동행이 지폐 몇 장 주머니에 넣어드리자 기분이 좋아진 할아버지는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연거푸 연주하는 바람에 나중엔 그만 가시라고 등을 떠밀어야 했다. 할아버지와 기타가 나간 자리엔 쓸쓸함만이 동그마니 남아 있어 한동안 애꿎은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아주 오래 전, 서울의 남대문 앞 지하도에 거리의 악사가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다.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 악사는 어둠을 몰고오는 것처럼 서울의 가로등이 하나 둘씩 켜지는 꼭 그 시간이면 홀연히 나타나 고전음악을 연주하곤 하였다. 간혹 ‘유모레스크’와 같이 경쾌한 곡을 연주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타이스의 명상곡’이나 ‘G 선상의 아리아’와 같이 유장한 느낌을 주는 곡들을 즐겨 연주했다. 가끔 ‘바위고개’나 ‘그집 앞’ 같은 그리움 가득 담긴 가곡이 흘러나오기도 하였지만, 대중가요를 연주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어쩌다 지나던 취객들이 호기롭게 지폐를 흔들며 ‘동백아가씨’나 ‘목포의 눈물’을 청해도 못 들은 척하는 바람에, 기분상한 그들이 한바탕 조소를 쏟아내도 끝끝내 그분의 바이올린에서 가요를 들을 수는 없었다. 앞에 놓여진 바구니엔 찬바람이 넘나들었지만 사람이 오든 가든 개의치 않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연주에 몰두하는 그분의 모습은 이순신 장군 동상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그 즈음, 친구를 만날 일이 있으면 일부러 시청 앞으로 약속장소를 잡았다. 이야기가 끝나고 집으로 갈 땐 바로 앞에 있는 지하도를 놓아두고 한 블록을 걸어 악사가 있는 지하도를 건넜다. 통로와 약간 꺾여지는 곳의 계단에 서면 정면으로 그분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바이올린의 우수 어린 선율이 최루 가스로 뒤덮여 있던 삭막한 도시의 어둠을 가르고 지하도를 통과하여 남대문을 휘돌아 내 가슴을 서늘하게 파고들면, 그만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밀려와 가슴이 턱턱 막히고 눈가에 물기가 서렸다. 지하도 벽에 등 기대고 서너 곡쯤 듣고 나면 돌아서는 발걸음이 허둥거려 몇 번이나 발을 헛디디기도 하였다.

때로는 그분이 안타깝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행인들의 취향과 적당히 타협하면 훨씬 수월하게 바구니를 채울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몇 시간이고 서서 연주한 대가가 고작 쌀 한 봉지 값이 못된다 하더라도, 자신의 음악이 노점상들이 파는 싸구려 물건처럼 취급당하는 건 못 견뎌한 그분의 고집이 그 시절 유난히 돋보였다. 굳이 음악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모습을 확인하러 일부러 길을 돌아 그 지하도를 건너는지도 몰랐다.

모두가 두려움에 떨던 때였다. 정의로운 투지는 힘을 잃어 지하로 숨어들고, 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비웃듯 거리의 악사는 눈을 감은 채 대로변이 아닌 지하도에서 고전음악만을 열심히 들려주었다. 가끔은 그분이 정말 돈을 벌기 위해 거리에 나섰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하였다. 사람이 많이 오가는 명동의 지하도가 지척에 있는데도 굳이 완전 무장한 전경들이 날마다 득시글대는 서울시 경찰청 바로 옆의 지하도에 자리를 잡은 까닭은 이런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음악을 듣고 돌아서며 그분은 어쩌면 시대의 진혼곡을 연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사방이 차도로 에워싸인 채 서울 한복판에서 고립무원이 된 남대문의 참담한 형상 아래에서, 총을 든 초병이 출입구를 굳건히 지키고 있어 대낮에도 으스스한 시경을 지척에 두고, 사람의 통행이 뜸한 한적하고도 음습한 그 지하도에서 가끔 바이올린을 꺼내 드는 그분의 심정이야 우리가 알 리 없건만,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자꾸만 부끄러워지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분이 보이지 않게 되고, 자연히 그곳을 지나는 일이 드물게 되면서 그 지하도와 거리의 악사는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오늘 불현듯 그분이 생각나면서 전경들이 철망차를 타고 질주하던 서울의 거리와 경찰의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던 운동권 친구의 유난히 까맣고 초롱초롱하던 눈빛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맨살로 한 시대를 통과하느라 상처투성이가 된 친구의 등 뒤에 숨어 그 추운 시절을 무사히 건넜고, 지금은 말짱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맞은편에 앉은 동행의 술잔에 비쳐졌다. 풍요와 자유가 거리의 휴지처럼 널려 있는 종로의 뒷골목에서, 지금의 번영을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비겁하고 남루한 내 영혼과 정면으로 맞닥뜨린 느낌이라니…….

 

누가 듣건 말건 끝끝내 자신의 음악만을 연주하던 옛날 거리의 악사가 가슴에 통증이 일도록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