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色盲

                                                                                                김수봉

 정확히 말해서 나는 ‘색맹’은 아니다. 나는 ‘색약’일 뿐이다.

중학교 입학시험 때 신체검사장에서 처음으로 ‘적록색약赤綠色弱’이라는 판정을 받았었다. 색맹 검사 책자 앞에서 다른 아이들은 척척 맞히고 지나가는 기호(혹은 숫자)를 잘 읽다가 한 군데서 걸렸다. 내가 멈칫거리는 것을 보고 검사관은 재미있다는 듯 여기저기를 또 넘기며 보여주다가 고개를 갸웃갸웃 했다. 다른 곳은 쉽게 읽는데 한두 군데만이 8자로도 보이고 2자로도 보였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곳은 적색과 녹색의 무늬가 혼합된 곳이었다.

그 날 밤 어린 나는 그것 때문에 입학시험에서 낙방되는 줄 알고 혼자 많이 울었다. 그러나 아무 일 없이 중학교엔 합격했고 학교생활에도 이렇다 할 지장은 없었다.

색맹은 색채를 분별 못하는 정도가 심하여 모든 색을 그저 흑백 정도로만 구분한다지만, 색약은 말 그대로 어떤 색과 색의 혼합 상태에서 식별이 약한 증세이다.

어린 시절, 감나무 밑에서 놀던 아이들이 푸른 감잎 사이의 홍시를 곧잘 찾아내는데, 나는 ‘저기저기’ 하며 아무리 손가락질로 가리켜 줘도 안 보였다. 앵두도 그릇에 담겼을 때는 그 화려한 색이 잘 보이는데 나무에서는 찾아지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소년기의 나는 상당히 콤플렉스에 시달렸고, 이것 때문에 실제로 내 인생의 진로도 많이 수정되었다. 의사가 되려던 꿈을 접어야 했고, 생물학이나 화학 분야의 대학을 지망해서 과학자가 되려던 것에도 결격사유가 되었다.(그때의 이공계 대학입시 요강에는 그렇게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제2의 적성쯤 되는 국문학을 공부했다.

중·고 시절에 나는 미술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다. 연필로 손을 그리는 그림은 썩 잘한다는 평을 들었는데 물감으로 꽃 정물이나 풍경을 그리는 데는 그 자체가 하기 싫었다.

그랬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색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이랄 수 있는 초록과 빨강의 조화를 나는 잘 모른 채 지냈다. 그것들이 단색으로 있을 때는 확실하게 보이다가도 모자이크된 상태일 때는 식별이 안 된다. 내가 노란색과 흰색을 특히 좋아하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이리라. 빨간 장미보다는 노란 장미가 더 좋고, 국화도 흰색과 노랑에서라야 안온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마음은 보이는 색에 따라서 움직여지고 심상을 만들어내며 삶의 행동을 결정하게 하는가 보다. 겨울 양복은 줄무늬 있는 감색 계통을, 여름철의 남방이나 티셔츠는 흰색이거나 단색을 즐겨 골라 입었다. 그림에 있어서도 동양화에 더 끌리고, 굵은 선으로 힘있게 처리된 판화에서라야 미적 강도를 더 느낀다.

 

내가 스무 살 때, 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받았다. 시력과 색맹을 보는 검사관 앞에 이르자 나는 약간 장난기가 발동했다. 검사 책자를 내밀며 나를 쳐다보는 그에게 고개를 저었다. 다음 장에서는 내가 아는 숫자였는데도 엉뚱한 답을 댔다. 다시 넘긴 자리에서는 “모릅니다”를 크게 말했다. 검사관은 중학교 때의 그 선생님처럼 고개를 갸웃거리지도 않고 “시력은 참 좋은 놈이?” 하면서 도장을 쾅쾅 찍었다.

눈 때문에 ‘면제’ 판정이 나기를 은근히 기대해 봤던 건데, 나의 약점에 대한 보상을 얻어내려던 시도였는데, 결과는 ‘갑종 합격’이었다.

십오륙 년 전, 자동차 운전면허 시험 때였다. 적성검사 과정에서 내 앞에 디밀어진 색맹 검사 책자는, 저 지난날 콤플렉스 시절을 떠올리게 하여 일순 나에게 불쾌감을 주었다. 그러나 아는 건 바르게, 모른 건 모른다로 답했다.(며칠 전, 시험장에 문의한 바 완전 색맹자는 곤란할 수도 있으나 색약자는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었다.)

그 검사관은 다시 상자에 들어 있는 여러 가지의 색종이를 가리키며, 부르는 대로 집어보라고 했다. 파랑, 빨강, 노랑을 부르는 차례대로 집어드니 그는 빙긋 웃으며 “합격하시고 항상 조심 운전 하세요”라고 격려까지 했다.

색채에 대하여 남보다 감각이 떨어진다고 열등감에 빠져서 때로는 색채 기피증까지 일으키며 살아왔다.

세상을 색안경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들 말한다. 물론 이 말은 나쁜 쪽으로, 자신과 이해 상반한 것들을 모두 자기 기준의 눈으로만 보지 말라는 뜻일 테다. 그래서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나의 눈은 애초부터 정상인보다 매우 좋은 점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뒤섞인 혼란의 색들을 거부하고, 보고 싶은 색에만 더욱 집중하게 하여 그 깊이와 의미를 찾아내게 하는 눈, 색안경 따위를 끼게 할 여지가 없는 눈임을 자부해 본다.

 

‘대~ 한민국’과 ‘필승 코리아’의 붉은 물결을 눈 따갑게 보아온 2002년의 6월이었다. 우리 민족이 ‘백의민족’에서 ‘홍의민족’으로 바뀌었구나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단색의 붉은 물결은 색약의 내 눈에도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그래, 저거야! 내 눈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는 저 통일의 색, 도약의 색, 혁신의 색, 저 하나의 색에 ‘색약의 눈’을 괴롭히는 잡티는 제발 섞이지 말아야 하는데…….