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료작-

 고층 예찬

                                                                                                      최영자

 금호동 산마루의 아파트로 주소가 바뀌었다.

50년 넘게 일반 주택에서만 살다가 이사를 결정한 후 하루 만에 선택한 새로운 둥지이다. 11층 거실에 서면 한강이 저 멀리 보이고 남산이 비슷한 눈높이로 보인다. 오후가 되면 집안으로 초겨울 햇빛이 밀치다시피 쏟아지고, 한강의 물비늘은 황금빛이 되어 황홀경을 만든다. 베란다에서 고개를 돌리면 발 아래로 경사진 언덕에는 다세대 주택이 땅을 도배하듯 들어 차 있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집들은 하늘과 맞닿아 있고, 높이 솟은 교회의 첨탑은 하늘의 문 같다. 바다 속으로 겁없이 빠져버리는 저녁 해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내려다보이는 지붕 너머로 슬쩍 숨어버리는 저녁 해를 나는 일상의 살맛으로 느끼며 산다.

땅과 친숙하게 살다가 이제 하늘을 벗삼아 살게 되었다. 강물과 짝을 이루는 하늘이 손에 닿을 듯하다. 그 하늘은 영상 화면이 되어 방금 물기가 마른 수채화가 되었다가 거친 붓질의 유화가 되기도 하며 수시로 얼굴을 바꾸어 보여준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나가는 사람의 정수리가 보인다. 건물의 옥상이 보인다.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가 잡힐 듯하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게 느껴질 만큼 너무 멀지도 않고, 나에게 영향을 줄 만큼 너무 가깝지도 않아서 고요한 마음으로 음미하며 바라볼 수 있어서 좋다.

껄끄럽게 느껴지던 인간관계도, 얽히고 설킨 일에서 오는 피로감도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다. 신경을 곤두세우며 아옹다옹 살던 세월이 하찮아져서 곳간의 자물쇠도 마음의 빗장도 흘러가는 물에 그냥 띄워 보낸다.

한편 또 다른 마음도 인다. 영화에서 보듯, 세상 속에 군림하는 자가 된 기분 말이다. 건물이 높아졌을 뿐인데 내가 많이 높아진 것 같은 착각에 빠져 흐뭇해지는 것을 보면, 애써 겸손하게 살려는 의지는 생각일 뿐 마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낮은 주택에서 고층 아파트를 바라보듯, 모든 일에서 나의 시선은 늘 위를 향하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잘해야 된다는 생각이 완벽을 추구하게 되었고, 그 강박관념이 나를 부자유스럽고 조급하게 만들었다. 스스로 묶여 있는 자신을 풀어내고 싶어 신앙의 힘을 빌려보지만 자신을 다그치는 고질병은 쉽게 치료되지 않았다.

끝은 이미 시작을 품고 있다. 늘 높은 곳을 향해 욕심을 부리다 보면 어느 새 깊은 골짜기를 헤맸는데, 이사를 와서 한강을 내려다보며 참으로 세상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실실 웃음이 번지는 날도 있고, 두 손에 불끈 힘이 주어지기도 한다.

어찌 되었건 변화는 좋다.

내려다보는 기분이 꽤 괜찮다. 하늘을 가까이 느끼며 지나온 삶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어서 기쁘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볼 수 있다던가.

그런데 참 이상하다. 돌이켜보면 결혼 후 처음 살던 집도 수색의 언덕위에 있었다. 지대가 높다고 택시기사가 가기를 거절하던 곳이었다. 아득히 성산대교가 보였고, 불빛만이 가득한 텅 빈 밤기차의 기적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계절 따라 옷을 바꿔 입는 들판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과 같은 느낌을 갖지 못하고 수돗물이 나오지 않아서, 여름에는 오르기가 힘들어서, 겨울에는 미끄러워서 다니기 힘든 것만 탓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높은 지역이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승용차도 없어서 무거운 것을 나르기에 겁이 더럭 나고, 방문객이 수박이라도 한 통 사들고 올라치면 떨어뜨려 깨뜨리거나 땀으로 옷을 적셔야 했다. 야경을 즐기고 시야를 말할 때가 아니었다. 나는 줄곧 낮은 곳으로 이사가기를 소망했고, 그 꿈은 2년 후에 이루어졌다. 꿈을 이루어 편안하게 살게 되자 높은 곳의 불편함은 금방 잊어버렸다. 같은 집에서 20여 년을 살다 보니 싫증이 나기도 하고, 아이들이 자라고 가재도구가 늘어나면서 집이 좁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하였다. 답답하다는 말을 자주 하였기에 고층을 쉽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내가 높은데서 낮은 곳의 풍경을 즐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하늘은 낮은 곳으로 깊게 드리워진다는 것을 감지하였다. 참으로 오랫동안 낮은 주택에 살았으면서 하늘이 낮은 곳에까지 내려와 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낮음으로 인해서 하느님이 나에게 풍성하게 들어와 있음을 왜 몰랐을까? 공간의 위치를 바꾸어 주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처럼 나도 내 밖에서 보아야 보인다는 것을 집이 말해 주었다. 요즈음 소유 공간보다 무한정 펼쳐진 하늘 공간까지 내 몫으로 차용하여 누리는 기쁨이 더없이 크다.

지금 이렇듯 고층 아파트를 예찬하고 있지만, 봄비라도 뿌리는 날이면 흙 냄새 향수병에 걸릴지도 모른다. 초봄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잔디가 보고 싶고, 울타리를 타고 오르며 향기를 뿜어대던 인동초와 능소화가 그리워지며 일반 주택 증후군을 앓게 될지도…….

아직은 발 아래 모든 풍경이 환희의 찬가를 부른다. 금호동 산마루 카페 같은 11층에서 언제나 새 물로 흐르는 한강을 바라보며 다가오는 시간을 수필처럼 살아 볼 셈이다.

 

 

 

 

천료 소감

 

 

한없이 기쁘면서 부끄럽습니다.

멋모르고 들어선 문학의 세계가 알아갈수록 두렵습니다. 수필의 참맛을 일깨워주고 다듬어주셨을 뿐 아니라, 독특한 삶의 색깔까지도 덧입혀주신 임선희 선생님께 마음을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꿈조차 꾸지 않았던 글 세계로 길을 열어준 친구 오정순이 참으로 고맙고, 함께 가자고 발을 맞추어 준 문우들과 가족에게도 인사하고 싶습니다.

이 모든 만남의 의미와 기쁨을 확인하게 해주신 편집위원님께도 인사드립니다.

등단의 순간이 남은 세월의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부지런해지렵니다.

수필을 만난 것은 축복입니다.

 

                                                                                                 최영자

 

국민대 법학과 졸업. 전 한국과학기술연구소 근무.

<사계>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