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회 추천 -

 댕댕이 바구니

                                                                                                      문순하

 아침부터 희끄무레한 날씨는 내 마음까지 착 가라앉게 한다.

지끈거리는 편두통 때문에 뒤채이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오랜만에 황학동 골동품 골목을 기웃거리고 싶어서다.

고향이 그리워지면 가끔씩 찾곤 하는 곳, 그곳에 가면 고향 냄새가 코끝에 묻는다. 노점들의 별별스런 물건들을 훑어보며 만물상 간판을 단 가게로 들어선다. 온갖 물건들이 틈없이 들어 차 있다. 망태기, 삼태기, 멍석, 바작 얹힌 지게도 있다. 그 앞에 앙증스럽게 놓인 댕댕이 바구니가 고운 때를 입어 윤이 반지르하다.

순간 가슴이 꽉 막혀온다. 예닐곱 어린 시절로 돌아가 고향을 찾는다.

 

동화책 삽화에 나옴직한 풍경, 나지막한 조종산이 있고, 능선 안쪽에 조종골이 움무시와 샛터로 자리하고 있다. 마을 앞쪽으로는 건내, 범동골, 솔아단이 있으며, 동쪽으로 잿빼기, 남쪽에는 돌무산, 북쪽으로 당산, 뒷골, 내실리가 있다. 이렇게 예쁜 지명을 가진 동네에는 열 채 스무 채씩 초가집들이 모여 있었다. 농한기에 아버지는 댕댕이 바구니를 짜셨다.

 

꽤나 쌀쌀한 겨울날 아침에 아버지는 톱을 들고 삽짝을 밀치고 나가신다. 나는 아버지를 쫄랑쫄랑 따라 나선다.

범동골 탱자나무 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양해를 구한 뒤, 두어 바퀴 울타리를 둘러보신다. 눈여겨보아둔 어른 손가락 굵기의 올곧은 나무를 서너 개 베어낸다. 탱자나무들이 서로 엉켜 있어, 톱질을 할 때마다 울타리 전체가 흔들린다. 여운에 놀란 새들이 우르르 우르르 몰려난다.

집에 돌아와 잘 다듬은 나뭇가지 중간쯤을 불에 구워 U 자가 되게 틀을 잡는다. 양쪽 끝에 새끼줄로 묶어 찬물에 담가 식힌다. 한 주일쯤 그늘진 벽에 걸어 말린다. 다 마른 틀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그리고 그 동안 흠씬 물에 불린 댕댕이를 이 틀에 감아가며 바구니를 짜신다. U자 한가운데에서 한 뼘쯤 되게 댕댕이 세 올씩 잡아 날을 세운다. 가늘고 매끈한 댕댕이만 골라서 한 올씩 씨를 먹여 짜신다.

옆에서 구경하는 내 눈에는 한 줄 한 줄 씨 먹여지며 바구니 꼴이 되는게 매우 신기하다. 바구니 짜는 아버지 옆에서 화로에 불씨를 헤집고 고구마 서너 개를 묻는다. 인두로 재를 꼭꼭 눌러놓고 고구마 익는 동안 옛날 얘기 해달라고 조른다. 이야기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하면서도, 아버지는 구수한 입담으로 이야기를 해주신다.

노릇노릇 익은 고구마를 아버지는 하나, 나는 두 개나 먹는다.

 

한겨울 동안 아버지는 댕댕이 바구니를 여러 개 만들어, 동네 어른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하신다. 기와집 쌍둥이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선물한 댕댕이 바구니를 서울 며느리에게 빼앗겼다며 너털웃음으로 아쉬워한다.

 

이른 아침 아버지 심부름으로 탱자나무집 할머니 댁에 바구니를 들고 간다. 할머니는 내 목소리에 방문을 열고 내다보신다. 할머니는 참빗으로 낭자 머릴 풀어헤치고 빗고 계셨다. 말없이 내미는 댕댕이 바구니를 보더니 버선발로 토방까지 내려서며 할머니는 반색하신다. 댕댕이 바구닐 빼앗듯 받아들고 요리조리 돌리며 쓰다듬기도 하신다.

“곱다, 고와”를 연발하던 할머니는 장날에 팔려고 싸 놓은 듯한 계란 꾸러미 두 줄을 내 팔에 안겨주며 귀엣말로 잠깐 기다리라 하신다. 곳간으로 들어가 곶감을 두 손 듬뿍 들고 나와 내 치마폭에 놓아주신다. 돌아오는 길, 곶감 하나를 입 속에 넣고 우물거리는데, 앞에서 개구쟁이 창호가 오고 있다. 치마폭을 놓자니 곶감이 땅에 쏟아지겠고, 이대로 걸어가자니 속치마를 안 입어서 창호가 놀릴 것이다. 나는 옆으로 게걸음 하다가 돌부리에 넘어져 계란 꾸러미를 내동댕이 친다. 계란이 깨져버린다. 꾸러미를 들어올리니 지푸라기 사이로 흰자는 다 흘러내리고 노른자위만 남는다. 그나마 깨지지 않은 건 네 알뿐이다.

울면서 집에 들어서니 아버지는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닦아주며 괜찮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에그 아까운 걸” 하시며 지푸라기 사이에서 또록또록한 노른자위를 숟가락으로 그릇에 퍼 담으신다. 지지배가 조신하지 못하다고 혀를 차신다. 아침 반찬은 푸짐한 계란찜이다. 아버지는 막내딸 덕에 계란찜 한 번 실컷 먹었노라 농하신다.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 댕댕이 바구니에 담아 가슴에 안아본다.

가게 밖으로 나서니 그예 눈발이 휘날린다. 얼굴에 차갑게 내리는 눈을 그대로 서서 맞는다.

눈발 저 멀리 멍멍개 짖는 겨울 밤, 사락사락 눈 내리는 고향을 다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