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증후군(症候群)

                                                                                                  任洪淳

 얼마 전 물건을 사러 백화점에 갔다가 주차한 차를 찾지 못해 곤혹을 치른 일이 있다. 주차장 층수와 차 세운 자리의 번호를 깜빡 잊은 까닭에서이다. 주차장 여러 층을 오르내리는 법석을 떤 끝에 찾아내기는 했지만, 부실했던 그 모양새가 도시 말이 아니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고령과 관계되는 건망증 탓이 되는 것이겠지만, 그보다는 숫자에 얽혀 사는 현대 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의 한 단면이라고 풀이하고 싶은 것이다. 미상불 현대는 숫자의 홍수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자신의 주민등록번호에서 시작되어, 거주하는 집 번지나 단지의 숫자, 동 호수, 통 반의 숫자, 우편번호, 집이나 사무실 전화, 혹은 휴대폰, Fax 번호, 차량번호, 각종 카드와 통장의 계좌번호 등, 신상에 관계되는 숫자만 해도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이사를 했다든지 승용차를 새로 바꾸었다든지 하면 그것에 따르는 숫자에 적응하느라 오랜 시간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게다가 자기만 알고 있어야 하는 비밀번호만 해도 은행과의 거래 번호, 인터넷 이메일의 계정 숫자, 금고나 캐비닛의 다이얼 번호 등을 외워놓고 있어야 한다. 대개는 기록해 두고 있는 것이지만 항상 머릿속에 담아놓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빈번히 이용하는 지하철 노선 번호와 출입구 번호쯤은 늘 기억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번은 은행에서 돈을 인출할 때, 자신의 통장 비밀번호를 잊어 곤혹을 치른 일이 있다. 신분증과 인감 등 증빙자료를 대조한 뒤 어려운 절차 끝에 겨우 해결되기는 했지만, 거꾸로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비밀번호를 가르쳐 받아야 하는 것이 되었으니, 웃지 못할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은 숫자에 대해 나와같이 그렇게 큰 어려움이 없는 것인지? 나이 탓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유난히 숫자의 기억에 우둔한 편인 듯싶다.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복잡한 숫자에 묻혀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확실히 이것은 현대 문명이 가져다 준 어쩔 수없이 겪어야 하는 당위當爲요 필요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보다 편리한 생활을 위해 이러한 숫자 제도가 생겼을 터인데 반대 급부로 그와 같은 어려움이 따르게 되는 것은 분명 현대 문명 생활에서 파생된 아이러니요 모순임에 틀림없다.

언젠가 우편물 전시회에서 구한말 시대의 편지 봉투를 본 일이 있는데, 주소를 ‘한성 잿골 김 참판댁 건너편집 박 아무개’라고 쓴 것을 본 일이 떠오른다. 숫자 생활로 곤혹을 치르는 현대에 견주어 보면 그것이 편리한 면이 되고 있었다는 역설적인 해석을 갖게 한다. 백수십 년 남짓한 세월이 지난 오늘과는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옛날 우리 할머니는 숫자에 대한 총기가 좋으셨다. 항상 너의 생일은 언제이고 아무개는 어느 날이고, 가족뿐 아니라 친척이나 사돈의 생일까지도 환하게 기억하고 계셨다. 할머니께서 지금과 같은 숫자에 파묻히는 생활을 하셨어도 그렇게 잘 외우고 계셨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옛 말에 “업은 아이 3년을 찾는다”는 말이 있는 것을 보면, 기억력은 옛날이나 지금 사람이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현대와 같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숫자증후군에 묻혀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길눈과 숫자를 외는 대뇌의 기능이 동일한 수리적數理的 역할이라서 그러한지 나는 길눈도 매우 어둡다. 한두 번 가 본 데는 다음에 찾을 때 매우 힘을 들인다. 그래서 시간을 약속할 때는 항상 넉넉한 여유를 둔다. 차로 생소한 곳을 찾을 때는 늘 옆자리에 길눈 밝은 사람과 동행한다.

사람의 왼쪽 대뇌는 수리적 역할이 되는 반면, 오른쪽 대뇌는 그와 반대되는 감성적感性的 역할에 속한다고 하는, 인간의 두뇌 구조학 강의를 언제가 들어 본 일이 있다. 하지만 사람이 이 두 기능을 고루 갖출 수 있게 되기란 매우 드문 어려운 일이라 했다. 그래서 감성적인 사람은 숫자나 길눈에 어둡고, 수리적인 사람은 감성 대신 숫자나 길눈이 밝게 마련인 것이라고 했다.

어느 수필가가 쓴 글에서, 길눈이 어두워 의사에게 진찰을 받은 바 있다고 했는데, 그 대답인 즉 ‘길눈이 어두운 대신 길눈 밝은 사람이 볼 수 없는 것을 대신 잘 볼 수 있다’라는 진단을 내리면서 위로를 받았다는 글을 읽은 일이 있다. 그렇다면 이것이 숫자나 길눈이 어두운 나에게도 해당되는 진단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글을 읽으면서 나도 덩달아 슬며시 위로를 받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수리와 감성을 두루 갖춘 과학자이며 예술가이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에 비견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적어도 그 수필가를 진단했던 의사의 말대로, 나의 수리 판단 기능의 결여 대신 감성 쪽으로 솟아나 그것이 예술 창작을 위한 영감靈感의 창출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라면, 그 이상 더 바랄 것이 없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임홍순

전 이화여대 교수. 현 한국 미술협회 고문. 공예가.

<창작수필>로 등단. 수필집 『임홍순 목조형·수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